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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j Pensoj2011/07/04 22:25

*이 글은 2011년 6월 24일 진행된 연구공간L 맑스주의 세미나 발제문이다. 이 날 세미나에서 검토한 글은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전반부였다. 발제문을 작성하면서 그전에 연구공간L에서 친구들과 함께 읽은 『연속혁명』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검토하는 부분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속혁명론’을 비판하는 부분을 발제문에 포함시켰었다. 그런데 트로츠키에 대한 비판에 매몰된 나머지 사실 연속혁명론에서 오늘날 여전히 발전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 아니 전개시켜야만 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것 없이 단순히 비판을 하는 것으로 연속혁명론을 다룬 것 같다. 우리가 글을 읽고 또 쓰는 이유가 단순히 비판을 하는 것,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단초를 확인하고 그래서 죽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살릴 수 있으며 또 살려야만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데 있다면, 사실상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이 발제문은 위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너무도 불충분한 작업임을 의심할 수 없다. 세미나에서도 지적됐듯이 특히 이 발제문에서 제시된 연속혁명론에 대한 평가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제기된 트로츠키의 주장을 연속혁명론에 재투사한 것의 귀결이며, 나아가 이러한 재투사가 『연속혁명』의 합리적 핵심을 오늘날 발본적으로 재전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됨은 분명하다. 연속혁명론에 대한 이러한 독해가 설혹 연속혁명론을 완전히 오해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닐지 모르나, 그것이 부족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나저나 내가 쓴 글을 이렇게 스스로 비판한 다음 여기에 게시하려고 하니 조금 멋쩍기는 하다. 트로츠키 형님께서 최고로 도달한 곳에서 형님의 베스트를 전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 음 ... 이 작업은 발제문에서도 말했듯이 다음 발제자, 아니 이미 다음 발제자가 발제를 했으니 다다음, 다다다음 발제자에게 우선 맡기기로 하고 일단 나는 오늘 맥주를 한잔 해야겠다. 맥주가 왠지 너무 땡긴다. ㅎㅎㅎ

연구공간L 맑스주의 세미나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검토

 

 

들어가며

 

러시아혁명 이후 트로츠키는 카우츠키에 맞서 러시아 소비에트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를 작성했다. 따라서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는 카우츠키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 러시아혁명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 프롤레타리아독재, 민주주의, 테러리즘 등에 대한 트로츠키의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이 글은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제기될 수 있는, 나아가 (비단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에게서 일반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몇몇 논점들을 중심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러시아 소비에트체제에 관한 트로츠키의 상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행기에 대하여

 

『테러리즘과 공산주의』가 발표된 1920년의 러시아는, 트로츠키가 보기에, 1917년 혁명 이후에 아직 사회주의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이행기’에 있었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에서는 강제기구로서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며 생산과 소비가 코뮌에 완전히 흡수되지만, 사회주의에 이르기 전에 먼저 국가 원칙이 최대로 강화되는 시기, 즉 이행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트로츠키 2009, 236-7; 이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인용은 쪽수만을 표기한다), 국가 원칙이 최대로 강화되는 이행기에는 언제나 비극이 동반된다고 말한다(55). 왜 사회주의에 이르기 전에 비극을 동반한 이행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의 과제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이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의 손에 온전히 집중하고 예외적인 정권이 지배하는 이행기를 두어야 한다(70).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근거한 자본주의로부터 그 사적 소유의 철폐를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 이행기가 필요하며, 또 이 이행기에는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기초한 국가권력의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행기에서는 왜 국가권력이 강화되어야만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답변을 한다.

 

인류 역사는 노동을 위해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화하고 교육한 역사다. 그 목적은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 문명의 발전은 인간 노동의 생산성으로 측정된다. 새로운 사회관계는 모두 이러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209).


 

사회주의사회가 자본주의사회 이후의 사회인 한에서 사회주의사회에서의 노동생산성은 자본주의사회의 그것보다 더 높아야만 한다. 물론 연속혁명을 주장하는 트로츠키가 후진적이었던 러시아가 홀로 이러한 높은 노동생산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각주:1] 

국가의 폐지와 국가의 사멸을 명시적으로 구분했던 『국가와 혁명』의 레닌이 (부르주아국가를 폐지하는)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과 구분되는 (프롤레타리아국가 혹은 준-국가를 사멸시키는) 일종의 영구적인 사회혁명을 제시한 것과는 다르게(레닌 1988, 30), 트로츠키는 국가권력 강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회주의개혁’에 대해서 말한다(111). (물론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트로츠키가 프롤레타리아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사회혁명’(168) 개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사실) 습관화에 기초한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의 습득에 관심을 갖는 레닌과는 달리(레닌 1988, 111), 트로츠키의 관심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엄격함에 있다. “등불이 꺼지기 직전에 찬란한 빛을 내뿜듯 국가 또한 사라지기 직전에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가장 가혹한 국가 형태를 취한다. 이 형태는 모든 영역에서 시민의 삶에 독재를 행사한다”(237).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의 위와 같은 차이는 아마도, 혁명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혁명을 하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국가와 혁명』의 집필을 중단한 채 10월 혁명에 투신한 1917년의 레닌과, 러시아혁명 이후에 소비에트체제를 카우츠키의 비판으로부터 방어해야 했던 1920년의 트로츠키 사이의 어떤 거리를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는 동시에 레닌과 트로츠키라는 두 혁명가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어도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과 그에 뒤따르는 사회혁명으로 전체 혁명과정을 구분․구성한다는 점에서, 즉 국가권력 장악을 최우선적 과제로 요구하는 정치혁명과 궁극적으로 국가 자체를 해체시키는 사회혁명으로 전체 혁명과정을 구분․구성한다는 점에서, 두 혁명가가 일치한다는 점 역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혁명도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이라는 두 단계로 구성되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혁명을 두 단계로 구분․구성한 ―사실은 혁명을 그와 같이 구분․구성해야만 했던― 토대 자체가 오늘날에는 사라졌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생산이 단순히 공장 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생산의 장이 되며, 따라서 자본과 권력이 생존하기 위해 사회적 삶 자체를 포섭해야만 하는 삶권력으로 전화한 오늘날, 정치혁명은 더 이상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결박된 사회적 삶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탈주시키기 위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며 사회적 삶을 자본과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율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투쟁이 아닌 국가권력의 장악, 즉 주권 장악을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탈근대적 변형에 비춰볼 때 적실한 정치투쟁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정치혁명은 사회적 삶을 변형하는 투쟁으로서의 삶정치적 혁명일 수 있을 따름이며, 그래서 삶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은 사회적 삶 그 자체를 변형하는 투쟁으로서 사회혁명이기도 한 것이다.

 

 

연속혁명에 대하여

 

그런데 오늘날 삶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이 그 자체 사회혁명이며 따라서 사회혁명과 분리된 정치혁명,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이 오늘날 적실한 정치적 투쟁이 될 수 없다는 우리의 주장에 비춰볼 때, 트로츠키주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연속혁명론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연속혁명』의 초판 서문에서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에는 세 가지의 측면이 통합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연속혁명론의 첫 번째 측면은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혁명으로 혁명이 연속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고, 두 번째 측면은 항구적인 내적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즉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충돌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가 변화하고 사회가 발전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연속적이라는 것이며, 세 번째 측면은 사회주의 혁명이 설사 일국에 기반하여 시작하더라도 결코 일국의 기반 내에서 완성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일국의 사회주의 혁명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것일 수 없는 국제적인 사슬의 한 고리라는 것,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국제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트로츠키 2003, 184-5).

여기서 우리는 사실 트로츠키가 말하는 연속혁명이 국가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국의 프롤레타리아독재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혁명으로 혁명이 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연속혁명론의 첫 번째 측면의 핵심은 사실 (일국으로서의) 후진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있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이론[연속혁명론]은, 우리 시대에는 후진적인 부르주아국가의 민주주의과제들은 직접 프롤레타리아독재로 귀결되며,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사회주의과제들을 당면 문제로 제기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바로 그것이 이 이론의 핵심 사상이었다. 어느 정도 오랜 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거쳐서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도달한다는 전통적인 견해와 달리, 연속혁명론은 후진국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직접 프롤레타리아독재로 통한다는 사실을 정립한 것이다(트로츠키 2003, 184).


 

또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충돌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가 발전하며 따라서 사회주의혁명 자체가 연속적 성격을 갖는다는 연속혁명론의 두 번째 측면의 핵심은 사실 (설령 이러한 문제의식이 부재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럼에도) 사회적 삶의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 국가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전의 과정 및 프롤레타리아국가와 제국주의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과정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쟁취는 혁명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일 뿐이다. 사회주의건설을 국내적․국제적 차원의 계급투쟁을 토대로 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 투쟁은 불가피하게 폭발, 즉 대내적으로는 내전, 대외적으로는 혁명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트로츠키 2003, 362).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연속혁명론의 세 번째 측면은 사실 일국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이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기반으로서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국민적 무대에서 시작돼 국제적 무대에서 전개되고 결국에는 세계적 무대에서 완성된다”(트로츠키 2003, 362).

이로부터 우리는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그것이 설사 사회주의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할지라도, 일국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기반해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트로츠키가 견지하는 국제적 시각은 개별 국민국가의 주권에 근거한 국민국가 주권들 사이의 관계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트로츠키의 국제적 시각은, 물론 어떤 혁명가도 그가 속한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국주의적 시각을, 그가 비록 침략이 아닌 혁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지언정, 분명 ‘반영’하고 있다. 물론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제국주의적 시각을 어떤 점에서는 분명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연속혁명론의 역사적 한계를 말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이 오늘날의 혁명에서 유효한 무기로 쓰이기 위해서는 그 자체 발본적으로 혁신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속혁명론을 오늘날의 혁명에서 유효한 무기로 쓰기 위한) 연속혁명론의 발본적 혁신은 사실상 연속혁명론의 핵심 그 자체를 수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하여

 

이제 트로츠키가 말하는 일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에 초점을 맞춰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자. 레닌과 마찬가지로, 트로츠키는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가 권력,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말한다.[각주:2]  물론 프롤레타리아의 국가권력 장악은 반혁명 세력의 저항을 분쇄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반혁명 세력의 저항에 맞서는 것은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각주:3] 결국 트로츠키의 정식을 따를 때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의 수중에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반혁명 세력의 저항을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분쇄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독재를 수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혁명적 ‘독재’인가? 그것은 설사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더라도 강제성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본질적으로 혁명적 전위의 직접 지배를 뜻하며, 이들은 다수의 대중에게 의존하고 필요할 경우 뒤처진 후미가 선두를 따르도록 줄 세운다. ... 프롤레타리아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강제성을 지니게 된다(171-2).


 

물론 (혁명적 전위의 직접 지배로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가 강제성을 갖는 이유를, 우리는 우리가 앞서 확인한 노동 생산성에 대한 트로츠키의 강조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끌어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노역을 도입하는 것이다(198). 노동의 군사화 방식을 어느 정도 적용하지 않고서 강제노역을 도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201). 노동의 군사화는 ... 국가 강제를 토대로 삼는다. 국가 강제 없이는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바꾸는 것은 언제까지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205).

 

노동의 군사화에 기초한 강제노역의 도입이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바꾸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트로츠키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국가와 (부르주아계급의) 자본주의국가가 분명히 구분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부르주아계급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무기는 종교다. 우리의 무기는 상황을 대중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을 확장하며 국가의 일반 경제계획에 대중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런 토대를 만드는 데 소비에트 정권의 모든 노동력을 쏟아부어야 한다(213).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맑스 1991, 2)고 말한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의 맑스를 따라 트로츠키는 자본주의국가가 종교적 최면을 통해서 대중을 홀리는 데 반해,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대중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대중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을 국가의 일반 경제계획에, 아니 나아가 통치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질서는 수수께끼였고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대중에게 풀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대중에게 사회의 수수께끼를 소비에트 질서의 메커니즘 자체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통치의 모든 부분에 참여한다(213).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독재’인 한에서, “독재는 의지의 통일, 방향의 통일, 행동의 통일을 전제”하며,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지배는 프롤레타리아 내부에서 정당의 정치적 지배를 전제”한다(169). 물론 이 당, 즉 공산당이 명확한 행동강령과 흠 없는 내부규율을 지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169). 공산당은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하고 헌신적인 성원만을 포함하며, 구성원을 확대할 때는 반드시 신중한 선별과정을 거친다(171). 그리고 공산당은 노동자계급 전체가 인정하는 대의기구로서(170),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168).

여기서 우리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의기구이자,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공산당의 대의성과 강제성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적어도 어떤 점에서는 그것의 대척점에 있는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실상 유사한 것이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지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서문으로 작성된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또는 격동기 1920년의 절망과 유토피아」에서 지젝은 ‘독재’라는 용어를 정확한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형식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 또한 독재의 한 형태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독재’라는 용어는 정확한 의미로 써야 한다. 형식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 또한 독재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 아무리 ‘자유로운’ 선거라도 이를 정당화하고 조직하는 법적 절차, 선거과정을 (필요하다면 강제로) 보장하는 국가기구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측면에서의 국가는 이익의 대리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다. 이러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다(지젝 2009, 22-3).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독재(?)의 강제성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강제성은 다르다. 민주주의독재의 강제성이 법적 절차, 선거 과정을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보장하는 국가기구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라면, 트로츠키가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강제성은 무엇보다도 명확한 행동강령과 흠 없는 내부규율을 지닌 공산당의 정치적 지배의 강제성이다. 그렇다면 대의성은 어떠한가. 강제성과 마찬가지로 의회민주주의의 대의성과 공산당의 대의성 역시 물론 분명히 다르다. (앞서 확인하였지만)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의기구로서의 공산당은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하고 헌신적이며 오직 신중한 선별과정을 거친 프롤레타리아‘전위’로만 구성되며, 그래서 허구적으로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하는 의회주의적 대의와는 달리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의 대의는 프롤레타리아전위에 의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의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공산당의 정치적 지배의 대의적 성격과 강제적 성격을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공산당의 강제성은 (노동자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일반을 대의하는) 선진적인 프롤레타리아전위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일반 및 농촌의 하위중간계급으로서의 농민 그리고 도시의 하위중간계급에 대한 정치적 지배의 강제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의 정치적 지배의 강제성은 (프롤레타리아전위가 대의하는 노동자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일반뿐만 아니라 도시의 하위중간계급 및 특히 농민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이론적인 수준에서도 프롤레타리아(전위)와 하위중간계급, 특히 농민과의 관계는 강제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대의의 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전위)와 농민의 관계에 대한 트로츠키의 문제의식을 『연속혁명』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연속혁명』에서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관계에 대한 레닌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일치함을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레닌은 ... 독자적인 농민 정당이나 특히 혁명 정부에서 농민 정당의 지배적 역할과 같은 관념을 배제하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가 농민을 지도하고 그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결국 혁명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당의 수중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연속혁명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트로츠키 2003, 266; 강조는 트로츠키).


 

프롤레타리아전위의 당으로서의 공산당은 농민을 지도하고 농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지 농민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특히 하위중간계급과 농민에 대해 별도의 합의나 상당한 양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70-1),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이러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권력기구를 소유하고, 사회주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양보할 부분과 고집할 부분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71).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금 트로츠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민주주의독재가 과연 얼마나 상이한 것인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전위와 일반대중 사이의 정치적 지배-피지배 관계가 너무도 분명히 존립하며,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프롤레타리아전위에 의한 일반대중의 사실상의 일방적 종속의 체제이지 않은가?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민주주의독재의 강제성은 분명 다르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의 (프롤레타리아전위-일반대중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형식적 민주주의에서의 (대의하는 자-대의되는 자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와 ‘형식적으로’ 너무도 유사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형식적 민주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도 지배-피지배 관계가 어떤 점에서는 분명 유지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뒤따르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내용’ 자체를 혁신하고자 했던 트로츠키의 긍정적 측면(및 나아가 그 한계)을 너무나 손쉽게 판정해 버리는 것일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다시 확인하기로 하자.

 

 

세력균형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은 프롤레타리아가 의회민주주의적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프랑스, 영국 등의 민주주의가 건전하고 정상적이고 평화롭게 사회주의의 발전을 가져오리라고 보는 카우츠키에 맞서 트로츠키는 카우츠키의 이러한 생각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면서(56), 의회민주주의적인 편견에 단호히 맞서는 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쟁취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59).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은 혁명적 투쟁을 ‘세력균형’에 기초하여 사유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을 살펴보기 전에 트로츠키가 왜 ‘세력균형’에 의존하여 혁명적 투쟁을 사유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1장은 <세력균형>인데, 여기서 트로츠키가 말하는 세력균형은 물론 정치적 세력균형이다. 정치적 세력균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트로츠키는 세력균형을 “이른바 현실주의 정치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치적 인상을 요약한 것”(62)이라고 말하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세력균형이 현실적인 정치권력들 사이의 역力관계에 대한 표상을 말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혁명적 투쟁이 이러한 현실적 역관계에 대한 표상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견 혁명적 투쟁에 대한 트로츠키의 사유에서 어떤 긍정성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는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이 현실적 역관계에 대한 표상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 즉 현실성에 기초하여 우리가 혁명을 사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력 균형에 따라서 현실권력들 사이의 역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어떤 발본적인 새로움을 낳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은 현실적인 항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따라서 그 자체 실재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것처럼 실재하지 않는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력 균형에 기초해서 혁명적 투쟁을 사유해서는 안 된다고 트로츠키가 말했을 때, 일견 트로츠키가 혁명을 어떤 단순한 현실성에 기초해서 투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우리는 갖게 된다. 그렇다면 트로츠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세력 균형을 넘어서 있는 혁명의 조건으로 사유하고 있는가?

 

역사발전의 결정적 요인인 생산의 거대한 힘은 상부구조의 낡은 제도(사적 소유와 국민국가)에 질식했다. 이들은 이전 발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자본주의가 낳은 생산력은 모든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문을 두드리며 경제활동을 전 지구적 규모에서 사회주의적으로 조직하여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간청했다(66).


 

트로츠키가 주목하는 혁명의 조건은 당대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이며, 이로부터 우리는 생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트로츠키에게서 혁명의 조건이자 핵심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인류가 겪는 불행의 원인은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여 경제활동을 사회화할 만큼 성숙한 지 오래되었다는 데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생산에서 독재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지위를 차지했다(67).


 

반복하건대,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핵심적 조건을 정치적 세력관계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낳은 생산력의 발전에서 찾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에 주목하는 트로츠키의 문제의식은 확실히 트로츠키의 국제주의적 시각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트로츠키가 일국의 국가권력 장악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프롤레타리아의 연속혁명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된다고 이해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로츠키가 설령 혁명의 조건을 세력균형이 아닌 생산력의 발전 속에서 찾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전적으로 주권적 틀 안에서 사유하고 있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현실적인 정치적 세력관계를 넘어서 혁명을 사유하고자 했던 트로츠키로부터 혁명을 잠재성의 코뮤니즘과 그것의 현실화로 파악했었던 어떤 흔적을 확인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나아가 트로츠키가 전제하는 주권적 틀 안에는, 그것이 설사 프롤레타리아주권일지라도, 이미 자본-임노동 관계가 아닌 프롤레타리아국가-임노동 관계의 싹이 이미 배태되어 있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에 대하여

 

전술했듯이, 혁명적 투쟁이 세력균형, 현실의 역관계에 대한 표상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는 트로츠키의 생각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과 맞닿아 있다. 트로츠키는 과거에는 의회선거가 세력균형을 충분히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여겨졌었지만 제국주의전쟁으로 인해서 이러한 낡은 기준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말한다(64). 의회민주주의를 물신으로 숭배하는 카우츠키에게, 트로츠키는 의회민주주의가 합법적 허구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회주의라는 합법적 허구에 따르면, 보통선거권은 국가 내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의지를 나타내며, 그 결과 국민 대다수를 사회주의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론적인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는 한, 사회주의 소수당은 부르주아 다수당에 복종해야 한다. 의회 다수당이라는 이러한 물신숭배는 프롤레타리아독재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모조리 거부하는 짓이다. 이론상, 사회주의 정책을 다수당과 소수당이라는 의회주의 신화에 종속시킨다면 형식적 민주주의가 전파된 나라에서는 혁명투쟁이 불가능하다(71).


 

트로츠키가 보기에 의회의 다수당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물신숭배는 혁명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있다. 왜 그러한가? 형식적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에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각주:4]

 

물론 트로츠키가 민주주의를 무조건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트로츠키는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유효한 역할을 담당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가령 봉건제 사회의 계급적 특권에 대항하면서 모두가 평등한 선거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봉건제에 대항하는 구호로서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었다(90-1). 문제는 트로츠키 당대의 형식적 민주주의 이론이 노동자대중과 혁명정당의 현실적 요구를 통제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적 정당성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의 의식 발전을 제한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가졌는데 어떻게 노예 상태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91).

여기서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적 정당성의 형태로 노동자의 의식 발전을 제한한다는 트로츠키의 주장은 사실 의회민주주의에서는 인구의 다양성이 일인일표에 근거한 동일성으로 환원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의회민주주의가 대의라는 허구를 통해서 인구를 민중으로 통일시켜서 주권에 연결시키지만 이러한 연결은 사실 정당화라는 허구에 기초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주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트로츠키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무지렁이 농부는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입던 옷 그대로 자며, 두더지처럼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법정과 투표소에서 로트실트와 같은 권리를 행사한다. 삶의 실제 조건, 경제적 과정, 사회관계, 생활양식 면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불평등해졌다. 한쪽에서는 엄청난 부가 쌓이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가난과 절망이 더해갔다. 하지만 국가의 법적 체계의 영역에서는 이런 확연한 모순이 사라졌다. 비본질적인 법의 그늘로 숨어든 탓이다. 지주, 노동자, 자본가, 프롤레타리아, 성직자, 구두닦이, 이들은 모두 ‘시민’이자 ‘입법권자’로서 평등하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 평등은 하늘에서 한 단계 내려와 민주주의의 ‘자연적’ ‘법적’ 평등의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아직 땅에는 닿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의 경제적 토대는 땅에 있다. 평생 부르주아를 위해 짐말 노릇을 하는 무지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의회선거를 통해 나라의 운명에 영향에 미치는 이상적인 권리란 하늘나라에 약속된 궁전보다 더 비현실적이다(92).


 

형식적 민주주의는 무력하고 쓸모없고 기만적일 뿐이다(56).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이는 소비에트체제를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데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아마도 유일한 구절에서, 트로츠키는 의회주의와 소비에트를 비교하며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의회민주주의보다 우월한 것으로 설명한다.

 

의회주의정권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도 국가의 여론을 파악하는 데는 다소 불충분한 방법이었으며, 혁명의 폭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는 투쟁의 과정과 혁명적 의식의 발전을 따라잡을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소비에트정권은 노동하는 다수 국민과 더 가까이, 더 직접적으로, 더 정직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다수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 다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혁명적 독재의 길을 선택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표를 좇아 색깔을 바꾸는 정당들과 은밀히 경쟁하기보다는, 노동자 대중의 진정한 이익을 위해 국가를 통치하는 과업에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대중을 끌어들이는 쪽에 정책의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의회주의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98).


 

여기서 트로츠키는 소비에트정권이 의회주의정권보다 대중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통계적으로 다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다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다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다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소비에트체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 우리는 소비에트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상을 접할 수 있다.

 

보편적 노역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중앙집중화된 분배기구를 활용하여, 이 나라의 모든 인구가 경제계획과 자치라는 일반적인 소비에트체제에 참여할 것이다. 소비에트는 지금은 통치기구이지만 차츰 순수한 경제조직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회주의사회의 현실 조직 위에 제헌의회라는 낡은 왕관을 씌우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제헌의회 이전에, 제헌의회 없이 이미 모두 구성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100).


 

여기서 트로츠키는 소비에트가 현재는 통치기구이지만 차츰 순수한 경제조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제헌의회가 더 이상 불필요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사회주의사회에서 제헌의회가 불필요하게 되는 이유는 모든 인구가 참여하는 소비에트가 대중의 ‘경제적 삶’을 조직하는 자치기구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경제적 자치기구인 소비에트가 사회주의사회에서도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고 본다. 그것은 소비에트보다 상위의 기구인 (일반적인 통제권을 갖는) 공산당(168)과 (노동규율울 조직하는) 노동조합(172)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소비에트보다 상위의 기구인 공산당과 노동조합의 존재를 상정하는) 소비에트에 대한 트로츠키의 위와 같은 상은 「혁명의 한 가지 근본 문제」에서 제시된 레닌의 소비에트에 대한 상과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로”는 낡은 국가 기구 전체, 민주주의적인 모든 것을 방해하는 관료적 기구를 근본적으로 개조한다는 뜻이다. 이 기구를 없애고 그것을 새로운 인민의 기구, 즉 진정으로 민주적인 소비에트 기구, 조직되고 무장한 인민 다수 ―노동자, 병사, 농민― 로 대체한다는 뜻이다. 대표의 선출만이 아니라 국가 행정을 담당하고, 개혁을 비롯한 다양한 다른 변화를 이루어내는 일에서도 인민 다수에게 주도권과 독립성을 허용한다는 뜻이다(레닌 2008, 171)


 

권력을 소비에트로 옮김으로써 러시아의 행정과 경제적 통제를 노동자와 농민의 손으로 완전하게 이양한다는(레닌 2008, 178) 소비에트에 대한 레닌의 상과 비교해보면, 소비에트에 대한 트로츠키의 상은 사실상 후퇴한 것이다.[각주:5] 그래서 우리는 의회민주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트로츠키의 도달점이었던 사회주의사회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에서 과연 인민 다수의 주도권과 독립성이 얼마나 허용되는 것인지, 달리 말하면 인민 다수의 구성적 역능을 사유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보다 진정으로 한발 더 나아간 민주주의의 단초를 과연 트로츠키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테러리즘에 대하여

 

형식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트로츠키는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것에 호소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또 유지하고자 한다. 트로츠키가 호소하는 것은 혁명적 테러이다. 프롤레타리아 지배를 보장하려면 부르주아계급에게 프롤레타리아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르쳐야만 하며(72),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지배를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무장 반혁명에 대한 억압과 위협 조치로서의 테러리즘을 거부하는 것은 그래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와 혁명적 독재를 실제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같다(73).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해서 테러리즘이 요구되는 것이다.

혁명이 온갖 수단을 써서 목표를 달성하는 혁명계급을 필요로 하며 또 혁명계급은 필요시 무장봉기를 동원할 수 있는 한에서(112), 트로츠키는 혁명계급의 테러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형태의 폭력, 모든 전쟁, 모든 봉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한다(113).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한 만한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트로츠키가 총파업과 무장폭동으로서의 적색 테러를 구분한 다음 총파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무장폭동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총파업은 프롤레타리아를 동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의 적인 국가에 대항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파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적들보다 프롤레타리아의 역량이 더 빨리 소진되는 탓에 노동자들이 조만간 공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총파업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은 프롤레타리아와 적의 무장세력의 충돌, 즉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혁명적 봉기를 준비할 때뿐이다. ... 총파업은 양측을 다 동원하며, 반혁명 저항세력의 힘을 가능해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다. 하지만 혁명계급이 권력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피의 대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려면 무장폭동을 거쳐 투쟁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75).


총파업만으로는 국가 권력을 장악할 수 없으며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장봉기, 테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만 테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호시탐탐 전복시키고자 하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가테러가 필요하다.

 

혼돈의 첫 시기가 지난 뒤, 이전에 러시아를 지배하던 계급의 저항이 필사적으로 변해가고, 어마어마한 위험과 외국의 공격, 국내의 음모와 폭동 때문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가 국가 테러라는 엄중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11).


 

그래서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가 사실상 테러체제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투쟁의 잔인성은 국내외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몰아낸 계급의 적이 더 잔인하고 위험하게 저항할수록, 억압체제는 더욱더 테러 체제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108).


 

여기서 우리는 트로츠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국가테러에 기반한 체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수립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 테러가 필요하다고 트로츠키가 말할 때, 트로츠키가 말하는 테러는 대항폭력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 이전에는) 부르주아계급의 국가폭력에 맞서서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수립하고자 하는 폭력이자,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폭력이다.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가 말하는 대항폭력으로서의 테러가 사실상 부르주아국가의 국가폭력과 동질적인 폭력일 뿐이라는 점이다.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폭력의 주체가 부르주아주권에서 프롤레타리아전위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그렇다면 대항폭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적색 테러의 역사적 귀결은 무엇이었는가? 프롤레타리아의 적색 테러는 부르주아 국가주권이 행사하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예속시키는 또 다른 주권을 탄생시켰고 또 (트로츠키의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그 주권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켰다. 프롤레타리아의 대항폭력은 주권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다. 주권을 해체시키는 대신 프롤레타리아의 대항폭력은 또다른 주권을 탄생시키고 또 강화시킬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대항폭력이 어떤 발본적인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현실적인 항을 창조할 때에만 비로소 도래할 수 있을 잠재성의 코뮤니즘이 대항폭력을 통해서는 결코 현실화될 수 없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몇몇 논점들을 중심으로 트로츠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러시아 소비에트체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물론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의 검토는 우리가 오늘날의 혁명을 위해서 트로츠키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혹은 읽어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수행된 것이었었다. (아니 사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확인한 것은 트로츠키의 사유와 오늘날의 혁명 사이의, 쉽게 좁히기 힘든 간극인 것 같다. 물론 그만큼 트로츠키에 대한 진정으로 창조적인 재독해의 과제가 (다음 발제자에게)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L>

 

※ 참 고 문 헌 ※

 

레닌 (1988) 『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논장.

레닌 (2008) , 「혁명의 한 가지 근본 문제」, 정영목 옮김, 『지젝이 만난 레닌』, 교양인.

맑스 (1991)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최인호 옮김,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박종철출판사.

조정환 (2008) 「레닌의 제헌권력, 그 열림과 닫힘」,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지젝 (2009)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또는 격동기 1920년의 절망과 유토피아』,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 북.

트로츠키 (2003) 『연속혁명』, 정성진 옮김, 책갈피.

트로츠키 (2009)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카를 카우츠키에 보내는 답변』,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 북.

  1. “... 하나의 전체로서 세계 경제는, 그리고 특히 유럽 경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충분히 성숙해 있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어떠한 속도로 그리고 어떠한 단계를 거쳐서 사회주의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유럽과 세계 자본주의의 운명에 달려 있을 것이다”(트로츠키 2003, 180). [본문으로]
  2. “모든 혁명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국가 권력의 문제다. 어느 계급이 권력을 쥐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레닌 2008, 169). “혁명계급은 자신을 향한 적의 의지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권력의 문제, 즉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75). [본문으로]
  3. “... 회의․논쟁․의회와 달리, 혁명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보다는 온건하지만 어쨌든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한다”(108). [본문으로]
  4. 트로츠키는 정치적 용어로서의 민주주의가 첫째, 보통선거권을 비롯하여 공식적인 인민정부의 특징을 기초로 하는 국가체제이자 둘째, 정치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민대중 자체를 뜻한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 뜻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뜻에서도 민주주의의 의미는 계급 구분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83). 따라서 트로츠키가 민주주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단적인 이유는 민주주의를 통해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에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권력을 프롤레타리아에게 집중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거부[한다]”(82). [본문으로]
  5. 물론 우리는 아마도 소비에트에 대한 레닌의 위와 같은 상이 레닌 자신에게서도 한결같이 유지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조정환 2008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1/06/20 11:29

*이 글은 연구공간L에서 진행하는 『인지자본주의』(조정환, 갈무리, 2011) 세미나의 발제문이다. 원래는 논평문을 작성해야 되었지만 책을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한 감상문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ㅎㅎㅎ ^ㅁ^;;

연구공간L『인지자본주의』세미나

인지적인 것, 신체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은 정동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이다―

 

『인지자본주의』의 13장 <21세기 혁명과 인지적인 것>의 마지막 절은 ‘인지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다. 21세기 혁명과 인지의 관계를 논구하는 (최종적 결론인 종장 이전의 마지막) 장에서 왜 ‘인지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지가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는 것(479)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할 때에만 인지가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양태의 하나로서의 인지적인 것이 존재의 양태의 다른 하나인 신체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는 『인지자본주의』의 언명은(479), 인지가 이미 항상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정치적이기 위해서 인지는 필연적으로 신체와 연관되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하여 왜 인지와 신체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것일까?

물론 이 물음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가 먼저 규명되지 않고서는 답해질 수 없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은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검토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에 대한 성찰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지에 대한 논구로부터 인지와 연관된 신체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구로, 그 논의가 심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지와 연관된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이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한 합리적 핵심이다.

『인지자본주의』에서 인지와 연관된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은 정동으로 규정된다. “이 책에서 나[조정환]는 ‘정동’을, 지각된 것을 변용하여 행동으로 확장할 힘[...]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557). 인지적인 것과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을 연결시키는 붉은 실이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으로서의 정동이라면, 이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지-정동-신체의 관계가, 다시 말하면, 인지와 신체가 적어도 동일한 것은 아닌 한에서 어떻게 정동이 인지와 신체를 절합시키는지가 먼저 규명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인지에 대해서 확인하기로 하자. 인지의 정의는 『인지자본주의』2장에서 제시되고 있다. 인지는 지, 정, 의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심적 활동으로서,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등의 활동에 포함되는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이다(43).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로서의 인지는 따라서 정신적인 것, 영혼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것이 물질적인 것과 섞여 있거나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거나 물질적인 것을 수반하여 움직인다는 점이다(44).

정리하면, 인지는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인지의 운동, 즉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 인지노동은 물질적인 것과 다시금 연관되는 것이다. 인지노동과 물질적인 것의 연관은 인지가 물질적인 것으로서의 신체 안에 체화된다는 점에 근거한다. 인지적인 것의 ‘체화’(46)가 비물질적인 인지노동이 물질적인 것의 무게를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인지가 체화된다고 하더라도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노동은 당연히 직접적 육체노동이 아니다. 직접적 육체노동이 소비재나 생산도구를 생산함으로써 삶과 간접적이고 매개적으로만 연관됐던 물질노동이라면(325), 인지노동은 삶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비물질노동이며, 따라서 설령 인지노동과 물질적인 것의 연관이 인지적인 것이 체화된다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지노동은 직접적 육체노동이 물질성을 갖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물질적인 것의 무게를 갖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다시 검토할 것이지만, 인지의 체화로부터 인지노동이 물질적인 것과 연관된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 안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도출하기 위한 것,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사회적 삶의 인지적 생산과 재생산 과정 안에서 도출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어떻게 생산적인 것이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가 먼저 규명되어야만 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은 생산의 정보화에 근거한다. “그것[정보화]은 자본의 인지적 재구성을 개시하는 것이었다”(56). 인지자본주의에서는 공장 안에 한정된 단순상품생산으로부터 사회적 삶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으로 경제적 생산이 확장되는데(36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삶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인지자본주의의 경제적 생산이 단순히 경제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 역시 갖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생산이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전체로 확장될 때 생산자들은 늘 새로워지는 생산의 주체들이자 동시에 부단히 쇄신되는 욕망의 주체들로 호명된다(365). 인지자본주의에서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삶에 대한 위로부터의 명령(365)으로서의 삶권력은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삶을 직접적으로 자본관계 안으로 포섭하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의 포섭장치이다. (그래서 그것은 공장 안의 훈육에 기초한, 정보화 이전 시기의 자본의 포섭장치와는 상이한 것이다.) 하지만 삶권력은 사회적 삶을 자본관계를 넘어서 자율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고자 하는 생산적 주체성의 부단한 적대에 직면한다. 그래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경제적 생산은 한편에서는 사회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을 자본관계로 포섭하는 삶권력적 생산의 과정이자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삶권력에 저항하는 생산적 주체성의 삶정치적 생산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지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생산이 단순히 경제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 역시 갖는 이유이다. 인지자본주의에서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이분법은 소멸하며 생산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점점 더 동어반복적인 것으로 된다(350). 생산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점점 더 동어반복적인 것으로 되어간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이제 더 이상 주권의 영역에서 찾아져서는 안 되며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64).

정치적인 것이 생산적 주체성의 삶의 영역에 자리한다는 것은 생산적 주체성의 물질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이, 즉 (다른 특이한 생산적 주체성들과의 생산적 관계의 공통적 구성을 통한) 생산적 주체성의 특이하면서도 공통적인 사회적 신체의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정치적인 것은 생산적 주체성의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신체의 자기변형이다. 그렇다면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러한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신체의 자기변형은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신체의 자기변형의 가능성은 삶권력과 삶정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의 포섭장치인 삶권력은 인지적 생산에 대한 명령으로서 인지적 지배의 성격을 갖지만, 삶권력이 삶정치적 생산의 주체성의 부단한 적대에 직면하듯이, 인지적 지배는 인지적 저항에 직면한다(418). 그렇다면 인지적 저항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가?

앞서 확인했듯이 (설령 인지노동이 소비재나 생산도구 등의 단순한 상품을 생산하는 물질적인 직접적 육체노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지는 분명 체화되는데, 『인지자본주의』에서 인지의 체화가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은 명시적 언명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인지적 지배는 결코 전체주의적일 수 없다. 인지가 신체적이고 정동적인 한에서, 신체의 본래적 다양성이 그 지배에 한계를 부여하고 다른 인지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다”(420). 결국 인지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른 인지의 가능성 및 이를 통한 신체의 자기변형, 즉 다른 인지의 체화가 인지적 저항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인지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른 인지의 체화는 정동에 기초한다. 『인지자본주의』에서는 정동에 기초한 (인지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른 인지의 체화를 인지적 병리현상들로부터의 탈주를 중심으로 규명한다. “인지적 지배의 결과로 발생하는 감정들, 요컨대 공황, 조울, 불안과 같은 음(-)의 일반감정들은 단지 부정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양(+)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것들이, 인지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면서도 동시에 인지적 지배로부터의 탈주라는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444-5). 공황, 조울, 불안과 같은 음의 일반감정들이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양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 즉 그것들이 인지적 지배로부터의 탈주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것은, 인지적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으로서의 정동에 인지적 저항이 근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인지자본주의』에서 말해지듯이, 음의 일반감정들이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도달점일 수는 없으며, 문제제기일 수는 있어도 해결책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445). 중요한 것은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으로서의 정동이 수동적인 변용능력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423). 정동은 수동적인 변용능력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기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신체의 잠재력이다. 그렇다면 정동은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이러한 능동적 기쁨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가?

지금으로서는 위의 물음에 대해서 단지 잠정적인 결론만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동이 능동적 기쁨을 생산하는 것은 아마도 신체가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관계에 예속된 신체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혁신하는 새로운 신체로 자기변형될 때에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의 자기변형은 아마도 욕망에, 물론 『인지자본주의』에서 말해졌듯이 개인주의적인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욕망에, 코뮤니즘의 원리로서의 욕망(518)에 근거할 것이다. <L>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1/01/03 15:48

*이 글은 지난주 토요일 연구공간 L에서 진행된 <맑스주의> 세미나의 발표문을 부분 수정한 것이다. 내가 맡은 부분은 『반-뒤링』의 제1편 <철학>이었는데, 내가 『반-뒤링』의 <철학> 부분에서 엥겔스의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에 대한 비판과 극복에만 집중한 나머지, 아니 사실은 매몰돼 있던 나머지, 사태에 적실한 개념 구분을 통해서, 사태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있는 개념 구분을 통해서 작업을 진행했어야 됐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태에 적실한 개념 구분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너무도 분명한 것은 전문화된 산업생산에서 대량산업생산으로, 대량산업생산에서 사회적 생산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변형되었고, 그리하여 물질적 생산을 둘러싼 집단적 배치가 변형된 것이 사실이더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서의 자본-임노동 관계 자체가 변화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임노동 관계는 전문화된 산업생산에서도, 대량산업생산에서도, 사회적 생산에서도, 그리고 오늘날 삶정치적 생산에서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분명 오늘날에도 자본-임노동 관계는 종식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생산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는 가령 대량산업생산 시기에서의 그것과 분명히 구분된다. 이제 생산력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생산적 주체성의 협력적 네트워크이지 더 이상 어떤 물화된 객체로서의 고정자본인 기계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는 설사 자본-임노동 관계가 대량산업생산 시기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는 달라졌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집단적 배치와 자본-임노동 관계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생산관계를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생산력이 그 안에서 운동하며 또 조직되는 ‘관계’로 이해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적어도 다음의 두 차원, 즉 1) 자본-임노동 관계의 차원, 2)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의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우리가 오늘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분법이 폐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자본-임노동 관계가 종식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며, 또 자본-임노동 관계가 생산력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확인하였듯이 오늘날 생산력의 중심에 있는 것은 (가령 대량생산시기에서 그것이 고정자본으로서의 기계였던 것과는 달리) 생산적 주체성의 협력적 네트워크, 즉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 자체이다. 그래서 오늘날 생산력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더 이상 생산적 주체성과 분리된 어떤 물화된 객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 이해된 생산관계가 그 자체 생산력의 중심에 놓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분명 오늘날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단순히 동일한 것일 수는 없지만) 이 생산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다름 아닌 생산력 자체의 변형이라고, 생산력의 발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생산력 발전의 문제를 진정으로 ‘주체적’인 시각에서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실 이러한 주장은 (토론 시간에서도 지적된 것이었지만) 분명 다시금 다음과 같은 문제를, 즉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생산관계와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서의 생산관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검토해야 될 과제로서 제기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아마도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 ‘관계’를 검토해야 될 것 같다. (필요노동 시간과 잉여노동 시간 나아가 여가 시간이 명확히 구분됐던) 맑스가 살았던 시기와 달리 오늘날 만약 정말로 생산시간과 삶시간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면, 사실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서의 생산관계는 다름 아닌 삶시간을 구성하는 생산관계로서의 ‘삶관계’ 자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삶관계와 구분되는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생산관계는 자본이 삶시간을 수탈하고, 그리하여 ‘삶관계’를 포섭하는 관계일 것이다. 따라서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생산관계와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서의 생산관계, 즉 삶관계 사이의 ‘관계’는 우선적으로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검토로부터 다시금 자본-임노동 관계로의 포섭에 대항하는 삶관계 안에서의 실천, 즉 저항의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저항의 문제를 (이 글에서 논구했듯이 생산력 발전을 신비화하는 변증법적 역사유물론과 달리) 생산력 발전을 탈신비화하는 비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인 저항의 우선성 테제에 기초하여, 오늘날 잠재성의 코뮤니즘을 현실화하는 가능성(가능성-실재성 쌍에서의 가능성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 네그리가 <제국>에서 말하는 가능성)과 관련하여 검토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단순히 개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위의 문제틀을 중심으로 새로이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 글을 토론 시간에서 제기된 여러 지적들 중 위의 핵심적인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들을 중심으로 부분 수정하는 것 이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이 글에는 위의 문제들을 반영하지 못한 오류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내게 이 글은 내가 단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정식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족한 글을 함께 읽고 논의한 동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연구공간 L 맑스주의 세미나(2011.1.1)

엥겔스와 변증법의 문제


1.

1878년 <서문>에서 엥겔스 본인이 밝히고 있듯이, 「반-뒤링」은 자칭 사회주의의 대가이자 개혁자로 등장한 오이겐 뒤링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론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서 작성된 저술이다. 뒤링의 이론을 상세히 비판하는 「반-뒤링」은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본고는 이중 철학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을 검토하고자 한다. 물론 이 검토는 단순히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 즉 가령 이 비판은 적절하고 저 비판은 과도하며 그 비판은 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과제는 엥겔스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 비판의 입지점, 즉 엥겔스 자신의 논의의 기반이 되는 ‘철학’을 다시금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물론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의 모든 비판에서 우리가 엥겔스가 발판으로 삼고 있는 그 자신의 철학적 입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논적이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기 위해서 비판자가 반드시 그 자신의 어떤 고유한 철학적 입지점을 견지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제정신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물론 당연히 「반-뒤링」에서 엥겔스 역시 뒤링은 단지 미쳤을 뿐이라고 조소하지 않는다. 「반-뒤링」의 철학 부분 전체에 걸쳐서 엥겔스는 뒤링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를 상세히 논증하는데, 이러한 논증을 통해서 엥겔스가 드러낸 사실은 무엇보다도 뒤링이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변증법적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로부터 우리는 역으로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엥겔스 자신의 논의의 기반이 되는 철학적 입장은, 엥겔스 스스로 긍정하듯이, 다름 아닌 제대로 된 변증법이라고.

 그런데 과연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변증법적 이해란 무엇인가. 아니 도대체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엥겔스가 긍정하는 변증법이 제대로 되지 못한, 헤겔식의 관념론적 변증법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1) 헤겔식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구분되는 엥겔스의 변증법은 물론 유물론적 변증법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과연 유물론적 변증법은 무엇인가. 물론 유물론적 변증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념론적 변증법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유물론적 변증법은, 엥겔스 스스로 주장하듯이, 관념론적 변증법의 신비적 형태를 벗겨 냄으로써 비로소 완연히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2) 신비적 형태로 전개된 관념론적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에 다름 아닌데, 헤겔의 변증법은 우선적으로는 사유의 최고 형식에 다름 아니다.3) 물론 사유의 최고 형식으로서의 변증법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일단 인식되기 전까지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법칙이며, 헤겔에 의해서는 처음으로 명료하게 정식화되었을 뿐이다”(159). 그리고 우리는 엥겔스를 통해서 헤겔에 의해 처음으로 명료하게 정식화된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이 바로 부정의 부정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이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반-뒤링」을 저술하는 엥겔스의 과제는 이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 엥겔스는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이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부정의 부정을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의 법칙으로 삼아서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본고의 과제 역시 사유의 최고 형식이 과연 부정의 부정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과제는 부정의 부정을 유물론적 변증법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엥겔스의 세계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 우리는 (사유의 최고 형식이 과연 부정의 부정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부정의 부정에 기초한 엥겔스의 세계 이해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4) 

 엥겔스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운동 법칙이 사유뿐만 아니라 역사와 자연에도 공히 적용된다고 본다.5)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운동 법칙이 역사와 자연에 적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물론 엥겔스가 말하듯이 변증법적 법칙을 구성하여 자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법칙을 자연 속에서 찾아내어 자연으로부터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14). 그런데 자연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변증법적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연과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운동한다는 것, 그리하여 부정의 부정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운동한다는 것,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부정의 부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 역사, 사유의 극히 일반적인, 바로 그 때문에 극히 광범위한 작용 범위를 가지는 중요한 발전 법칙이다. 그것은 ... 동물계와 식물계, 지질학, 수학, 역사, 철학에서 통용력을 지니는 법칙이며, 뒤링 씨조차 그토록 앞길을 막고 뒷덜미를 잡아 끌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자기의 방식대로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칙이다”(157).

 그렇다면 자연, 역사, 사유가 부정의 부정으로 발전한다는 엥겔스의 변증법은 어떤 문제를 갖는가. 이 문제를 엥겔스의 자연, 역사, 사유의 변증법적 발전 도식 중 특히 변증법적 역사 발전 도식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기로 하자.

 

2. 

엥겔스의 변증법적 역사 발전 도식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뒤링의 맑스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엥겔스의 재비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뒤링은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의 개인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의 관계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데, 뒤링의 맑스 비판의 요지는 맑스가 (기존의 개인적 소유의) 부정의 부정을 통한 (새로운) 개인적 소유는 곧 사회적 소유라고 말하는 것이 말장난일 뿐이라는 것이다(145). 그리고 이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몰수자에 대한 몰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태는 토지에 대한 사회적 소유와 노동 자체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기초로 하는 개인적 소유의 복원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사회적 소유에 들어가는 것은 토지와 그 밖의 생산수단이고 개인적 소유에 들어가는 것은 생산물, 따라서 소비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147; 강조는 필자). 결국 엥겔스 재비판의 요지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개인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가 엄격하게 분리된다는 것, 따라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는 맑스의 그것이 아닌 뒤링의 창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147).

 물론 엥겔스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맑스의 『자본론』을 직접 인용한다. 맑스는 “이 연합체[엥겔스의 용어로는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된 연합체’]의 총생산물은 사회적 생산물이다. 이 생산물의 한 부분은 다시 생산수단으로 쓰인다. 이 부분은 계속 사회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 부분은 연합체의 성원들이 생활수단으로서 소비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그들 사이에 분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6) 자구에 주목할 때 분명 우리는 엥겔스의 해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엥겔스가 자구에 매몰되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관한 맑스의 핵심 사상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만 한다.

 확인하였듯이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 이후의 사회, 즉 코뮤니즘 사회에서도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가 여전히 명확히 구분된다는 것으로 뒤링의 비판에 답한다. 물론 사실 코뮤니즘 사회에서도 사회적 소유와 구분되는 개인적 소유가 있을지 모른다. 아니 아마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령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모든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가 살아 있는 인간 개개인들의 존재이며 그리하여 인간 개개인들의 신체적 조직(및 그들이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7) 코뮤니즘 사회 역시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인 한에서 당연히 자신의 신체적 조직을 재생산하기 위하여 먹고, 입고, 마실 것을 개개인들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코뮤니즘 사회에서 사회적 생산물의 사회적 소유 부분과 개인적 소유 부분 사이의 구분의 문제, 즉 분배의 문제는, 필자가 보기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관한 맑스 사유의 핵심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코뮤니즘 사회에 관한 맑스 사유의 핵심은 분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코뮤니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지만, 코뮤니즘 사회의 생산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을 간과하고 분배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모든 작업은 필연적인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엥겔스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자가 보기에는 다음의 사실이 분명한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해체가 코뮤니즘 사회의 핵심이라면, 사실 코뮤니즘 사회에서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이를 통해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라는 비판을 재비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답변일 뿐이라는 것.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해체는 당연히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폐지를 함축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굳이 표현한다면)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적’이지만,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가 ‘개인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그러하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를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개인적’ 소유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령 단지 먹고, 입고, 마시는 물질적 재화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의 물질적 재생산에 필수불가결하게 된 지식, 정보 등의 비물질적 재화들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비물질적 재화들이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역으로 단순히 소유의 측면에서도 이와 같은 비물질적 재화들이 (나아가 물질적 재화들 역시)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유되지 않는 사회, 즉 지적재산권, 디지털 인클로저가 폐지된 사회가 아마도 코뮤니즘 사회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의 분배 문제를 적어도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서 사유하는 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런데 엥겔스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에 대한 뒤링의 맑스 비판에 대해서 왜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으로 응답했을까? 사실 엥겔스가 말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개인적 소유는 사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형식을 전제한 채 그것을 단순히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로 명확히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핏 생각해봐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을 고려할 때,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형식을 전제한 채 그것을 단순히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로) 명확히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 코뮤니즘적 사회적 소유와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가 명확한 구분된다는 주장은 분명히 문제적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구분하는 것으로 뒤링을 재비판하는 엥겔스는 사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해 물음을 던져야 하는 곳에서 물음을 그치고 있다. 엥겔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에 기초하여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몰수자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몰수된다는 점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물음을 비로소 던져야 되는 지점에서 엥겔스는 왜 물음을 그친 것일까? 이것은 사실 그의 변증법적 역사 발전 도식 자체에서 연원하는 문제이지는 않은가?


3. 

우리가 앞서 확인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엥겔스의 언급, 즉 “몰수자에 대한 몰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태”는, 「반-뒤링」에서 엥겔스 본인이 인용하듯이 『자본론』에서 맑스가 직접 했던 말이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149; 『맑스․엥겔스 저작집』제23권, 791쪽 재인용). 물론 수탈자가 수탈당한다는 맑스의 표현은 한 인격에 의한 다른 인격의 수탈,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수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인용된 어구 바로 앞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은, 이 자본과 함께 그리고 이 자본 밑에서 개화해 온 생산 방식의 족쇄로 된다. 생산 수단의 집적과 노동의 사회화는, 그것들의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종식은 자본가의 개인적 재산의 몰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자체가 변형되는 것의 필연적 귀결을 의미할 뿐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설령 우리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자체가 어떻게 변형될 것인지, 코뮤니즘적 생산 방식 자체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더라도) 다시금 코뮤니즘이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코뮤니즘의 탄생은 자본주의가 이룩한 역사적 성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다면 코뮤니즘은 자본주의의 부정, 또 자본주의가 중세 봉건제의 부정이기에, 결국 부정의 부정으로 도래하는 것인가. 그래서 코뮤니즘은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 도식에 따라서, 즉 부정의 부정의 도식에 따라서 도래하는 것인가.

 엥겔스는 그렇다고 말한다. 나아가 주지하다시피 엥겔스는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유 역시 마찬가지로 변증법적인 도식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엥겔스는 보리 낟알에서도, 곤충에서도, 지질학에서도, 수학에서도, 철학사에서도, 루쏘의 평등 이론에서도 부정의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 도식을 확인한다(151-6). 그런데 그렇다면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발전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를 엥겔스가 변증법적 발전의 사례로 제시한 보리 낟알의 성장을 통해서 검토해보자.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리 낟알 하나가 자신에게 필요한 정상적 조건을 얻게 되면, 즉 적합한 땅에 떨어지게 되면, 열과 습기의 영향을 받아서 그 보리 낟알에는 특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바, 요컨대 싹이 튼다. 낟알 자체는 사라지고 부정되며, 그 대신에 낟알에서 자라난 식물, 즉 낟알의 부정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식물의 정상적인 생애는 어떠한가? 그것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마지막에 가서 다시 보리 낟알들을 생산해 내고, 이 보리 낟알들이 여물자마자 줄기는 사멸하는바, 즉 자기 차례를 맞아 부정된다. 이러한 부정의 부정의 결과로서 우리는 다시 원래의 보리 낟알을 얻게 된다. 그것도 그저 한 알이 아니라 열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보리 낟알을 얻게 된다(151-2).


보리 낟알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엥겔스가 규정한 변증법적 발전 도식으로서의 부정의 부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상을 갖게 된다. 보리 낟알이 정상적 조건에서 싹이 틈으로써 보리 낟알은 부정된다. 보리 낟알은 부정되지만 낟알에서 자라난 식물, 즉 낟알의 부정이 나타난다. 이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라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다시 보리 낟알을 생산해낸 다음 사멸한다. 즉 이 식물이 다시 부정되고 보리 낟알이 생긴다. 물론 그저 한 알이 아니라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낟알이 생긴다.

 이 사례를 보면 마치 보리 낟알의 변증법적 발전은 단지 양적 차이만을 가져오는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엥겔스가 보기에, 맑스가 『자본론』에서 전개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사상 경로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서술에서도 맑스가 사용한 것과 동일한 일련의 변증법적 표현들을 확인할 수 있는, 루쏘의 평등 이론을 살펴보자(155-7). 루쏘의 평등 이론은, 거두절미하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하였지만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불평등하게 되었고, 문명 상태에 들어선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사회 계약을 통해서 군주에게 자신을 위탁하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군주 앞에서 만인의 평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평등과 문명 상태에서 사회 계약을 맺은 인간의 평등이 질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8)

 (물론 엥겔스는 부정의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의 도식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개별적 과정의 특수성이 아니라 자연, 역사, 사유의 모든 발전 과정의 하나의 운동 법칙 아래로의 총괄이라고 말하지만9) 그럼에도) 엥겔스는 개별적 과정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엥겔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개별적 과정의 특수성은 (물론 개별 사물들에서도 변증법적 발전 도식은 어김없이 적용되지만) 각 사물의 종류마다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케 하는 독특한 부정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보리 낟알을 빻을 경우 보리 낟알은 물론 부정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위에서 확인했던 방식처럼, 지양되지는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보리 낟알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지양을 가능하게 하는 특수한 부정이 있는 것이다10).

 따라서 엥겔스에 따르면,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낟알의 부정과 (루쏘의 경우에)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평등의 부정 그리고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자본주의의 부정은, (설사 낟알, 평등, 자본주의의 지양을 가능하게 만드는 각각의 특수한 부정이 서로 상이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양’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정이라는 점, 즉 ‘극복되는 동시에 보존되[는]’(155)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정이라는 점, 다름 아닌 보존하는 부정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 한 알의 낟알에 대한 부정의 부정이, 설사 그것이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낟알일지언정 여전히 낟알이고, 자연 상태에서의 평등에 대한 부정의 부정이, 설사 그것이 질적으로 구분되는 평등일지언정, 여전히 평등이 아닌 그 무엇 ―가령 평등이 아닌 자율― 이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부정이, 설사 자본주의 사회의 몰수자가 몰수된다한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그 무엇일 수 있겠는가?


4. 

필자가 보기에는, 엥겔스가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생산과 분배 자체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 않는 것,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에 기초하여 투사하는 것은, 그의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역사 이해의 필연적 귀결인 것 같다.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은 현재를 필연적으로 죽은 미래에 붙들어 매기 때문이다.

 보리 낟알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자연에서 확인되는 변증법적 발전의 사례로서 제시된 보리 낟알의 사례, 즉, 보리 낟알이 부정되어 싹이 트고, 싹이 튼 다음 다시 열매를 맺고서 더 많은 낟알들을 남기면서 다시 부정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낟알의 부정과 그 부정의 부정은 단지 낟알이 이미 갖고 있던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일 뿐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낟알이 빻이면 분명 그것이 지양되는 가능성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맥락에서 낟알의 지양의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중요한 사항은 미래를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투사하는 것은 그것을 이미 죽은 미래의 가능성에 기초하여 투사하는 것, 그래서 단지 그 가능성을 재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 가능성은 그것이 다만 지금 여기에서 실재하지 않다는 점에서만 실재적인 것과 구분되는 가능적인 것이다. 낟알의 부정의 부정은 낟알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가능성 안에는 미래에 대한 표상이 이미 존재한다. 아니 그것 이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부정의 부정의 가능성을 통해서는 그 어떠한 창조도 생성도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코뮤니즘이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태어난다고 했을 때에도 마치 낟알처럼 코뮤니즘 또한 그 어떤 창조와 생성도 가능하지 않은 부정의 부정의 가능성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로부터의 코뮤니즘의 탄생은 낟알의 부정의 부정과 같은 가능적인 것의 실현이 결코 아니다. 코뮤니즘의 탄생은 가능적인 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재성으로서의 코뮤니즘과 가능성으로의 낟알의 차이는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 맑스는 낟알이 그것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과 코뮤니즘이 현실화되는 데에는 발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가,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후자를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자를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코뮤니즘은 그것에 대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표상을 단지 재현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울러 자본주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코뮤니즘은 또한 자본주의를 단순히 지양함으로써, 즉 보존하는 부정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코뮤니즘은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우리는 잠재성과 잠재성의 현실화에 대한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생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베르그손을 해석하면서) 들뢰즈는 가능성-실재성의 쌍과 잠재성-현실성의 쌍을 구분한다. 가능적인 것은 분명 실재적이지 않다. 가령 낟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이 실제로 열매를 맺지 않는 한 실재적이지 않다. 낟알은 그것이 실제로 열매를 맺을 때 그것의 가능성을 실현한다. 반대로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실재적이다. 물론 가능적인 것이 실현되는 것과 달리 잠재적인 것은 현실화된다. 하지만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가능적인 것이 실현되는 것과는 발본적으로 구분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실재를 가능적인 것의 표상을 통해서 그 표상과 동일한 것 혹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실재적인 것]은 단지 ... 실재성을 ... 갖고 있는데, 이는 ... 개념의 관점에서 가능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 ... 으로 번역될 수 있다”.11)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가능성-실재성의 쌍에 일종의 선형성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실재성의 쌍에서 실재는 가능적인 것 속에 이미 주어져 있는 것, 즉 가능적인 것의 ‘사이비-현실성’ 속에 앞서 주어져 있는 것이다(들뢰즈, 136).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금 (가능성-실재성의 쌍에는) 실재가 사이비-현실성 속에 앞서 주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적인 것의 실현에서는 그 어떤 창조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가능적인 것의 실현의 과정은 생성이 아니며 창조가 아니다.

 하지만 잠재성-현실성의 쌍은 다르다. 우선 가능적인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과 달리,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모두 실재한다. 잠재적인 것은 실재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아니며, (그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려면 현실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잠재적인 것도 현실적인 것도 실재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항들을, 즉 새로운 현실성을 비로소 창조해야만 한다. 왜 그러한가? “이유는 간단하다. 실재적인 것은 그것이 실현하는 가능적인 것의 상 안에 그리고 가능적인 것의 유사성 안에 존재하는 반면,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구체화하는 잠재적인 것과 유사하지 않[기 때문이다]”(들뢰즈, 136; 번역 일부 수정. 원문은 Deleuze, 97). 이로부터 우리는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와 가능적인 것의 실현의 발본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 과정은 그 자체 새로운 현실성을 창조하는 것, 생성하는 것이다.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에는 가능적인 것의 실현과 달리 어떤 앞서 주어져 있는 사이비-현실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모두 실재적인 것이라면, (잠재성-현실성의 쌍에서)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 과정을 통해서 창조되고 생성되는 새로운 현실성은, 곧 (가능성-실재성의 쌍에서와는 달리) 새로운 실재의 구성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가 그 자체 창조이자 생성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실재의 구성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만큼이나 실재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하여 “잠재적인 것이 지닌 실재성은 성취해야 할 어떤 과제의 실재성이고, 이는 마치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의 실재성과 같다”는 점이다.12) 그렇다면 이로부터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시된 사실은 다음이 아닌가? 코뮤니즘이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난다는 명제는 가능적인 것의 실현을 모델로 삼는 부정의 부정의 변증법적 발전 도식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실재성을 갖는 잠재적 코뮤니즘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 그 자체 실재하지만, 자본주의가 현실적인 것처럼 현실적이지는 않으며, 그리하여 우리에게 자본주의 사회 안에 실재하는 코뮤니즘의 잠재성을 성취해야 되는 과제, 코뮤니즘의 잠재성을 현실화해야 하는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또 이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루쏘의 평등 이론에 대한 사고 실험과 맑스의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코뮤니즘에 대한 사유의 차이에 대해서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앞서 확인하였듯이 루쏘의 사고 실험은 ‘평등’이라는 개념의 주어진 표상, 즉 동등함이라는 표상에 따라 진행된다. 문명 상태에서 (군주 앞에서) 인간이 평등을 회복하기 이전에, 자연 상태의 인간의 (발전할 수 있는 능력에 기인한) 불평등이 선행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의 평등이 불평등에 의해 부정된 다음, 다시금 불평등이 부정되고 평등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자연 상태를 가정하는 루쏘 평등 이론의 구도 속에는 이미 문명 상태에서의 평등의 회복(?)이 선형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코뮤니즘에 대한 맑스의 사유가, 우리가 그 코뮤니즘을 현실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실재하는 잠재성의 코뮤니즘으로 이해할 경우, 어떤 선형성되어 있는 사이비 현실성을 통해서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몰수자를 몰수하는 것, 또는 예컨대 단순히 이제 소수자가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자가 수탈한다는 것과 같은 표상을 통해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평등 이론에 대한 루쏘의 사유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맑스의 사유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양자는 결코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발전 도식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심지어 동일하다고!) 이해될 수 없으며,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우리가 변증법적인 역사 이해를 넘어서야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비변증법적인 역사 이해, 비변증법적이면서도 유물론적인 역사이해, 비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은 무엇인가? 또 과연 그것은 가능한 것인가?


5. 

먼저 논점을 확인하도록 하자. 엥겔스가 보기에 유물론의 과제는 역사를 인류의 발전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엥겔스의 과제 역시 이 발전 과정의 운동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된다(27). 물론 이 발전 과정의 운동 법칙은 당연히 변증법이다. (역사뿐만이 아니라 자연까지도 포함하는) “현대 유물론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다]”(28). 그렇다면 결국 논점은 다음과 같다. 엥겔스는 역사유물론이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라고 보지만, 역사유물론이 반드시 변증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아니 사실 역사유물론은 변증법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 그렇다면 비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을 확인하기 이전에 먼저 통상적으로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문헌을 검토하도록 하자. 그 문헌은 물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 혹은 이 생산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들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 사회적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 사이의 현존하는 충돌들 ... 한 사회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들은 동시에 이러한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창출한다. 이 사회구성체와 더불어 인간 사회의 전사는 끝을 맺는다.13) 


여기서 맑스는 생산력이 특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생산력과 (생산력이 그 안에서 운동해 온) 생산관계가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기존의 생산관계는 발전된 생산력의 족쇄가 된다.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충돌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사회구성체는 그것의 생산력이 모두 발전하기 전에는 몰락하지 않으며 새로운 생산관계는 그것의 물질적 조건들이 기존 사회구성체 태내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생산관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물론 맑스는 생산력의 발달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기존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대체를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물론 맑스가 이를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라고 명명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이것은 변증법적 과정이 아니라고 부정한 것도 아니기는 하다. 여하튼 엥겔스는 이것을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엥겔스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증명한 것이 다름 아닌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역사가 실제로 발전했고 또 앞으로도 그와 같이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14) 요컨대 엥겔스가 보기에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은 하나의 사실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 도식, 즉 부정의 부정에 대해서 맑스 본인은 과연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전유 방식,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적인 소유, 즉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의 첫 번째 부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정은 자연적 과정의 필연성을 갖고서 그 자신에 의해 생산된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150; 『맑스․엥겔스 저작집』제23권, 791쪽 재인용). 맑스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자기 노동에 기초한 사적 노동의 부정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정이 자연적 과정의 필연성을 갖고서 다름 아닌 자본주의적 생산 자신에 의해 생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자본론』에서 맑스가 말하는 부정의 부정이다. 문면만 보았을 때 우리는 분명 맑스 역시 역사가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도식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15)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정이 자본주의적 생산 자신에 의해서 자연적이고 필연적으로 생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부정되는 과정은 결코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일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심지어 이렇게도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 즉 노예제적 생산이나 봉건제적 생산이 자연적․필연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대체된 것인가? 왜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안에서 운동해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과 모순에 빠지는가? 왜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것들이 지금까지 그 안에서 운동해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과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발전하는 것인가?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이 진정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인가?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이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일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를 부정했던 자본주의적 생산이, 다시금 자연적 과정의 필연성을 갖고서 그 자신에 의해 부정된다고, 그래서 역사가 실제로 변증법적으로 진보한다고, 부정의 부정으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필자가 보기에는 생산력의 발전은 결코 자연적인 과정도, 필연적인 과정도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생산력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계급투쟁, 즉 적대이다. 만약 생산력의 발전이 사회적 적대로부터 비롯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추동되는 것이라면, 생산력의 발전은 결코 주체를 제외한 어떤 자연 발생적 과정, 필연적 과정, 객체적 과정일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및 이 모순의 해소를 통한 발전으로 이해되어 온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 보다 존재론적으로!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는) 사회적 적대, 사회적 적대의 주체성이 선행한다. 그렇다면 이 적대적 주체성의 우선성으로부터 우리는 역사유물론 자체를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가. 비변증법적인 새로운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은 무엇인가.


6.

비변증법적인 유물론의 입지점을 검토하기에 앞서 먼저 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실제로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가 타당했던, 자본주의 전사의 어떤 국면이 존재했던 것은 아닌가?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가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 기존 생산관계와 발전된 생산력이 모순에 빠지며, 이로부터 새로운 생산관계가 기존의 생산관계를 대체함으로써, 이 새로운 생산관계가 발전된 생산력에 발맞추게 되는 것이라면, 혹시 우리는 이러한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가 관철된 국면을 자본이 생산과정을 실질적으로 매개하던 시기로 볼 수 있지는 않은가? 자본이 생산과정을 실질적으로 매개하던 시기에는, 가령 슘페터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19세기 자본주의 발전 모델에 둘러싸여 작업하면서 “창조의 기쁨으로 추동된 새로움, 혁신을 소개하는 자”인 기업가의 ‘기업가 정신’을 찬양했을 때에는,16) (설사 노예제 사회로부터 봉건제 사회로의 이행 과정이나 봉건제 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과정과 같은 거대한 생산관계의 변형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자본이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 혁신의 중심이었던 것은 아닌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이 생산 혁신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껏해야 자본이 생산을 구조화하면 자본과 적대하는 주체성, 즉 프롤레타리아가 파업과 태업 등으로 그것을 탈구조화하고 이로부터 자본이 다시금 생산을 재구조화한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는 그저 소산적 주체성으로 사유되며, 오히려 자본이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어떤 능산적 주체성(?)으로 사유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전사의 그 어느 시기에도 자본이 능산적 주체성이었던 적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만 하지 않을까? 자본은 왜 생산을 혁신하는가? 당연히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위기에 봉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 자체의 동학에 의해서? 가령 과잉생산과 과소소비에서 비롯되는 주기적인 산업공황과 같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본이 생산을 혁신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본이 생산을 혁신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혁신이 강제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 다음에 가령 과잉생산과 과소소비로부터 비롯되는 주기적인 산업공황은, 필자가 보기에는, 개별 자본들의 몰락과 재편을 낳을 뿐이지 총자본의 생산 혁신을 강제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총자본의 생산 혁신을 강제하는 요인은 물론 앞에서 간단히 확인했듯이 자본과 적대하는 주체성에 의한 계급투쟁이다. 우리는 이를 다름 아닌 자본주의 전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트가 네그리의 사상의 진화를 검토하면서 확인하였듯이, 자본주의 생산의 거대한 변화, 즉 전문화된 산업생산에서 대량산업생산으로, 대량산업생산에서 사회적 생산으로의 변화를 낳은 시기는 각각 1917년과 1968년이었다. 문: 왜 1917년을 기점으로 전문화된 산업생산이 대량산업생산으로 변화했는가? 답: 러시아혁명 때문에. 문: 왜 1968년을 기점으로 대량산업생산이 사회적 생산으로 변화했는가? 답: 68혁명 때문에. 물론 사실 이와 같은 생산의 거대한 변화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 복잡한 과정을 분석하는 대신 단지 하트 논의의 결론만을, 즉 생산의 변화는 사회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위기에 자본이 대처하는 방식이었다는 점만을 취하기로 하자.17)

 그렇다면 생산 변화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결코 자본일 수 없다. 생산 변화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자본과 적대하는 사회혁명의 주체성이며, 이 주체성이야말로 능산적 주체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금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생산력 발전의 추동력은 사실 그 생산력이 그 안에서 운동하는 생산관계를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주체성이며, 이 주체성의 힘이 강력할수록 생산력 발전에의 강제 또한 커진다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주체를 소거함으로써 흡사 자연 발생적이고, 필연적이며, 객체적인 것인 양 생산력 발전을 묘사하고 이로부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신비화하는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에 맞서 비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을 다름 아닌 (사실 푸코가 다른 맥락에서 제시한) 저항의 우선성 테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푸코가 말하는 저항의 우선성과 우리가 말하는 저항의 우선성은 다르다. 푸코는 권력이 오직 자유로운 주체에게만 행사된다고 보면서 만약 노예가 실제로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면 그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네그리와 하트는 푸코의 위와 같은 논의를 모든 주체가 저항하는 능력을 정초하는 자유의 한계에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노예는 주인의 채찍에서 벗어날 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에 저항할 때에만 자유롭다는 것으로 해석한다(Hardt/Negri, 75). 우리가 말하는 비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으로서의 저항의 우선성 테제는 오늘날의 물질적 세계를 이와 같이 만든 힘이 자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본에 저항하는 주체성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저항하는 주체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저항하는 주체성의 힘을 보지 못함으로써 (혹은 보고도 못 본 척 함으로써) 역사 발전을, 부정의 부정으로 진행하는 어떤 자연 발생적이고, 필연적이며, 객체적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 운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그것은 저항하는 주체성의 힘을 긍정하지 못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자마자 맑스가 『자본론』1권의 마지막 부분인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수행한 작업이 새롭게 조명된다.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듯이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맑스가 하는 작업은 “생산 양식의 발전 단계에 관한 결정론을 깨드리[는]” 것이며], “이미 산업화 이전 시기에도 어떻게 노동력의 유동성과 자유가 저항적이고 적대적인 힘을 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Hardt/Negri, 76).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맑스를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파생물인 경제결정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맑스가 역사를 결코 어떤 미리 주어져 있는 변증법적 발전 도식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7. 

그런데 설사 저항의 우선성 테제가 자연 발생적, 필연적, 객체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주문을 풀어내고 역사를 능산적 주체가 활동하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 맞더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반론에 당장 부딪히게 된다. 아니 저항하는 주체가 역사를 만드는 원천이라는 게 뭐 대수인가? 저항하는 주체가 기껏해야 생산력 발전의 추동력이며 다시금 발전된 생산력에 필적하는 생산관계 안에로 포섭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또 역사적으로도 포섭되어 왔다면, 사실 저항의 우선성 테제는 그저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에서 사라졌던 주체를 역사유물론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뿐이지 않은가? 역사유물론 안에 주체를 넣어 준 것은 고맙지만 저항하는 주체는 생산력 발전의 자극제 정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항하는 주체가 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저항하는 주체는 단지 어떤 촉발자와 같은 것일 뿐이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반론은 당연히 주체성과 생산력에 대한 어떤 특정한 시각에 근거하는데, 그 시각은 생산력과 주체성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생산력을 주체 바깥에서 주체에 대해/맞서 존재하는 객체이자 그 객체에 체현된 힘으로 생각한다. 가령 증기기관을 생각해보자. 증기기관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객체이자 분명 어떤 힘을 담지하고 있는 객체이지 않은가?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너무나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가령 인류가 아직 그 어떠한 도구도 생산에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미개했을 때 인류의 생산력은 무엇이었겠는가? 물론 두뇌와 손이다. 그렇다면 이 가상적 시기에 생산력은 주체의 바깥에서 주체에 맞선 객체이자 그 객체에 체현된 힘으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인 생산력에는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된다. 그래서 만약 인류가 자기의 손으로만 생산을 하던 가상의 시기를 지나서 가령 농기구를 사용하여 생산을 한다면, 이제 인류의 생산력은 농기구와 그의 두뇌가 될 것인데, 그 까닭은 한편으로는 언제 파종하고 언제 수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그의 신체 속에 있는 두뇌를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또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구현물인 객체로서의 농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력에 대한 통상적 표상에서 생산력은 마치 주체 바깥에서 주체에 대해/맞서 존재하는 객체이자 그 객체에 체현된 힘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생산력이 담지하는 힘은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표현에 다름 아니라고. 

 물론 생산력에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인간 지성의 대상화는 (분명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소외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령 러다이트 운동을 생각해보자.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실업의 원인을 기계 때문이라고 보고 기계를 파괴하려고 했던 운동 말이다. 사실 기계는 산업혁명기의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구현물이었지만, 분명 당대에 특정한 산업예비군을 형성하는 주요소로 작용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기계의 궁극적 원천인 인간 주체를 왜소하게 만들고,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지성이 구현물인 기계를 파괴하고자 하는 운동을 낳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실은 인간 지성의 구현물로부터, 즉 인간 지성이 대상화된 객체로부터 인간 자신이 소외될 수 있을 정도로 그 구현물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며, 따라서 그 객체를 중심으로 생산이 조직될 수 있었던 것도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근대 이후에 ‘고정자본’으로 표현될 수 있을 그 객체, 그 구현물의 발전이 (단순히 그 안에 당대의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되어 있다는 것 정도를 뛰어넘어)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직접적인 생산력으로 된 정도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 삶의 과정 자체의 조건들이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놓여서 이 일반지성에 따라 변형되는 정도”18)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제 “생산물은 개별적인 직접적 노동의 생산물이기를 그치고 사회적 활동의 조합이 생산자로서 나타나[며]”(Marx, 709), “개인적 노동이 그 직접적 현존에 있어서 확장된 개인의 노동으로, 사회적 노동으로 드러나[고]”(Marx, 709), “생산과 부의 거대한 초석으로 등장하는 사회적 개인의 발전”(Marx, 705)이 있게 된다.19)

 정리하면, 근대 이전에도 생산력에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되어 있던 것은 맞지만 근대 이후와 근대 이전의 생산력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근대 이후의 생산력, 즉 일차적으로는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체현된 고정자본으로 표현될 수 있을 근대 이후의 생산력은 비로소 그것을 중심으로 생산이 조직되도록 만들고 사회적 삶을 그것의 통제 아래에 두며, 이로부터 개인적 노동의 고립된 분산성을 타파함으로써, 사회적 개인을 생산의 핵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근대 이후의 생산력을 단지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체현된 고정자본으로서 생각하는 것, 가령 대량산업생산 시기의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것으로 표상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날의 생산과정에 적실한 추상일 수 없다. 오늘날 생산과정의 주된 경향은 일반지성이 고정자본으로 체화되는 것 못지않게, 아니 사실은 그 이상으로, 일반지성이 사회적 개인의 산노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20) 일반지성과 생산의 연관은 죽은노동으로서의 고정자본, 즉 기계들의 체계 안에서 소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보다 핵심적인 것은 오히려 일반지성이 사회적 개인들의 연계망 속에서 그 자체 생산력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 지식 등이 생산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오늘날, 이제 생산력은 정보, 지식 등의 언어적 소통 과정 자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언어적 소통 과정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성이 바로 생산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생산력은 주체 바깥에서 주체에 대해/맞서 존재하는 객체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다. 오늘날 생산력은 주체 바깥에 존재하지 않고 주체 안에, 주체의 활동 안에,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주체들의 소통적 네트워크 안에 존재한다. 오늘날 생산력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주체성 그 자체이다. 오늘날 생산력은 네트워크적으로 협력하는 주체성의 활동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정자본으로 체화된 일반지성 또한 이 생산적 주체성의 협력 없이는 더 이상 생산력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렇다면 결국 오늘날 도래한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근거한 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의 암묵적 전제,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분법 자체가 타당성을 상실해 버렸다는 점이지 않은가? 그렇다. 이제는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 기존 생산관계와 발전된 생산력이 모순에 빠지며, 이로부터 새로운 생산관계가 기존 생산관계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생산관계가 발전된 생산력에 조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들의 협력적 관계 안에 존재하는 생산력이 그 자체 생산관계를 규정하며, (생산력이 생산관계와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구성하는 주체들의 네트워크적 협력 과정이 그 자체 생산관계를 새롭게 짜는 과정이고, 여기에는 (어떤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계의 혁신만이 존재하며, 또 역으로 생산관계를 새롭게 짜는 주체성의 네트워크적 협력 과정이 아닌 어떤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신비화된 생산력  발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저항의 우선성 테제는 자본주의 전사와는 다른 힘을 부여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것은 생산력 발전의 어떤 우회적인 자극제, 촉발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손으로 이 세계 자체의 생산을 새롭게 짤 수 있는 입지점이 되는 것은 아닌가?



  



1) “맑스와 나[엥겔스]는 아마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의식의 변증법을 유물론적 자연 파악과 역사 파악에 옮겨다 놓은 거의 유일한 인물들일 것이다”(프리드리히 엥겔스, 「반-뒤링」,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최인호 옮김, 박종철 출판사, 1994, 12쪽, 이하에서 「반-뒤링」의 인용은 쪽수만을 표기한다).


2) “이 법칙[변증법적 운동 법칙]은 헤겔에 의해 처음으로 포괄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신비화된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이 신비적 형태를 벗겨 내고 그것을 아주 단순한 것으로, 보편 타당한 것으로 분명하게 의식하는 것이 우리[맑스와 엥겔스]가 추구한 목표의 하나였다”(12).


3) “근대 독일 철학의 가장 커다란 공적은 변증법을 사유의 최고 형식으로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22; 강조는 필자).


4) 헤겔이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을 부정의 부정이라고 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헤겔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헤겔을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신의 본질은 개념이다. 헤겔은 개념을 사유된 것의 형식으로서의 유라는 직관된 일반자로 이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사유하는 사유 자체의 형식die Form des sich denkenkden Denkens selbst으로 이해한다. 즉 자신을 비-자아의 파악으로서 개념파악하는 것이다. 비-자아의 파악이 일종의 구별을 나타내는 한, 이러한 구별의 파악으로서의 순수 개념에는 구별을 구별함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신의 본질을 형식적․서술적으로 부정의 부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절대적 부정성’은 데카르트의 cogito me cogitare rem(나는 내가 사물을 사유한다는 것을 사유한다) -데카르트는 의식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를 논리적으로 형식화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1998, 562쪽; 번역 일부 수정. 원문은 Heidegger, M., Sein und Zeit, Tübingen: Max Niemeyer Verlag, 1953, p.433).


5) “... 역사에서 사건들의 외관상의 우연성을 지배하는 바로 그 변증법적 운동 법칙이 자연에서도 무수한 변화의 뒤얽힘 속에서 자기를 관철한다는 사실 ... ”(12).


6) 147; 『맑스․엥겔스 저작집』제23권, 92-3쪽 재인용, 강조는 엥겔스.


7) “모든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는 물론 살아 있는 인간 개개인들의 존재이다. 따라서 첫 째로 설정되어져야 할 것은 이들 개개인들의 신체적 조직 및 그로 인해 주어지는 여타 자연과 그들의 관계이다”(칼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박재희 옮김, 청년사, 2004, 42쪽).


8) 루쏘의 평등 이론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살펴볼 것이다.


9)“내가 이 모든 과정들에 대해서 부정의 부정이라고 말할 때, 나는 모든 과정들을 이 하나의 운동 법칙 아래로 총괄하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별적인 특수한 과정의 특수성은 ...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 변증법이란 자연, 인간 사회, 사유 등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과 발전 법칙에 관한 과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157-8).


10) “변증법에서 부정한다는 것은 그저 아니라고 말한다거나 어떤 사물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거나 그 사물을 임의의 방식으로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Omnis determination est negatio. 모든 제한이나 규정은 동시에 부정이다. 더욱이 여기서 부정의 방법은 첫째는 과정의 일반적 성질에 의해, 둘째는 그 특수한 성질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나는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 부정을 다시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두 번째 부정이 여전히 가능하도록 혹은 가능해지도록 첫 번째 부정을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각각의 개별 경우의 특수한 성질에 맞게. 만약 내가 보리 낟알을 빻거나 곤충을 짓밟는다면, 나는 첫 번째 행위는 수행했지만 두 번째 행위는 불가능하도록 만든 셈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종류마다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부정되는 독특한 방법이 있는 것이며, 또 표상들과 개념들의 종류마다 그러하다”(158).


11) 질 들뢰즈, 『베르그송주의』, 김재인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6, 135쪽; 번역 일부 수정. 원문은 Deleuze, G., Bergsonism, trans. Tomlinson, H., New York: Zone Books, 1991, p.97.


12)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 456-7쪽.


13) 칼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최인호 옮김, 박종철 출판사, 1992, 478쪽).


14) “... 맑스는, 일찍이 소경영이 그 자체의 발전에 의하여 그 자신을 파괴할 조건들, 즉 소소유자들에게서 몰수할 조건들을 필연적으로 산출해 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도 역시 그 자신의 몰락을 불가피하게 하는 물질적 조건들을 그 스스로 산출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그것을 여기서 간략히 총괄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은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며, 이 과정이 동시에 변증법적 과정인 것이[다]”(149-150). “그[맑스]는 이 과정이 일부는 이미 실제로 일어났고 일부는 이제 틀림없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다음, 여기에 덧붙여 이 과정을 일정한 변증법적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150).


15) 그래서 엥겔스는 지금까지의 토지 소유의 역사를 다음과 같은 변증법적 발전 도식, 즉 공동 소유 -> 사적 토유 -> 공동 보유에 따라서 정리한 것이다. “일정한 본원적 단계를 넘어선 모든 민족에 있어서 토지에 대한 이러한 공동 소유는 농경이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생산에 대한 족쇄로 변한다. 그것은 지양되고 부정되며, 짧거나 긴 중간 단계를 거친 후에 사적 소유로 전화한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 자체에 의해 농경이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반대로 사적 소유가 생산에 대한 족쇄로 된다 ― 오늘날, 소토지 보유나 대토지 보유를 막론하고 모두 이러한 사정에 있다. 이것 또한 부정하라는, 그것을 다시 공동 재산으로 전화하라는 요구가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요구는 옛날의 본원적 공동 소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고차적이고 발전된 공동 보유의 형태의 확립을 의미[한다] ...”(154).


16) Hardt, M., Negri, A., Commonwealth,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p.297.


17) 마이클 하트, 『네그리 사상의 진화』, 정남영․박서현 옮김, 갈무리, 2008.


18) Marx, K.,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rans, Nicolaus, M., Baltimore: Penguin Books, 1973, p.706.


19)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는, 엥겔스가 그것이 인간을 동물계로부터 결정적으로 분리시켰다는 점을 통해서 마찰에 의한 불이 인류의 발전에 있어 증기기관보다 우월하다고 보았던 점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인간을 고립된 개인이 아닌 (우리가 인용한 맑스적 맥락의) ‘사회적 개인’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이 사회적 개인의 사회성이 (최소한 현재의 맥락에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태초부터 주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고 이해할 경우, 증기기관은 인류의 ‘해방’에 있어서 마찰에 의한 불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역할을 했다. 마찰에 의한 불이, 굳이 해방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인간을 동물계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증기기관은 인간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 “맑스는 일반지성(혹은, 주요한 생산력으로서의 지식)을 고정자본과 완전히 동일시했고 이 때문에 동일한 일반지성이 반대로 산 노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심급을 무시했다. 이것은 정확히 오늘날의 결정적 측면이다”(빠올로 비르노, 「“일반지성”에 관하여」, 조정환 옮김,『비물질노동과 다중』, 갈무리, 1994, 217쪽).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1/01/03 15:45

*이 글은 2010년 가을학기 프랑스철학 세미나의 보고서이다. 2010년 가을학기 프랑스철학 세미나에서는 <현대 프랑스 사상과 주체 개념>이라는 주제로, 알뛰세르, 라깡의 저술을 검토했었다. 물론 알뛰세르와 라깡 이외에도 푸코의 저술을 검토하는 것이 강의의 원래 목표였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다루지 못하였고, 그 대신(?) 푸코 저술을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이 글은 그 과제의 산물이다. ㅎ 흥미로운 것은 푸코와 훗설이 정반대되는 입장을, 즉 한편에서 초월론적 주체성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훗설)을 견지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초월론적 주체성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푸코)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 작성한 두 세미나 보고서를 통해서 두 철학자의 철학적 입지점의 상이성을 어렴풋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사실 푸코와 훗설 모두 초월론적 주체성에 대한 특정한 상, 즉 (그것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유아론적인 주체성을 전제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유아론적인 초월론적 주체성을 비판하는 푸코의 입장과 이로부터 전개되는 그의 작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는 역으로 다른 과제를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그럼에도 현상학이 오늘날 밝혀주는 것이 없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대학원에서 전공하는 하이데거 역시 훗설 현상학을 통해서 (그가 스스로 말하듯이) ‘보는 눈’을 갖게 된 현상학자였는데 (물론 나중에는 스스로를 현상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아론적인 초월론적 주체성에 대한 푸코의 비판으로부터 어찌보면 훗설뿐만이 아니라 하이데거까지도 아니 사실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 철학 거의 전부가 (얼핏 생각해도 데카르트 이후부터 푸코 이전까지의 철학들 중에서 푸코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맑스의 그것과, 들뢰즈가 그의 ‘철학적 견습 기간’에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철학들 정도일 것 같다)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럼에도 내가 대학원에서 전공하는 하이데거로부터 나는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까? 물론 이를 ‘선험적으로’ 알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전공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박사학위논문을 다 쓰고나서 나도 맑스처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래야겠다! Dixi et salvavi animam meam.

프랑스철학 보고서

푸코의 <시녀들> 해석에 대한 검토


푸코의 <시녀들> 해석을 검토하기 위한 문제틀

푸코의 『말과 사물』은 (물론 <서문>을 제외하고) <시녀들>로부터 시작한다. <시녀들>은 벨라스케즈의 동명의 작품에 대한 해석인데, 르네상스, 고전 시기, 근대 시기 사이의 불연속성을 상정하고 각 시대를 지배하는 지식의 가능 조건인 에피스테메를 발굴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말과 사물』의 문제의식에 비춰볼 때,1) 푸코가 <시녀들>을 『말과 사물』의 첫 번째 장으로 배치한 것은 자연스레 다음의 물음을 제기하게끔 한다. 그렇다면 과연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은 어느 시대에 속하며, 또 이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 시대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유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푸코는 <시녀들>에 대한 해석에서 특정 시대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 에피스테메는 고전 시대의 그것이다.2) 하지만 사실 연구자들이 지적하였듯이 <시녀들>로부터 고전 시대 에피스테메의 특징만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실제로 <시녀들>이 고전 시기와 근대 시기 사이의 중간 지점을 형성하며, 그리하여 <시녀들>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고전 시기 에피스테메의 특징뿐만 아니라 근대 시기 에피스테메의 특징 또한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3)

 따라서 본고에서 필자는 우선적으로 푸코의 <시녀들> 해석을 검토함으로써 (푸코 스스로가 규정한) 위의 두 시기의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간단히 확인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필자는 특히 주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푸코의 <시녀들>에 대한 해석을 검토함으로써 푸코 사유 자체의 독특함을 확인하고자 한다. 정리하면 필자는 우선 첫째, 푸코의 <시녀들> 해석을 검토함으로써 푸코 자신이 말하는 고전 시기 에피스테메와 근대 시기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간단히 확인하고자 하며, 그리고 둘째, 주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푸코 자신의 사유의 독특함을 확인하고자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데까르트로부터 시작하는 근대 철학의 기획과 대비되는 푸코 사유의 독특함은 바로 지식의 역사적 선험성에 대한 그의 논의에 있는데, 그 까닭은 만약 지식의 역사적 선험이 인정된다면, 그러한 인정이 곧 필연적으로 가장 확실한 지식, 즉 절대적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초하는 인식 주체를 그 출발점으로 갖는, 그리하여 초월론적 주체성에서 출발하는 근대 철학의 기획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푸코는 사실 르네상스, 고전 시기, 근대 시기의 에피스테메를 단순히 발굴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근대 철학의 기획 자체를 넘어서고자 한 것일까? 이 문제를 본고에서는 단지 초월론적 주체성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푸코의 (분명 명시적이지만은 않은) 문제의식을, 그의 <시녀들> 해석을 검토하는 것에 한정하여 시론적으로만 확인하고자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푸코가 근대 철학의 기획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며, 그래서 필자는 그의 <시녀들> 해석 안에 암암리에 전제되어 있는 이와 같은 본연의 문제의식을 읽어내고 싶다. 그러면 이제 먼저 작품 <시녀들>을 분석하는 것에서 우리의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자.

 

작품 <시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화가, 모델, 관객의 이중 구조

벨라스케즈의 <시녀들>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그림의 중앙 아래 부분에 위치하며 그림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밝은 색으로 그려져 있는 공주이다. 하지만 점차로 공주를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또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 여러 사물들, 특히 거울과 캔버스에로 시야를 확장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과연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즉 무엇을 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4)

 먼저 그림의 왼쪽 끝부분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캔버스를 살펴보자. 그런데 사실 캔버스는 화가가 그 위에 무언가를 재현하는 도구이며 따라서 통상적으로는 당연히 그림 안에 그려지는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림 안의 화가가 무엇을 그리는지 직접 확인할 수 없는데, 그것은 그림에서 캔버스의 뒷면만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위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캔버스의 전면을,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캔버스 앞의 화가를 보게 된다. 사실 화가 역시 통상적으로는 당연히 그림 안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주체, 즉 무언가를 그림으로 재현하는 주체이지, 그림 안에서 재현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녀들> 안에는 커다란 캔버스 앞에 작품 <시녀들>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즈 자신이 그려져 있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 과정중의 화가가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고 전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가가 응시하는 전면은 <시녀들>을 감상하는 우리 자신인 관객이 자리하는 곳이다. 관객은 <시녀들>에서 그려진 화가와 눈을 마주치게 되며, 동시에 공주와도, 공주 옆에서 공주에게 몸을 조금 기울이고 있는 시녀와도, 그 시녀 옆에 서있는 여자 난장이와도, 여자 난장이와 조금 전의 시녀 뒤에 서 있는 시종과도 눈을 마주치게 된다.

 물론 우리는 <시녀들> 안에 그려진 여러 인물들이 관객인 우리를 바라보는 이유를 <시녀들>의 후경 벽면에 위치한 거울을 통해서 금방 알 수 있다. 위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커다란 그림과 달리 그것의 테두리가 하얗게 빛나는 거울 안에는, 두 인물이 보인다. 이 두 인물은 <시녀들> 안의 다른 인물들이 재현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어 있는데, 그 까닭은 그들을 비추고 있는 ―즉, 재현하고 있는― 거울을 통해서 다시금 <시녀들> 안에 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거울 속의 인물들을 ‘이미지 속의 이미지’,5) 재현의 재현, 이중의 재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거울에서 반사되는 두 인물은 바로 국왕부처이며, 그림 안의 화가는 캔버스 위에 국왕부처를 그리는 것이다. 국왕부처는 그림 안 화가의 모델로서 그 화가뿐만 아니라 그림 안에 그려진 여러 인물들의 응시의 대상인데, 국왕부처와 같은 위치에 작품 <시녀들>의 관객인 우리가 서있기 때문에, 작품 <시녀들>을 감상하는 응시의 주체인 우리가 동시에 그림 안에 그려진 여러 인물들이 바라보는 응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시녀들>이 화가, 모델, 관객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우선 통상적으로 그림에는 화가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재현하는 모델이 그려지지만, <시녀들>에는 화가가 그려져 있다. 따라서 <시녀들> 안에 그림으로 그려진 화가와 작품 <시녀들>을 그린 화가가 구분되는 것이다. 또 작품 <시녀들>의 모델은 사실 그림 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지만, <시녀들> 안의 캔버스의 모델은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반사되는 국왕부처이다. 따라서 모델 역시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객은 우선 작품 <시녀들>을 감상하는 우리, 국왕부처가 자리한 동일한 장소를 점하고 있는 우리이자 동시에 <시녀들> 후경 문 뒤 계단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가령 (화가가 국왕부처를 그림으로 그리는 도중 모델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찾아온) 공주와 또 공주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과는 달리, 그림으로 그려지는 국왕부처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있는 인물들 전체를 하나의 장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녀들>에는 사실 그림에서는 결코 재현될 수 없는, 그림을 감상하는 주체로서의 관객 또한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중적 재현의 구조를 통해서 <시녀들>에 재현의 세 요소가 모두 재현된 것이 갖는 함의를 검토하도록 하자. 

 

재현 행위 자체의 재현 불가능성과 고전 시대 에피스테메

<시녀들>이 화가, 모델, 관객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는 재현에 필요한 세 요소를 그림 안에 재현하기 위함이다. 우선 그림 안에 무언가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리는 ―즉, 재현하는― 주체로서의 화가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림이 무언가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그림에서 재현되는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재현한 그림이 바로 그 무언가를 재현하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재현된 것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재현에는 재현의 주체와 재현의 대상 이외에도 재현의 존재 이유인 감상자, 즉 관객이 있어야 한다. <시녀들>에서는 재현의 세 요소인 재현되는 대상으로서의 국왕부처와 재현하는 주체로서의 화가 그리고 그 때문에 재현이 존재하는 이유인 관객이 모두 재현되어 있는 것이다.6)

 하지만 <시녀들> 안에 재현의 세 요소가 재현되어 있다고 말하자마자 우리는 (앞서 확인하였듯이) <시녀들>에 재현된 화가가 작품 <시녀들>을 그리는 과정 중의 화가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시녀들> 안에 재현된 화가는 그의 재현 행위를 멈추고서 그림으로 재현해야 될 모델을 응시하고 있는 화가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녀들>은 ‘마주침’(encounter)7)을, 화가가 그를 바라보는 모델을 다시금 바라보고 있으며, 그리하여 모델과 동일한 위치에 자리한 관객인 우리의 눈과 화가의 눈이 마주치는 사건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현의 주체인 화가, 재현의 대상인 모델, 재현의 이유인 관객이 마주치는 사건을 재현하는 <시녀들>에는, 결코 재현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재현하는 행위 그 자체이다.

 만약 화가가 재현 행위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 그리하여 그가 더 이상 모델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캔버스에 몸을 기울여서 그 모델을 재현하기 시작하게 되면, 관객은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 또 그림 안의 캔버스에 재현되는 모델인 국왕부처는 (물론 거울에 비춰지고 있지만) 작품 <시녀들> 안에서 직접적으로 현시되지는 않는데, 국왕부처를 직접적으로 <시녀들> 안에 현시한다면, 재현의 주체인 화가를 <시녀들>에 현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재현하는 주체와 재현되는 대상을 하나의 그림 안에 현시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재현하는 주체와 재현되는 대상을 재현의 상이한 층위에 배치할 수밖에 없다.8) 이런 의미에서 푸코는 “재현하고 있는 화가와 재현되고 있는 군주 모두를 ... 현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9)

 중요한 것은 <시녀들>의 화가가 결코 재현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재현 행위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즉, 그림 안에 현시될 수 없었던 것은 다름 아닌 실제로 재현 행위를 하고 있는 주체이며, 이런 의미에서 <시녀들>에서 우리는 어떤 역설을, 즉 ‘재현 행위 자체를 재현하지 못하는 불가능성10)이라는 역설을 접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재현 행위 자체를 재현하지 못하는 불가능성이 고전 시대의 에피스테메의 특징과 유비적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고전 시대에는 지식의 표상들을 일람표 위에 열거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추구했지만, 표상 행위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11) 표상 행위 자체를 분석하지 않는 고전시대의 특징은 <시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재현 행위 자체를 재현하지 못하는 불가능성’과 분명한 유비 관계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시녀들>은 고전 시대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유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녀들>이 모던 시대 에피스테메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재현 행위의 중심으로서의 군주와 모던 시대 에피스테메

우리는 앞서 <시녀들>이 화가, 모델, 관객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이 이중 구조에서 화가의 이중성은 <시녀들>을 그린 물질적 실재로서의 화가와 그림 안에 그려져 있는 화가로 구성되며, 관객의 이중성은 <시녀들> 안의 후경 문 뒤 계단에 서 있는 인물과 <시녀들>을 실제로 감상하는 물질적 실재로서의 우리 자신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하면, <시녀들>의 이중 구조에서 (그 그림을 실제로 그린) 물질적 실재로서의 화가와 (그 그림을 실제로 감상하는) 물질적 실재로서의 우리 자신은, 그림 안에서 재현되지 않는다. 그림 안에서 재현되는 것은 그리는 것을 잠시 중지하고 모델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 안의 화가와, 국왕부처뿐만 아니라 이들과 함께 있는 모든 인물들을 하나의 장면으로서 응시하고 있는 후경 문 뒤 계단의 관객이다.

 그런데 모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모델의 이중성은 우선 첫째, <시녀들>에 그려진 아홉 명의 인물(거울에서 비춰지는 두 명의 인물을 포함할 경우에는 열한 명의 인물)이지만, 그러나 둘째, 그림 안 화가의 모델은 그림의 거울을 통해서 재현되는 국왕부처이다. 화가와 관객의 이중 구조와 모델의 이중 구조의 차이는, 화가와 관객의 경우 이중의 화가와 이중의 관객 중 오직 하나의 화가와 하나의 관객만이 <시녀들> 안에 재현되지만, 모델의 경우에는 이중의 모델 모두가 <시녀들> 안에 재현된다는 점에 있다. 물론 각각의 모델이 재현되는 차원은 다르다. 첫 번째 모델은 (거울 안에서 비춰지는 국왕부처를 제외하면) 그림에 직접 재현된다. 하지만 두 번째 모델, 즉 거울 안에서 비춰지는 국왕부처는 재현 안의 재현으로 현시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 그림 안의 화가의 재현 행위는 오직 국왕부처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그림으로 재현되는 국왕부처를 위해 공주뿐만 아니라 공주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 역시 존재하는 점이다. 화가가 국왕부처를 그림으로 그리지 않는다면, 공주를 위시한 다른 모든 이들이 화실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화가는 오직 군주의 명령에 의해서만 국왕부처를 그릴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시녀들> 안의 재현 행위 자체를 실제로 지배하는 것은 군주이며, 그리하여 국왕부처가 존재하는 자리 ―즉, 바로 <시녀들>의 실제 관객인 우리 자신이 서 있는 자리― 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물론 확인하였듯이 국왕부처는 <시녀들> 안에서 그 자체로 재현되지 않고 오직 거울을 통해서만 현시되며, 이런 의미에서 거울은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12) 

 거울은 비가시적인 국왕부처를 가시화하지만, 그것이 가시화하는 것이 그럼에도 어떤 숨겨져 있는 것, 은폐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까닭은 설사 거울이 가시화하는 국왕부처가 그림에서 직접적으로 그려져 있지는 않더라도, 국왕부처의 존재가 그 자체 재현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러한 사실로부터 모던 시대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시녀들>에서 유비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고전 시대와 달리) 모던 시대는 ‘의식’이 대상에 대한 표상을 형성하는 방식을 묻기 시작했고, 그 근거를 ‘인간’에서 찾고자 했다.13) <시녀들>에서 우리는 표상을 형성하는 근거로서의 ‘인간’을 모든 재현 행위를 가능케 하는 인간 주체로서의 군주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지식의 최종적 가능 조건인 근대적 인간과 <시녀들>의 모든 재현 행위를 지배하는 군주 사이에는 분명한 유비적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것의 존재가 실제 관객인 우리에게 명백한 사실이더라도, 국왕부처는 분명 그림 안에 직접적으로 재현되지 않으며, 오직 그림 안의 거울에서 재현의 재현을 통해 비춰질 뿐이다. 그렇다면 <시녀들>에서 오직 거울을 통한 재현 안의 재현으로 현시되는 국왕부처로부터 우리는 어떤 함의를 읽어낼 수 있는가.

  

<시녀들>에서 군주의 부재의 함의

국왕부처는 <시녀들>에서 재현되는 모든 다른 인물들 중 가장 창백하며, 가장 비실재적이다. “그 모든 민감함 얼굴들, 그 모든 너무도 잘 차려 입은 인물들 중에서 그들[국왕부처]은 가장 창백하고 가장 비실재적이[다]. 조그마한 동작으로도 그들을 지우기에 충분하리라”.14)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군주는 <시녀들>의 재현 행위를 지배하는 자이다. “거꾸로 그들이 그림 밖에 서 있으며 그리하여 그림에서 본질적인 비가시성에로 물러나는 한에서 그들은 중심을, 그것을 둘러싸고 모든 재현을 질서지우는 중심을 제공한다”.15) 여기서 우리는  <시녀들>에서 (재현 안의 재현인) 거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흐릿한 존재라는 의미에서의) 가장 가상적인 주체와 (재현 행위 전체를 실제로 지배한다는 의미에서의) 가장 실재적인 주체가 중첩된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군주는 가장 가상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실재적인 주체, 그리하여 역설적인 주체인 것이다.

 물론 이 중첩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시녀들>에서 군주가 부재하다는 것, (실재의 공간이 아닌) 재현의 공간으로서의 그림 안에 군주가 부재하다는 것이다. 군주의 부재는 그림 안에 존재하는 공백을 가리킨다. 사실 통상적으로 그림에서는 화가와 관객이  동일한 자리를 차지한다. 관객은 화가가 모델을 재현하는 자리와 동일한 자리에서 재현된 모델을 감상한다. 하지만 <시녀들>에서는 화가와 관객이 동일한 자리에 있지 않다. 실제 관객인 우리는 그림 안의 화가와 동일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의 화가가 바라보는 모델, 즉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관객인 우리가 그림 안의 화가가 재현하려는 모델이 서 있는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그림 안에는 필연적으로 재현될 수 없는 자리가 존재하게 되는데, 바로 그 자리가 그림 안에 존재하는 공백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 안의 화가가 재현하는 모델의 부재를 의미하는) 공백이 다름 아닌 모델로서의 군주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점이다.16) 그림 안에, 모든 재현 행위의 중심인 군주가 부재한 것이다.  

 앞서 확인하였듯이, 그림에서 군주가 재현 안의 재현으로 현시되는 것은 곧 모든 재현 행위의 중심이 거울을 통해 단지 가장 가상적인 것으로 현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실재적인 존재로서의 군주는 그림 안에 부재하며, 그림 안의 거울을 통해 가장 가상적인 것으로 현시된다. 물론 그것의 가상적 실재성 때문에 우리가 설령 (그림 안의 화가의 모델로서 화가를 바라보고 있는) 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있더라도, (화가가 군주를 보듯) 군주 역시 화가를 본다는 사실, 즉 ‘군주가 화가를 본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화가를 본다’의 주어는 당연히 주체로서의 군주이며, 이로부터 <시녀들>의 화가를 보고 있는 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귀결된다. 

 하지만 우리가 ‘화가를 보는’ 군주의 행위, <시녀들>의 모든 재현 행위를 지배하는 군주의 행위를 의심할 수는 없더라도, 군주의 존재는 오직 ‘화가를 보는’ 군주의 행위를 통해서 비로소 현시될 따름이다. 주체의 존재가 선재하고 선재하는 주체의 존재가 비로소 주체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행위가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화가를 보는’ 군주의 존재는 그림 안의 거울을 통해 현시된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 주체로서의 군주의 존재를 우리가 자명한 사실로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거꾸로 군주의 존재가 오직 ‘화가를 보는’ 행위를 통해서만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주체로서의 군주는 객체로서의 화가를 바라봄으로써만 비로소 그것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며, 나아가 군주가 화가를 바라본다는 사실은 동시에 화가가 군주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함축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는 곧 바라보는 인간 주체가 다른 인간에게 보여짐으로써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다시 말하면, 인간 주체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고 동시에 타인에 의해 보여짐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주체가 원리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주체가 (데까르트의 코기토처럼) 그 자신의 사유 행위로부터 그 자신의 존재를 정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우리는 데까르트로부터 시작하는 근대 철학의 기획, 즉 초월론적 주체성에서 시작하는 근대 철학의 기획을 어떻게 재평가할 수 있는가? 푸코의 <시녀들> 해석에서부터 읽어낸 주체와 타자의 위와 같은 관계틀, 즉 상호적 인식의 관계틀은 우리로 하여금 적어도 절대적 진리를 최종적으로 정초한다고 여겨져 온 인식 주체의 독백으로부터 (독백인 아닌) 대화에로, 그리하여 나아가 담론에로 우리의 시선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 참 고 문 헌 ※

박정자, 『빈센트의 구두』, 기파랑, 2005.

서지원, 「미셸 푸코의 <시녀들> 해석에 관한 연구」, 『美學』, 제38집, 한국미학회, 2004.6.

Foucault, M., <Las Meninas>,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New York: Vintage Books, 1994.

Sabot, P., Lire Les mots et les choses de Michel Foucault, Paris: PUF, 2006.

Steinberg, L., “Velázquez' Las Meninas”, October, Vol. 19(1981, Winter), The MIT Press.

Las Meninas,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Las_Meninas, 2010.12.22.

 


1) 서지원, 「미셸 푸코의 <시녀들> 해석에 관한 연구」, 『美學』, 제38집, 한국미학회, 2004.6, 99쪽.


2) “... 벨라스케즈의 이 그림에는 고전적 재현에 대한 표상과 그것이 우리에게 열어밝히는 공간에 대한 정의가 존재한다”(Foucault, M., <Las Meninas>, The Order of Things: An Archaeology of the Human Sciences, New York: Vintage Books, 1994, p.16).


3) “푸코가 <시녀들>에 관한 논문을 고전 시대를 다루는 장에 위치시키지 않고 책의 첫 장에 실은 것은 바로 그 작품이 고전 시대와 모던 시대 양자의 사유를 위해 의미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서지원, 103쪽); “<시녀들>은 그가 예술사의 두 ‘거대한 불연속성’으로 본 것, 고전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사이의 중간 지점을 표상한다.”(Las Meninas,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Las_Meninas, 2010.12.22). 


4)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 그림의 이름에 대해서 간략히 확인하도록 하자. 분명 공주를 둘러싸고 두 명의 시녀가 있지만(한 명은 앉아서 공주의 눈높이와 거의 같은 눈높이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서서 공주에게로 몸을 조금 기울이고 있다), 벨라스케즈가 처음 이 그림을 그렸을 때부터 그것이 ‘시녀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 그림은 처음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소장 기관의 목록에 기재되었으며, 1843년에야 비로소 ‘시녀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Wikipedia, Las Meninas).


5) 박정자, 『빈센트의 구두』, 기파랑, 2005, 23쪽.


6) Sabot, P., Lire Les mots et les choses de Michel Foucault, Paris: PUF, 2006, p.35.


7) Steinberg, L., “Velázquez' Las Meninas”, October, Vol. 19(1981, Winter), The MIT Press, p.54., Steinberg는 이 마주침에 기초하여 <시녀들>에서 “상호적 자기 인식”, 즉 “나는 당신이 본다는 것을 본다”는 논의를 도출하며, 이를 통해 <시녀들>이 의식의 거울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8) 그래서 <시녀들>에서 화가는 재현의 층위에서 현시되었고, 국왕부처는 재현의 재현의 층위에서 현시되었다.


9) Foucault, p.16.


10) 박경자, 31쪽; 서지원, 111쪽; “화가가 재현되는 그림 위에 그 화가가 보여질 수 있으며, 동시에 그 화가가 재현하고 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그는 저 두 양립불가능한 가시성의 문턱을 지배한다”(Foucault, p.4).


11) 고전 시대의 에피스테메의 특성에 대해서는 서지원의 해석(서지원, 111-112, 120쪽)을 참고했다. 주지하듯이 ‘재현’과 ‘표상’의 원어는 représentation으로 동일하다.


12) 박정자, 26쪽; 서지원, 101쪽; "거울이 그림에서 재현되는 것 자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 거울은 ... 그림 안에서 모든 가시성 바깥에 있는 것의 가시성을 복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거울이 극복하는 비가시성은 은폐되어 있는 것의 비가시성은 아니다"(Foucault, p.7-8).


13) 모던 시대의 에피스테메의 특성에 대해서도 (고전 시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서지원의 해석(서지원, 118쪽)을 참고했다.


14) Foucault, p.14.


15) Foucault, p.14.


16) Foucault, p.16.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1/01/03 15:31

*이 글은 2010년 가을학기 현상학 세미나의 보고서이다. 2010년 가을학기 현상학 세미나의 주 텍스트는 훗설의『위기』였다.

현상학 보고서

현상학적 심물이원론 대한 검토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현상학적 심리학의 차이를 중심으로―


근대 자연과학과 물질/정신 이원론의 문제  

자연과학은 ‘자연’을 탐구한다. 그런데 자연과학의 탐구대상으로서의 ‘자연’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자연과 동일한 자연인가? 자연과학의 탐구대상으로서의 자연은 물론 우리가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자연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자연을 그 말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스스로 그러함’이라고 이해할 경우, 즉 인간의 인위적인 작용 없이 스스로 자라고 또 쇠하는 무엇이라고 이해할 경우에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과학의 탐구대상으로서의 ‘자연’을 우리가 본래적으로 경험하는 ‘자연’과 구분해야 하는데, 현상학에서는 이 후자의 ‘자연’을 생활세계적 ‘자연’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역으로 ‘생활세계적’ 자연과 구분되는 자연과학적 탐구대상으로서의 자연은 어떻게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인가, 즉 자연과학적인 자연이해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인가. 이에 대해 『위기』에서 훗설은 자연과학의 자연이 ‘이상화’(Idealisierung)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1) 그렇다면 도대체 생활세계적 자연으로부터 ‘이상화된’, 자연과학적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과학적 자연은 자연에 대한 특정한 추상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는데, 물론 그 추상은 자연과학이 자연에서 ‘물체성’(Körperlichkeit)만을 보고자 했다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다. “근대의 자연과학은 스스로를 물리학으로 건립하면서 그 뿌리를 그것이 생활세계에서 단지 물체성만을 보고자 한 일관적 추상 안에 갖고 있다”(230).

 자연에서 물체성만을 보고자 했던 까닭에 자연과학은 자연을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환원할 수 있었는데, 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자연과학적 자연이 바로 연장성을 그것의 주된 특징으로 하는 물질적 자연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의 이러한 물질적 측면에 주목하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자연과학이 근대에 거둔 눈부신 성공과 함께, 단순히 자연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가령 정신과학과 같은) 여타의 학문 분야에도 암암리에 어떤 척도와 같은 것으로서 작용했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물질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인간의 정신, 즉 영혼과 마음을 주제적으로 검토하는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문제이다.

 자연과학적 심리학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로 규정될 수 있는데, 여기서 먼저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간단히 물질/정신의 이원론과 관련하여 오늘날의 물리주의와 훗설이 말하는 자연과학적 심리학의 차이에 대해서 간단히 검토하기로 하자. 오늘날의 물리주의는 물질/정신의 이원론을 거부하고 물질=정신, 즉 물질/정신의 일원론을 지지한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물리주의는 인간의 정신이 궁극적으로는 물질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훗설은 인간의 정신이 물질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지 않았으며, 그가 비판하는 자연과학적 심리학 역시 정신을 물질로 환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었다.

 훗설이 자연과학적 심리학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정신을 물질로 환원하고자 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신/물질의 이원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근대 자연과학의 성공에 힘입어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척도적인 것으로 삼아 인간 영혼에 대한 분석에 적용했다는 점에 있다. 결국 훗설이 자연과학적 심리학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방법론적 일원론에 있으며, 그리하여 이로부터 자연스레 정신/물질에 접근하기 위하여 참된 방법론적 이원론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 도출된다.

 이하에서 우리는 정신/물질의 이원론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와 ―물론 이는 동시에 오늘날의 물리주의가 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 이원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동시에 정신/물질에 접근하기 위한 참다운 방법론적 이원론을 요구하는 이유를 검토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제 먼저 자연과학적 심리학의 영혼 이해를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우리의 논구를 시작하도록 하자.


자연과학적 심리학의 인간 영혼 이해: 데카르트의 영향을 중심으로

앞서 우리는 간략하게 자연과학이 자연의 물체적 측면을 주목하고 이로부터 자연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 추상성과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훗설은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에서도 자연과학적 탐구와 똑같은 의미의 보편적 추상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제 물체적 ‘측면’이 자연과학의 일반적 과제에 속하며 거기서 그 이론적으로 이상화하는 취급방식을 발견했던 이후에, 심리학의 과제는 ‘보완적인’ 것으로서, 즉 바로 영혼적 측면을 그에 상응하는 보편성 안에서 상응하는 이론적 취급방식에 종속시키는 것으로서 특징지어진다”(230). 심리학의 과제는 인간 영혼을, 자연에 대한 자연과학의 탐구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추상적 보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 주어진, 자연과학의 보편적 추상을 보완하는, ‘보완적 추상’의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은 이 보완적 추상의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었는가? 인간의 영혼은 엄연히 물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않은가? 나아가 우리가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인간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한 인간은, 분명 세계 안에서 물체가 경험되는 방식과는 엄연히 다른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간 영혼에 접근하는 방법은 마땅히 자연과학적 방법과는 다른 그 무엇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 사실이며 또 마찬가지로 심리학 역시 추상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더라도, 심리학적 방법론의 추상성과 보편성이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추상적 보편성과 똑같은 추상적 보편성일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훗설이 지적하듯이 심리학은 영혼에 대한 어떤 고유하고 근원적인 개념과 함께 그것의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심리학은 영혼에 대한 전적으로 근원적인 ... 개념과 함께 시작한 것이 아니라 데카르트적 이원론으로부터 유래한 개념과 함께 시작했는데, 그 데카르트적 이원론으로부터 유래한 개념은 물체적 자연과 수학적 자연과학의 ... 이념을 통해 획득된 것이었다”(216). 이로부터 귀결되는 사실은 심리학의 주제인 영혼이 자연과학에서 주목하는 물체적 자연과 똑같은 의미의 실재로서 이해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영혼을 그것의 고유성에 비춰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우선적으로 자연과학적 탐구의 대상인 자연이 우리의 ‘외적 경험’에 기초하여 이해된 것인 반면에 심리학의 탐구 대상인 영혼은 외적 경험이 아닌 ‘내적 경험’에 기초하여 이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있다.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과학에서 탐구하는 물체적 자연을 심리학에서 탐구하는 영혼과 동등한 실재로서 이해하는 것은, 단지 양자를 경험하는 방식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것일 따름이다. 이러한 비고려는 물론 앞서 간략히 살펴봤듯이 데카르트의 실체 이원론과 방법론적 일원론에 근거하는 것인데, 여기서 방법론적 일원론은 무엇보다도 ‘인과 법칙’의 지배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218).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론적 일원론이 거부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영혼에 대한 참된 학문으로서 현상학적 심리학의 가능성을 검토하기 전에 확인해야 되는 것은, 바로 심리학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거부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만약 심리학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자연과학적 심리학이 아닌 현상학적 심리학이 영혼에 대한 참된 학문으로서 요구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적 심리학의 방법론적 일원론에 대한 검토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인간 영혼을 검토하는 데 적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파악될 수 있다. 우선 첫째, 영혼은 물체와 같은 공간성과 시간성을 갖지 않는다. 훗설이 말하듯이 영혼은 물체처럼 연장적이지 않으며 공간을 점하지도 않는다(220). 그리고 둘째, 우리가 앞서 방법론적 일원론의 핵심적 원리로서 인과 법칙의 지배를 확인하였지만, 엄밀히 말해서 물체적인 것과 물체적인 것 사이의 인과성과 물체적인 것과 영혼적인 것 사이의 인과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혼적인 것과 영혼적인 것 사이의 인과성은 다르다(221). 따라서 인간 영혼을 탐구하는 심리학에서 주목하는 영혼적인 것과 영혼적인 것 사이의 인과성이 결코 자연과학에서 주목하는 물체적인 것과 물체적인 것 사이의 인과성과 동일한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간시간성 및 인과성의 차이는 결국 인간 영혼이 (물체에 대한 우리의 외적 경험과 같은 방식으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으로서) 오직 내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비로소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그리고 내적 경험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요구하는 객관적인 탐구 방식에서 주관적인 탐구 방식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릴 것을 요구한다. 내적 경험은 우리의 주관적 영역을 주제적으로 고찰할 때에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인데, 이로부터 다음의 사실이, 즉 자연과학적 방법론과 심리학적 방법론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각각 ‘객관성’과 ‘주관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 이 증시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문제틀을 설정하자마자 당연히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된다. 즉 ‘객관적인’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심리학적 방법론 역시 과연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그것이 주관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리학적 방법론이 과연 상대성을 넘어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물론 우리가 자연과학적 심리학이 문제적이라고 보고서 그러한 심리학이 아닌 또 다른 심리학을 요구한다는 사실 때문에 제기되는 것이다. 거꾸로 만약 우리가 자연과학적 방법론의 추상적 보편성을 공유하는 자연과학적 심리학에 만족한다면, 이러한 물음이 제기될 이유가 없다. 그것은 자연과학적 심리학이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획득한 추상적 보편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연과학적 심리학을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 영혼을 그것의 고유성에 기초하여 탐구하는 대신에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인간 영혼을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연과학적 심리학이 정신/물질에 대한 사이비 이원론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학적 심리학이 정신/물질 이원론을 받아들이면서도 (방법론적 일원론을 통해서) 정신/물질 이원론을 그것의 구체적인 탐구 과정에서 폐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구되는 것은 정신/물질 이원론을 사이비 이원론이 아닌 진정한 이원론으로 확립하는 것, 다시 말해 정신/물질을 그 각각의 고유성에 준하는 방법론에 기초하여 탐구함으로써 정신/물질 이원론의 원칙을 지켜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법론적 이원론이 진정한 이원론이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자연과학적 탐구가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로 (설령 자연과학적 탐구와 똑같은 의미는 아닐지언정) 정신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 역시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있다. 여기서 쉽사리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주관적인 심리학적 방법론이 (물론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획득한 추상적 보편성과는 다른 의미의)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된다. 주관적인 심리학적 방법론이 획득하는 추상적 보편성은 분명 소위 ‘객관적인’ 자연과학적 탐구의 보편성과는 다른 보편성일 것이다. 나아가 주관적인 심리학적 방법론이 획득하는 추상적 보편성은, 물론 학문의 가치로 흔히 통용되는 ‘객관성’으로는 환원될 수 없는, 또 다른 의미의 보편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정한 이원론, 정신/물질의 이원론에 준하는 진정한 방법론적 이원론에 기초하여 인간 영혼을 탐구하는 현상학적 심리학이, 결코 ‘객관적 학문’으로서의 자연과학적 심리학으로부터의 퇴보일 수 없는 이유를 검토하기로 하자.


방법론적 이원론에 기초한 또 다른 심리학으로서의 현상학적 심리학: 설명 vs 기술을 중심으로

앞서 확인하였듯이 현상학적 심리학은 결코 정신/물질의 이원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정신에 대한 탐구를 물질에 대한 탐구와는 달리 엄밀학의 위치로부터 끌어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자연과학에서 이루어지는 물체적 자연에 대한 탐구와 마찬가지로 인간 영혼에 대한 심리학의 탐구 역시 엄밀해야만 한다. 그것은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구분되는 또 다른 심리학으로서의 현상학적 심리학이 학문이 아닌 어떤 사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훗설이 현상학적 심리학을 주장하면서 자연과학에서 수행한 자연에 대한 ‘추상’을 비판한다고 이해해서는 결코 안 된다. 훗설은 (인간 영혼에 대한 탐구에 있어) ‘추상’에서 ‘구체’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훗설은 우리가 엄밀한 학문적 탐구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상이 필요하지만, 이때 추상은 각각의 사태에 고유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혼에 대한 추상도 자연에 대한 추상과 마찬가지로 엄밀한 탐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양자의 추상이 똑같은 것일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 영혼을 그것의 사태에 맞게 탐구하기 위해서 과연 어떠한 ‘추상’이 필요한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를 바로 훗설이 제기한 물음을 상기하면서 검토해 보기로 하자. 『위기』에서 훗설은 “무엇이 심리적 측면에 속하며 그리하여 무엇이 순수하게 내적 지각에 주어지냐는 물음에 대해 우리는 익숙한 방식으로 그것은 인격, 인격적 속성, 근원적이거나 획득된 심리적 성향(능력, 습관)의 기체라고 대답한다”라고 말한다(233). 하지만 동시에 훗설은 이러한 인격, 기체가 다시금 ‘흘러가는 의식 삶’(ein strömendes Bewusstseinleben)으로 소급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심리적 체험의 흐름은 영혼에 대한 추상적 태도 안에서 경험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233).

 정리하면 우리가 인간의 심리적 측면에 속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우리는 보통 그것이 이런 저런 심리적 성향을 그 속성으로 가지고 있는 기체라고, 즉 실체로서의 인격이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이 기체는 다시금 실체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의식류로 소급되는 것이며, 그리고 이 의식류는 우리 영혼에 대한 우리 자신의 추상적 태도 안에서 경험되는 것으로서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한 ‘내적’ 자기 관계를 통해 지각되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 체험들의 현전 영역(Präsenzsphäre)은 오직 그 자신으로부터 그의 ‘내적 지각’으로서 ... 직접적이고 본래적으로 지각되는 것이다”(233-4).

 따라서 이로부터 우리는 결국 내적 지각의 추상을 통해서만 자연과학적 심리학과는 다른 심리학, 현상학적 심리학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현상학적 심리학은 결코 외적 지각에서 이루어지는 추상과 어떤 평행한 의미의 내적 지각의 추상을 통해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234). 우리가 외적 지각의 추상을 통해서, 가령 물체적 자연의 지각을 통해서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자연적 물체의 연장성과 같은 것이, 인간의 심리적 체험들에 대한 내적 지각에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심리적 체험을 아무리 추상한다 해도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연장성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외적 지각의 추상이 아닌) 내적 지각의 추상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는 현상학적 심리학은 인간 영혼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에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 사태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인간 영혼을 (자연과학이 자연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술’하는 심리학이라는 사실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 영혼을 ‘설명’하고자 하는 자연과학적 심리학이 탐구하는 사태에 적합한 방법론과 괴리됨으로써 인간 영혼의 고유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직 설명이 아닌 기술만이 유일하게 근원적으로 참되며 유일하게 가능한 심리학의 시작으로 특징지어 질 수 있는 것이다(227).

 그렇다면 이제 인간 영혼의 현상을 기술하는 기술적 심리학으로서의 현상학적 심리학이 도대체 어떻게 단순히 주관적 상대성에으로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검토하기로 하자.


현상학적 심리학의 판단중지와 환원: 그것의 추상성과 보편성을 중심으로

우리가 자연과학적 심리학과 구분되는 현상학적 심리학에 대해 논구하면서 간과한 사실은 현상학적 심리학이 다름 아닌 자연과학적 태도, 자연인과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 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자연과학적 태도, 자연인과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가 바로 현상학적 심리학을 가능케 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이 자연과학적 태도, 자연인과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가 다름 아닌 현상학적 심리학의 방법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과학적 태도, 자연인과적 태도에 대한 판단중지로부터 비로소 무엇이 현상학적 심리학의 시야에로 들어오는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인격, 즉 주체의 지향적 세계 안에서 주체와 주체에 의해 의식된 지향적 사물 사이의 순수한 내적인 자기 관계, 곧 주체와 주체에 의해 의식된 대상 사이의 순수한 내적인 지향적 관계이다(241). 여기서 우리는 이 지향적 관계가 주체와 주체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 사이의 외적 관계가 아니라, 주체와 주체에 의해 의식된 대상 사이의 내적 관계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주체와 주체에 의해 의식된 대상은 모두 주체에게 지향적으로 타당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인 지향적 관계는 다름 아닌 내적 지각의 추상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으로서, 이로부터 우리는 결국 영혼의 고유한 본질에 다름 아닌 ‘지향성’이 속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239). 그리고 사실 현상학적 심리학은 다름 아닌 이 영혼의 고유한 본질에 속해 있는 지향성, 즉 의식의 지향적 구조를 탐구하는 것이다. 의식의 지향적 구조는 우리의 의식이 ‘~에 대한 의식’(Bewusstsein von ~)으로서(236) 지향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의식의 지향적 구조는 그 자체 보편성을 갖는다.

 이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현상학적 심리학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다. 현상학적 심리학의 보편성은 그것이 탐구하는 의식의 지향적 구조가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도출되는 것이다. 현상학적 심리학은, 개개인의 심리적 측면을 개별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주관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현상학적 심리학은 인간 의식의 지향적 구조를 탐구하는 것으로서, 의식의 지향적 구조는 당연히 현상학적 심리학자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어떤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포함한 모든 영혼에게도 공히 적용될 수 있는 것이며, 그리하여 보편성을 갖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나아가 현상학적 심리학의 추상성 역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현상학적 심리학이 개개인의 개별적인 심리적 현상을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보편적 구조를 추상적으로 탐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추상적 설명을 통해서 그것의 학문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현상학적 심리학은 (물론 여기서 설명이 기술로 대체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추상적 기술을 통해서 그것의 학문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학문으로서의 현상학적 심리학을 통해서 현상학적 심리학과 구분되는 초월론적 철학으로서의 초월론적 현상학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현상학적 심리학의 의의를 그것의 초월론적 현상학 입문 역할과 관련하여 간단히 검토하기로 하자. 


초월론적 현상학의 입문으로서의 현상학적 심리학

현상학적 심리학자가 탐구하는 유일한 대상은 물론 당연히 (자기 밖에 존재하는 어떤 객체가 아닌) 자기 자신, 즉 자아 주체이며, 판단중지를 통해 이 자아 주체 ‘안’에서 내재적으로 고유한 것으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245). 여기서 우리는 현상학적 심리학에서 주체 자신을 주제화하는 수단이 판단중지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판단중지를 통해서 드러난 것이 의식의 지향적 구조임을 확인하였는데, 의식의 지향적 구조는 지향하는 주체와 그 주체에 의해 지향된 대상 사이의 관계를 의미했다.

 물론 우리는 현상학적 심리학적 판단중지를 통해 드러나는 지향하는 주체와 지향된 대상 사이의 관계가 그러한 판단중지 이전의 소박한 자연적 삶의 태도에서도 타당한 것일 수 있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소박한 자연적 삶에서 은폐되어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사실이다. 현상학적 심리학적 판단중지를 통해서 주체가 이미 항상 지향적으로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실존한다는 사실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체의 대상 구성 작용이다. 마치 대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온 초월론적 주체의 대상 구성 작용은, 사실 대상을 그러한 대상으로서 의미 부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런 까닭에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지향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소박한 자연적 삶에서 은폐되어 있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연관 관계가 현상학적 심리학적 판단중지를 통해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태에 부적합한 추상에 기초한 자연과학적 심리학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된 현상학적 심리학의 의의를 확인할 수 있다.

 현상학적 심리학의 의의는 구성 작용을 수행하는 초월론적 주체의 기능에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게 함으로써, 주체성을 발본적으로 혁신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하는 데 있다. 요컨대 현상학적 심리학이 드러낸 것은 초월론적 주관의 차원인데, 이 초월론적 주관의 차원은 (현상학적 심리학이 그 입문의 역할을 할 수는 있어도) 현상학적 심리학 자체를 통해서는 드러날 수 없는 것이며, 현상학적 심리학이 발본화되어 초월론적 현상학으로 변모될 때에만 비로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현상학적 심리학이 단순히 정당한 방법론적 이원론을 요구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문을 최종적으로 정초하는 초월론적 현상학에로 변모되어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 정초의 과제가 제기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애초에 정신/물질 이원론에 부합하는 정당한 방법론으로 제시된) 방법론적 이원론 자체의 의의를 확인하게 된다.

 초월론적 현상학이 방법론적 이원론에 근거한 현상학적 심리학의 발본화를 통해서만 가능해 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방법론적 이원론의 의의를 다음의 두 가지로 제시할 수 있는데, 그것은 우선 첫째, (영혼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그 사태에 맞게 정초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점, 그리고 둘째, (모든 학문을 최종적으로 정초하는) 초월론적 현상학의 과제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1) Husserl, E., Die Krisis der euri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tale Phänomenologie: Eine Einleitung in die phänomenologische Philosophie(Haag: Martinus Nijhoff, 1954), p.224.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0/10/03 16:10

연구공간 L 발표토론회(2010.10.2)

레닌『국가와 혁명』에 대한 검토: 프롤레티리아 독재와 국가 사멸을 중심으로

들어가며
『국가와 혁명』의 초판 서문에서 레닌은 (바로『국가와 혁명』이 출판된 해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혁명을 제국주의 전쟁에 의해 야기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된다고 말한다.1) 그렇다면 레닌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와 혁명』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혁명과 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나아가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은 이 각각의 물음에 분명한 답변을 제시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가 특히 레닌적 혁명의 상에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레닌에게서 국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이 국가를 폐지해야만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도록 하자.

국가의 폐지와 국가의 사멸
맑스와 엥겔스의 논의를 따라서 레닌은 국가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통치하기 위한 기관이자 계급들 사이의 갈등을 조절함으로써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행하는 억압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는 기관이라고 말한다(18-9). 따라서 국가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화해불가능한 계급적대의 산물로서) 지배계급이 행하는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때문에, 억압받는 계급의 해방은 ‘폭력혁명’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물론 폭력혁명은 바로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것이며, 따라서 계급해방은 오직 국가의 파괴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레닌은 국가가 궁극적으로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소멸에 있어 국가의 ‘폐지’ 과정과 국가의 ‘사멸’ 과정을 구분한다.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은 분명 국가를 폐지하는 것이지만 ‘국가’는 ‘폐지’된 이후에 다시금 ‘사멸’해야 한다. 어떻게 국가가, 폐지된 다음에 다시 사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하여 ‘부르주아 국가’가 폐지된 다음에 남아 있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잔존물’이 사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엥겔스의 논의를 받아들이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엥겔스에 의하면, 부르주아 국가는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에 의해서 ‘폐지’되는 것이다. 혁명 후에 사멸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가, 또는 준군가(semi-state)이다(30).”

 따라서 궁극적으로 국가는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국가의 소멸은 단순히 국가기구의 파괴를 통해서 일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두 단계로, 즉 첫째,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에 의한 부르주아 국가의 ‘폐지’ 과정, 둘째, 부르주아 국가의 폐지 과정 이후에 잔존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 혹은 준국가의 ‘사멸’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론 레닌에게서 국가의 소멸이 위와 같이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첫째 단계와 둘째 단계 사이에는 어떤 발본적인 단절이 존재한다. 그것은 부르주아 국가가 결코 어떤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이행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레닌에게서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프롤레타리아 국가로의 이행은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폭력혁명 없이 부르주아 국가를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할 수는 없다(34-5).”

 그런데 그렇다면 폭력혁명을 통해서 부르주아 국가를 대체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도대체 무엇인가? 앞서 우리는 레닌이 맑스와 엥겔스를 따라서 국가를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통치하기 위한 기관이라고 규정했음을 확인하였는데,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 국가에도 그것이 ‘국가’인 이상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더 이상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이다. 레닌은 폭력혁명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치적 권력을 쟁취함으로써 기존의 부르주아 국가를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로 변형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제 계급적대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국가가 필요 없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 후에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사멸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42).2)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사멸하기 시작하는 것이지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프롤레타리아 국가로의 이행 이후에 곧바로 사멸해 버리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레닌이 굳이 국가의 ‘폐지’ 과정과 국가의 ‘사멸’ 과정이라는 두 단계의 국가 소멸 과정을 제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폭력혁명을 통한 부르주아 국가의 폐지 과정 이후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바로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유명한 그리고 악명 높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요청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 이전의 지배계급이었던 부르주아지를 억압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제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는 소수의 유산자가 다수의 무산자 노동대중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특수한 물리적 강제력’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 부르주아지를 억압하는 ‘특수한 물리적 강제력’으로 대체된다(30).

 물론 이 프롤레타리아 권력에 의한 부르주아 권력의 대체는 기존 권력의 파괴 없는 대체, 다시 말하면 권력 자체의 질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권력의 이전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권력은 부르주아 권력과는 질적으로 구분된다. 프롤레타리아 권력과 부르주아 권력 사이의 질적 차이는 사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문제,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사이의 차이에서 연원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후에 이 문제를 보다 자세히 검토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레닌이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하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함의
먼저 (프롤레타리아 국가로의 이행 이전에) 부르주아 국가의 ‘폐지’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요청되었던 폭력혁명이 오직 ‘특수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라는 레닌의 인식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레닌은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타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만, 즉 자신의 경제적인 존재조건이 이러한 임무에 사전기초가 되며, 임무수행 가능성을 제공하고, 그 임무 성취에 필요한 권력이 주어지는 특수한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39).” 여기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단순히 부르주아지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 즉 무산자계급 대 유산자계급, 노동계급 대 자본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계급적 특수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단호하게 레닌은 지속적으로 혁명적일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며, 그 까닭은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부르주아지와의 투쟁에서 모든 노동대중과 피착취대중을 통일시킬 수 있고 부르주아지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38).

 그런데 왜 프롤레타리아트가 모든 노동대중과 피착취대중을 통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일 수 있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그 경제적 존재조건으로부터 비롯된다. 레닌에게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는 것은 단순히 부르주아 국가를 폐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 폐지 이후에 부르주아 계급의 필연적이고 결사적인 저항을 억누를 수 있어야 하며, 또 무엇보다도 새로운 경제체제로 모든 노동대중과 피착취대중을 조직할 수 있을 때에만 쟁취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당연히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레닌이 말하는 새로운 경제체제, 즉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도 (설령 부르주아 경제체제에서처럼 자본이 행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모든 노동대중과 피착취대중의 조직화가, 그래서 ‘농민’, ‘쁘띠 부르주아지’, ‘반(半)프롤레타리아트’ 등의 수많은 ‘대중’에 대한 ‘지도’가 필요한 것인가? 당연히 그러하다. 그것은 레닌이 말하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역사적 발전으로부터의 퇴행이 아니라 진전이라면, 당대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생산방식을 고려할 경우에, 특수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농민, 쁘띠 부르주아지, 반(半)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가 절대적으로 요청되기 때문이다.

 레닌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물론 기존 착취 계급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대중들에 대한) 지도의 필요성으로부터 요청되는 것이다. 수많은 대중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프롤레타리아 국가권력, (설령 부르주아지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를지라도) 중앙집중화된 권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의 중앙집중화된 권력을 긍정하는 레닌의 방식에 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의 경제적 존재조건으로부터 그 정치적 존재조건을 도출한다. “대규모 생산에서 담당하게 되는 경제적인 역할 덕분에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모든 노동대중과 피착취대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39).”

레닌의 프롤레타리아 주체성과 (그 주체성에 근거한) 조직론의 의의와 한계
(레닌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대규모 생산에서 담당하는 경제적 역할은 다름 아닌 ‘전문노동자’3)로서의 그것이다. 즉 레닌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는 고숙련 노동자가 다른 노동자들에 대해 지도적 위치에 있으며 그리하여 노동계급 구성이 위계적이었던, 자본주의의 특정한 역사적 국면의 주체성을 의미한다. 노동의 전문성과 공장 안에서의 전문노동자-비전문노동자의 위계가 전문노동자가 범례적인 주체성으로 되는 조건이 되며, 나아가 이로부터 이 범례적 주체성에 정치적 과제가 부여되는 것이다. 그 정체적 과제는 우선적으로 폭력혁명을 통하여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고, 전체 노동계급의 대표로서 부르주아 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며, 나아가 새로운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수많은 노동대중을 지도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국가와 혁명』에서 말해지는 혁명적 주체성과 그 주체성에 근거한 조직론이 우선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당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생산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우리는 『국가와 혁명』에서 말해지는 혁명적 주체성과 그 주체성에 근거한 조직론이 동시에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화와 더불어서 분명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전문노동자의 헤게모니가 소실된 오늘날 과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레닌은 맑스의 “... (1)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발전에 있어서 오로지 그에 고유하고(특수하고) 역사적인 단계에만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과, (2)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는 사실 ...”4) 이라는 언명으로부터, 맑스주의를 계급투쟁으로 한정시키는 것은 맑스주의를 축소하고 왜곡하는 것이며, 오직 계급투쟁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인식에까지 확장하는 사람만이 맑스주의자라고 말하지만(49), 분명한 것은 레닌이 말하는 혁명적 주체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역시, 자본주의의 특수한 역사적 발전단계를 체현하는 생산적 주체성을 정치적으로 독해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오늘날의 혁명적 주체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레닌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오늘날 탈근대적인 삶정치적 생산의 주체성이 전문노동자가 아닌 다중이며 다중은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계급으로는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오늘날의 혁명적 주체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도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레닌이 (그리고 맑스가 말하는) 혁명적 주체성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를 우리는 오늘날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있어 어떻게 규정할 것이며, 나아가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로 하여금 이와 같이 물음을 다시 던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국가와 혁명』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레닌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생산방식을 검토하고 생산적 주체성을 혁명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식을 물어야 한다는 것!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의 민주주의의 문제
그런데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주는 교훈 중 하나를 생산적 주체성의 혁명적 조직화라고 규정하자마자, 필자가 보기에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는 전문노동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뿐만이 아닌) 농민, 쁘띠 부르주아지, 반(半)프롤레타리아트 등의 주체성의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바로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 이후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의 민주주의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앞에서 간단히 살펴봤듯이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은 부르주아 국가를 폐지하지만 국가 자체를 폐지하지는 않으며, 부르주아 권력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 권력으로의 대체는 권력의 단순한 이전이 아닌 권력 자체의 질적 변화를 수반하고, 권력 자체의 질적 변화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의 질적 변화를 함축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부르주아 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국가조직이 근본적으로 상이한 형태를 지닌 국가조직으로 대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국가가 존재할 때의 민주주의”와 “국가가 사멸될 때 그와 더불어 사라지는 민주주의”로 구별하면서(30), 부르주아 국가가 존재할 때의 민주주의의 형식성을 비판한다.5)

 하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성에 대한 레닌의 비판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오히려 레닌은 자본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가장 양호한 국가형태가 민주공화국이며(32), 또 민주공화국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가장 근접한 체제라고 말한다(90). 따라서 레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구별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국가가 사멸될 때 그와 더불어 사라지는 민주주의”로 규정할 때,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 ‘국가’ 자체가 사멸하면서 동시에 민주주의가 사멸한다는 레닌 주장에 대한 해석에는 일정한 주의가 요구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가장 근접한 체제가 민주공화국이라면, 왜 국가의 사멸과 더불어 민주주의 역시 사멸해야 되는가?

 그것은 바로 ‘민주공화국’이라는 개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닌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다수에 대한 소수의 복종을 승인하는 하나의 국가, 다시 말해서 하나의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항하여 강제력을 체계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대중의 한 부류가 여타 다른 부류에 대하여 권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체”일 뿐이기 때문이다(104). 따라서 당연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설령 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가 존재할지라도,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억압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닌은 이러한 억압이 실재함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언명을 통해 명명백백하게 드러낸다. “그러나[설령 자본주의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가장 양호한 국가형태가 민주공화국이더라도] 우리는 가장 완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화국에 있어서조차도 대다수 인민들이 임금노예라는 것을 망각해도 좋은 그 어떠한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32).”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성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인민 주권이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것, 그리하여 그와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는 폭력혁명과 더불어 폐지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과 함께 형식적 민주주의가 아닌 실질적 민주주의 역시 사멸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가 레닌의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민주주의 사멸론(?)으로부터 ―물론 레닌 당대의 생산방식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던― 역으로 우리가 오늘날 논의하는 절대적 민주주의의 단초들을 독해할 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의 함의
레닌은 민주주의가 평등을 의미하며, 시민의 평등에 대한 형식적 승인, 모든 시민이 국가의 구조를 결정하고 국가의 행정가일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지녔다는 사실에 대한 형식적 승인을 의미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있어서 평등의 의미는 위와 같은 형식성이 아닌 실질성, 즉 그것이 오직 ‘계급의 폐지’로서 해석될 때에만 유의미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123). 레닌이 보기에 계급이 폐지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형식적 평등은 결코 실질적인 것일 수 없다. 그래서 레닌은 선거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아닌 “의회 없는 민주주의가 상정될 수도 있고 상정되어야만 한다(65)”고 말한다.

 그런데 레닌이 말하는 의회 없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의기구가 명실상부하게 ‘활동하는’ 기구로서 운영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레닌이 의회와 대의기구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적 선거를 통해서 구성되는 의회는 부정하지만 대의기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레닌은 “대의기구 없는 민주주의, 특히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도 없다(65)”고 말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에서도 대의기구가 여전히 존재할 것임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레닌이 (설령 의회를 부정했더라도) 대의기구를 긍정함으로써 여전히 전위에 의한 대중의 대의라는 전위-대중의 이분법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형식이 아닌 실질을 강조하는 레닌의 문제의식을 통해서 읽어낼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과정으로서의 또 다른 의미의 혁명, 부르주아 국가를 폐지하는 과정으로서의 폭력혁명이 아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영구혁명(!)이다.

 우선적으로 너무도 분명한 것은 형식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로부터는 결코 실질적 민주주의에로 나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레닌에게서 형식적 민주주의는 ‘사멸’ 이전에 ‘폐지’되어야 한다. 설령 민주주의를 최대한도로 발전시키고, 이러한 발전에 조응하는 형식을 찾으며, 이러한 형식을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사회혁명을 위한 투쟁의 과제들 중 하나임이 분명하더라도 그러하다(99). 중요한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가 단순히 부르주아 국가가 폐지되는 것과 동시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과 함께 도래한다는 점이다. 레닌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만, 즉 부르주아 국가든 프롤레타리아 국가든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지고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111).6)

 여기서 우리는 부르주아 국가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만이 아니라, 우선적으로는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에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만, 진정한 실질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레닌의 주장을 접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실질적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의한 생산수단 독점의 사멸, 나아가 ‘특수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의 독재의 사멸을 통해서만 비로소 도래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이 사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물론 레닌 당대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생산방식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통해 도출된 혁명적 주체성과 그 주체성에 근거한 조직론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7) 그런데 이로부터 역으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즉 레닌이 말하는 국가의 사멸이 궁극적으로는 생산방식의 물적 토대 자체의 변형에 기초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는 특수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물질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에 불필요하게 될 때,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생산수단 독점이 사멸할 때, 그래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 없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농민, 쁘띠 부르주아지, 반(半)프롤레타리아트 등이 자유롭게 생산수단을 재전유하여 그들 자신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할 수 있을 때, 오직 그때에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레닌에게 국가의 사멸은 생산방식의 물적 토대 자체의 변형에 기초해 있으며, 이는 결국 국가의 사멸이 생산방식의 물적 토대 자체의 변형에 기반한 생산적 주체성의 변형과 결부될 수밖에 없음을 함축한다.

코뮤니즘 사회의 두 번째 국면과 습관화의 문제
레닌에게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기초한 사회주의 사회는 코뮤니즘 사회의 첫 번째 국면, 혹은 낮은 국면이다. 그리고 레닌에게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코뮤니즘 사회의 첫 번째 국면이 코뮤니즘 사회의 두 번째 국면, 보다 높은 코뮤니즘 사회에로 이행하면서 사멸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코뮤니즘 사회의 두 번째 국면이 완전히 도래하기 전까지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여전히 존속한다. 레닌은 분명하게 이러한 ‘국가’가 프롤레아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는 시기인 정치적 이행기가 없이는 결코 보다 높은 코뮤니즘 사회에로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한다(108).

 그런데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국면과 두 번째 국면의 코뮤니즘 사회가 모두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탄생한 것, 그리하여 그로부터 진보한 것이지 원시 공산주의 사회로 퇴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코뮤니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탄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이룩한 발전된 생산력에 기초하여 코뮤니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레닌은 자본주의가 대규모의 ‘생산’, ‘공장’, ‘철도’, ‘우편제도’, ‘전화시설’ 등을 창조해 왔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기존 국가 권력의 대부분의 일들이 단순화되고 간단해졌기 때문에 교육받은 모든 사람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60-1). 요컨대 자본주의의 발전된 생산력은 국가 기능을 단순화하는데(66), 국가 기능의 단순화는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기능을 최소한으로 축소시켜서 (특권적 관료집단이나 상비군의 수뇌부로 구성된) 특권적 소수의 특수 기관 대신에 대다수 인민이 그와 같은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59). 다시 말하면 국가 기능이 점점 더 인민 전체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프롤레타리아 국가는 사멸해 가는 것인데, 이러한 사멸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특권적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그러한 국가 행정의 기능의 인민 전체에 의한 습득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서의, 그 기능들에 대한 인민 전체의 ‘습관화’(67)이다.

 여기서 물론 레닌은 국가의 사멸이라는 테마 아래에서 주로 자본주의가 이룩한 국가 행정 기능의 단순화에 관심을 갖지만, 사실 이러한 기능의 단순화가 국가 행정의 단순화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나아가 습관화 역시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국가 행정 기능의 습관화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능의 단순화와 습관화는 사회의 전체 영역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사멸하는 과정에서 폭력혁명과는 또 다른  레닌적 혁명의 상에 대한 단초를 얻을 수 있다.   

 레닌은 국가 행정 업무 참여의 기초가 되는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획득되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편업무, 철도, 대규모 공장, 대규모 상업 등의 거대하고 복잡하며 사회화된 장치에 의해서 수백만 노동자들의 훈련과 학습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한다(124). 여기서 ‘거대하고 복잡하며 사회화된 장치’에 의해서,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훈련받고 학습받은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인 규칙들’(111)이다.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훈련받고 학습받은 것은 국가 행정 기능들만이 아닌,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이며, 따라서 노동자들이 익숙해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이지, 단순한 국가 행정의 기능들만이 아니다. 레닌은 이러한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의 습득이 습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그것이 단순한 기능들의 기계적 주입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 아닌 한, 국가의 사멸은 단시일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가의 사멸은 점진적이고 또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따름이다.8) 그래서 분명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언제 사멸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레닌에게서 그 물음은 오직 농민, 쁘띠 부르주아지, 반(半)프롤레타리아트 등 모든 대중이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에 실제로 익숙해지는 과정의 귀결로서만 답해질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레닌에게서 읽어낼 수 있는 생산적 주체성의 자기변형과정으로서의 혁명
필자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모든 대중이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 익숙해지는 과정을 절대적으로 유물론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에 대한 준수는 어떤 내면적 도덕률에 대한 준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사회적 삶의 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의 규칙들에 대한 준수를 의미하며, 따라서 이러한 규칙들을 습관화한 새로운 생산적 주체성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체성은 특수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인민들]의 노동이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노동할 만큼 아주 생산적으로 [된](119)” 생산적 주체성이며, 그리하여 “모든 인민이 관리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또 실제로 사회적 생산을 독자적으로 관리(125)”하는 생산적 주체성이다.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것은 바로 레닌에게서 읽어낼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에 있어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새로운 생산적 주체성이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사멸이 부르주아 ‘국가’를 폐지하는 폭력혁명이 아닌 또 다른 의미의 혁명, 점진적이고 자발적으로 인민의 사회적 삶의 물질적 생산방식을 변형하는 혁명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 혁명은 생산적 주체성의 점진적이고 자발적인 자기 변형의 과정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영구적 자기변형 과정으로서의 혁명에서 (레닌이 생각했듯이) 민주주의는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는 결코 이루어진 적이 없는 방식으로 그 자체 혁신되는 것, 즉 우리 삶의 실재, 우리 삶의 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의 영역 안에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바로 여기에 우리가 오늘날 논의하는 절대적 민주주의로 레닌적 혁명론을 발전키실 수 있는 단초가 있는 것 같다.9)


1) V. I. 레닌, 『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논장, 1998, 14쪽. 이하『국가와 혁명』의 인용은 본문에 쪽수만을 표기한다.

2) 강조는 필자. 이하에서 『국가와 혁명』인용의 강조 표기는 모두 필자가 한 것이다.

3) 마이클 하트, 『네그리 사상의 진화』, 정남영․박서현 옮김, 갈무리, 2008, 116쪽.

4) 맑스, 『맑스․엥겔스 서한집』, 모스크바, 1965년, 69쪽; 레닌, 『국가와 혁명』, 49쪽에서 재인용, 강조는 필자.

5) “몇 년에 한 번씩 어떠한 자들을 지배계급으로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의회를 통해 민중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입헌군주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공화국에 있어서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진정한 본질인 것이다(63).”

6) 물론 레닌은 여기에 “그리고 오직 그때에만 민주주의는 사멸되기 시작할 것이다.”고 말한다. 그것은 레닌이 말하는 ‘코뮤니즘 사회의 최초 국면’으로서의 사회주의 사회,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는 (설령 의회가 폐지되었을지라도) 대의기구가 존재하지만, ‘보다 높은 코뮤니즘 사회’에서는 이러한 대의기구 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7) 우리가 확인했듯이, 당대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생산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레닌 자신이 혁명적 주체성과 그 주체성에 근거한 조직론으로 ‘전문노동자’에 기반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요청한 것이지 않은가.

8) “‘국가는 사멸한다’라는 표현은 아주 정확한 용어 선택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그 과정의 점진성과 자발성을 지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습관만이 그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의심할 여지없이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경우를 둘러보건대 착취가 사라지고, 분노를 일으키거나 주장을 내세우게 하거나 폭동을 불러일으키게 하거나 억압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어떻게 인민들이 기꺼이 사회적 교류의 필수적인 규칙들을 준수하는 데 익숙해지는가를 알아보면 그 답이 나오는 것이다(111-2).”

9) 그러나 주의하자. 우리는 레닌의 국가론과 혁명론이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참극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에게는 레닌의 재독해는, 레닌의 국가론과 혁명론이 이러한 참극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한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레닌에게서 재독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한에서는, 분명한 한계를 갖는 것처럼 보인다.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0/08/09 16:38

*이 글은 지난 7월 31일에 있었던 연구공간 L 발표토론회의 원고를 일부 수정한 것이다. 발표 후에 가졌던 토론 시간에서 여러 가지 수정 및 보완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정 및 보완 사항을 간단히 소개하면, 우선적으로 이 글에서 소외된 형태의 기계, 즉 들뢰즈와 가따리가 말하는 ‘기계적 노예화’에 대한 논의가 부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이 글에서 부정적 추상기계를 중심으로 삶권력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부분이 있었어야 되었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기계 개념 자체를 보다 세밀하게 규정하여 논의를 전개했어야 됐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위와 같이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부분을 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또 ‘일의성’ 개념을 보다 세밀하게 규정했어야만 했다. 일의성 개념의 의미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부재한 것은 사실 그에 대한 고민의 부족을 반영한다. 토론 시간에서도 지적되었지만 집단성, 복수성(複數性) 개념 보다는 공통성, 특이성 개념을 통해서 존재의 일의성 및 삶정치적 생산을 논구하는 것이 필요했었다. 그리고 토론 시간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인데 사실 삶정치적 생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존재의 일의성이 아니라, 존재의 일의성을 넘어서는 존재의 혁신인 것 같다. 그래서 삶정치적 생산의 시대에 생산적 주체의 능력의 변화가 곧 존재의 혁신이 된다는 것을, 보다 중심적인 논구의 과제로 삼았어야만 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주체성의 생산이자 존재의 혁신인 삶정치적 생산이 생산적 주체의 능력의 변화를 함축한다는 것, 바로 이 논점에 대한 논구를 중심적 과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요강』에 대한 균형적 인용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발표 후에 가졌던 토론 시간을 통해서, 맑스를 철저히 독해할 필요가 있다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지적들이 있었는데, 사실 이 모든 지적들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 글은 단순한 부분적 수정이 아닌 전면적 개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오류를 남겨둔 채 이 글을 단지 이후의 작업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물론 실패한 기초 작업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물론 이 실패한 기초 작업은 나에게 모호했던 많은 것을, 물론 아직도 많은 것이 모호한 채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그전보다는 더 분명하게 지각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후의 작업 역시 어쩌면 또다시 실패한 작업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후에는 그전보다 더 잘 실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논평해 주신 연구공간 L의 연구회원들과 정 선생님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고마워용~ 감사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

 

연구공간 L 발표토론회(2010.7.31)

인간, 자연, 그리고 기계

들어가며

본고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의 관계를 탐구한다. 우리의 통상적 표상은 소위 인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구분하며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을 구분하고 나아가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그리고 기계적인 것이 명확히 구분된 세계에 살고 있는가? 우리의 실재는 상호 명확히 구분되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로 이루어져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의 관계는 우리의 실재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통해서 탐구되어야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존재론적 고찰은 쉽사리 탈역사적인 혹은 초역사적 탐구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며 나아가 비정치적인 탐구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오늘날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계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있을 수 있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존재론의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있을 수 있는 가능한 하나의 역사적․정치적 존재론의 가능성을 확인하도록 하자.


인간과 자연

통상적으로 우리는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명확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하며 또 인간과 자연 역시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인공적인 것을 자기 자신의 기획에 따라 의지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우리는 자연을 그러한 의지적 생산의 영역과는 구분되는 무엇, 스스로 그러한 것으로 존재하는 어떤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의미의 자연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 표상은 그 자체 타당한 것인가?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자연에 대한 통상적 표상은 우리가 자연을 인간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어떤 실체와 같은 것으로 고찰할 경우에만 타당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이, 그리고 인간이 과연 상이한 두 가지 분리된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인간의 외부에 실체로서 존재하는 자연, 즉 외적 자연의 존재를 긍정하는 입장이 간과하는 것은 바로 인간과 자연의 능동적이고 실천적인 접촉이다. 인간의 생산적 활동은 자연을 변형한다. 하지만 변형된 자연은 동시에 인간 자신의 변형의 토대가 된다.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의 생산적 활동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자연, 그리하여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는 ‘자연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자신의 생산적 활동을 통해서 자연을 다시금 자기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어떤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단순히 인간 주체에 대한/맞선 객체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주체적 생산 활동을 통한 자연의 변형과 이에 다시금 근거하는 인간 자신의 변형이라는 문제는 그래서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자연이라는 문제틀 보다는 인간적 자연 및 자연적 인간의 신체의 연장(延長)이라는 문제틀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인간과 자연을 주-객의 문제틀로 이해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실체론적 접근법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던 양자의 관계적 측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강점을 갖는다. 하지만 주체와 객체의 문제틀은 여전히 능동적 주체로서의 인간과 수동적 객체로서의 자연이 우선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한 다음 주체의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에 의해 비로소 양자의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본다.

 자연은 이미 항상 인간사의 일부였으며 그래서 결코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무엇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인간의 생산과 재생산의 역사가 인간사라면, 인간사는 그 자체 인간적 자연과 자연적 인간의 생산 및 재생산의 역사일 따름이다. 인간의 형성사는 자연의 형성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양자는 하나의 동일한 과정이다. 그것은 주체의 형성사와 이와 상관있는 객체의 형성사, 즉 상호 분리되어 있는 두 개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자연의 신체가 연장되는 하나의 역사이다.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 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바로 자연의 내재성 테제이다. 자연의 내재성 테제는 자연이 인간과 분리되어 있으며 또 인간에 대립하는 어떤 실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자연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나아가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두 가지 상이한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객의 문제틀로 파악하여 인간에 의한 자연의 변형,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하는 입장조차도, 자연 안의 인간, 인간 안의 자연에 눈감음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을 넘어서지 못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며 따라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자연에 대한 자연의 관계에 다름 아니다.

 자연의 내재성 테제는 인간이 자연적 인간이며 동시에 자연이 인간적 자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연의 내재성 테제는 인간과 자연을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보는 것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인간-자연에 의한 인간-자연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에 전제되어 있는 사상, 즉 자연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생산적 활동을 어떤 특수한 기술적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사실은 인간이 부재할 경우에만 자연이 진정으로 ‘자연적’일 수 있다는 사상을 거부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자연과 인간은 오직 ‘역동적 통일성’(dynamic unity)으로서 존재할 따름이다.1) 자연과 인간의 역동적 통일성에 대해 들뢰즈와 가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인간과 자연은 서로 대적하는 두 개의 대립된 항목이 아니다. ... 오히려 이것들은 하나의 동일한 본질적 실재성, 즉 생산자-생산물이다.”2) 인간과 자연은 대립되는 두 가지 상이한 실체가 아니며 하나의 동일한 본질적 실재성으로서의 생산자-생산물, 즉 인간-자연이다.

 하지만 인간-자연의 생산에 기초한 유물론적인 자연 이해, 즉 자연의 내재성 테제가 어떤 비역사적, 초역사적인 테제일까?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이미 모든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가 살아 있는 인간의 존재이자 이들과 자연의 관계라고 말하면서,3) 이러한 인간의 역사는 “그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 성과와 생산력의 총합,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연에 대한 관계 및 개인들 상호 간의 관계”를 통해서 전개된다고 말한다.(73; 강조는 필자)

 인간-자연의 생산은 역사적이며 따라서 역사성을 탈각한 자연의 내재성 테제는 그것이 설사 인간적 자연 및 자연적 인간에 대해 말한다고 할지라도 인간과 자연을 단지 추상할 따름이다. 인간-자연의 생산력의 발전은 그 자체 역사적이며 따라서 이제 우리는 자연의 내재성 테제를 역사화하기 위하여, 그래서 그것을 실재적 경향에 적실한 추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자연에 하나의 항 ―즉 ‘기계’― 을 추가해야만 한다. 


기계란 무엇인가?
인간과 자연이 분리된 두 가지 실체가 아니며 또 단순히 어떤 능동적 주체와 수동적 객체로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하여 오직 인간-자연에 의한 인간-자연의 생산 및 재생산 과정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생산 및 재생산에서 주체성의 능동적 측면이 탈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인간-자연의 생산 및 재생산에서 주체성은 객체로서의 수동적 자연에 대한 주체의 능동적 변형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연에 의한 인간-자연의 자기 관계적 생산성에 놓여 있다.

 맑스가 『요강』의 소위「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자연은 기계를, 기관차를, 철도를, 전자 전보를, 자가 활동적 방적기를 만들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 산업의 산물이다. 자연적 질료는 자연에 대한 인간 의지의 기관으로 변형되며, 혹은 자연에 대한 인간적 관여의 기관으로 변형된다. 그것들[그 기관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 두뇌의 기관, 객관화된 지식의 힘이다”라고 말할 때,4) 필자가 보기에 맑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주-객 관계를 넘어 인간 신체의 연장으로 사유하는 동시에 인간적 자연이자 자연적 인간의 생산에 있어서의 어떤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로는 환원될 수 없는 주체성을 승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말해진 어떤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로는 환원될 수 없는 주체성은 자연을 변형하는 인간 두뇌의 기관, 객관화된 지식의 힘인 산업으로, 즉 “지식과 기술, 사회적 두뇌의 일반적인 생산력의 축적”인 산업으로(694), 그리하여 무엇보다 과학의 기술적 적용을 통해서 생산과정 안에 등장한 기계로서의 고정자본으로 드러난다(699). 「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맑스는 분명 과학의 기술적 적용을 통해서 고정자본이 기계로 등장할 때 자본은 완전한 발전을 이루며(699), 자본이 완전한 발전을 이루게 되면 “노동의 특수한 양태는 기계의 형태로 노동자에서부터 자본으로 이전되며 그리하여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이 평가 절하되고, 그래서 기계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게 되며], 살아 있는 노동자들의 활동이 기계의 활동으로 된다”고 말한다(704).

 「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로는 환원될 수 없는 주체성은 과학의 기술적 적용을 통한 사회적 두뇌의 생산력을 체현하는 고정자본으로서의 기계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기계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게 된다는 맑스의 서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맑스는 주체성으로서의 기계가 개체로서의 주체, 혹은 개체들의 집합으로서의 노동자 외부에 어떤 객체로서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맑스에 충실한 문헌학을 한다면 기계를 주체성으로 독해하는 것, 기계를 자연-인간의 생산과 재생산 과정에서 인간-자연의 신체의 연장으로서의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로는 환원될 수 없는 주체성으로 독해하는 것은 분명 「기계에 대한 단상」을 오독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오늘날의 자연-인간의 생산과 재생산을 적실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맑스에 대한 창조적(?) 오독이 필수적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고정자본으로서의 기계, 그래서 노동자 주체의 투쟁 대상으로서의 기계가 아닌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를 넘어선 주체성으로 기계 바로 오늘날의 탈근대적 생산양식을 표현할 수 있는 적실한 개념인 것 같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는 탈근대적 생산양식과 호흡하기 위하여 네그리와 하트 역시 맑스의 「기계에 대한 단상」을 창조적으로 오독하는 것처럼 보인다.

 『디오니소스의 노동』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맑스가 ‘일반지성’이라고 명명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노동협력의 갈수록 복잡해지는 네트워크 및 생산의 스펙트럼속으로의 봉사노동(Caring Labor)의 통합 그리고 광범한 노동과정들의 컴퓨터화 등으로 표현되는, 노동의 변형이라고 말한다.5) 그래서 네그리와 하트는 “고정자본의 발전은 사회의 일반적 지식이 직접적인 생산력으로 된 정도를 가리키며, 그리하여 그와 같은 정도로 사회적 삶의 과정 자체는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에 있게 되며 그에 조응하여 변형된다”(Marx, 706)는 「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말하진 일반지성을 객체적 생산력으로서의 고정자본으로부터 다시금 주체화하고 있다.6)

 네그리와 하트는 과학의 기술적 적용을 통해 구축된 객체적, 물질적 생산력으로서의 고정자본의 발전을 중심으로 일반지성을 독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 정보, 소통, 정동 등의 형태를 띠는 비물질적 노동과 이러한 비물질적 노동의 주체적이고 네트워크적인 협력을 중심으로 일반지성을 독해하고 있다. 필자 역시 「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언급된 맑스의 고정자본으로서의 기계는 생산양식의 현대적 변화에 상응하여 이제는 객체가 아닌 주체로, 하지만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가 아닌 주체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기계를 주체성으로 이해하자마자 이제 기계적 생산이 오늘날의 인간-자연의 생산과 재생산의 적실한 표현임이 드러난다. 네그리와 하트는 오늘날의 비물질적 노동이 분명 지적이고 정보적이고 소통적이고 정동적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신체적(corporeal)이라고 말한다.(네그리/하트, 40; 강조는 필자) 그런데 비물질적 노동의 신체성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의 기계적 측면이다. “사이버네틱한 부속 기관들은 과학기술화된 신체 속으로 병합되어 그것의 성질의 일부로 되었다.”(40)

 하지만 오늘날의 기계적 생산이 단순히 어떤 생산자 주체가 객체로서의 기계를 사용하여 생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자연이 인간 주체의 외부에 있는 어떤 외적 자연이 아니듯이 기계 역시 주체의 바깥에 있으면서 주체가 그의 생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어떤 객체적인 생산수단, 다시 말하면 주체 외부에 존재하는 외적 기계가 아니다. 주체성으로서의 기계는 생산력 그 자체이다. 기계는 인간 주체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체가 아니라 과학기술화된 인간의 신체 안에 병합되어 있는 인간 신체의 기관이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는 인간이 그 자체 기계적이라고, 인간이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기계적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적이자 동시에 기계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자연의 기계적 생산 및 재생산 과정 속에서만 그러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러한 생산 및 재생산 과정의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실체이자 객체로서의 자연, 어떤 실체이자 객체로서의 기계, 어떤 실체이자 주체로서의 인간이 과연 존재하는가? 만약 이러한 자연, 기계,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실재의 생산적 과정으로부터 자연, 기계, 인간을 추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물론 경향을, 그래서 시간을 배제한 채 추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는 자연과 구분된 인간, 인간과 구분된 기계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주체로서의 인간, 객체로서의 자연, 그리고 객체로서의 기계가 분리된 채 존재하는 현실이 곧 실재인 것은 아니다. 실재는 오히려 자연-인간-기계의 생산 및 재생산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만 한다. 잠재적으로 자연-인간-기계는 같으며 그리하여 일의적이라고. 결국 자연-인간-기계의 실재적 생산 및 재생산이 드러낸 것은 존재론적 일의성이다.


자연-인간-기계의 존재론적 일의성

『안티-오이디푸스』를 해석하면서 하트는 들뢰즈와 가따리가 모든 것은 기계들이며, 다른 기계들에 접속된 기계들이라고 말한다는 점이 곧 존재가 일의적이라는 것, 그래서 존재론적 일의성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하트, 320) 하트는 들뢰즈와 가따리의 존재론적 일의성이 함축하는 것이 첫째, 존재 혹은 세계를 넘어서 있는 어떤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둘째, 존재의 부분들 사이에는 본성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셋째, 하지만 존재는 생산으로서의 과정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320)

 존재의 부분들 사이에 아무런 본성상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연 자체와 분리되어 있는 인간 본성 같은 것은 없으며,(322) “인간적, 기계적, 자연적인 것은 모두 하나이다. 이것들은 모두 생산의 과정들이다.”(321) 인간적, 기계적, 자연적인 것이 일의적인 생산의 과정들이라는 사실은 기계와 주체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원리가 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개체적으로 실존하는 인간 주체가 대상적 기계를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개체로서의 인간은 기계와 분리된 채 실존하며, 존재론적으로는 기계 사용에 선행하여 존립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리고 선행적으로 존립하는 이 개체로서의 인간 주체가 대상적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기계를 이용한 생산이 시작된다. 하지만 인간적, 기계적, 자연적인 것이 일의적인 생산의 과정이라는 것은 위와 같은 우리의 선입견을 깨뜨린다. 그것은 기계들 뒤에 서 있으면서 기계들의 작동을 지휘하는 주체, 그리하여 존재론적으로 기계에 선행하여 존립하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기에 그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기계가 곧 어떤 단순한 개체로서의 주체인 것은 결코 아니다. 하트는 명시적으로 들뢰즈와 가따리가 기계를 익명적이고 비주체적이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기계를 사용하거나 지휘하는 주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계들이 인간 주체에 의해 창조되는 것도 아니며, 나아가 생산과정이 시작되는 어떠한 원래의 지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든 기계들은 다른 기계들에 의해 무한한 생산의 연쇄 속에서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한다.(324) 무한한 생산의 연쇄 속에서 창조되고 또 창조하는 기계들만이 실재한다. 그런데 기계에 의한 기계의 이와 같은 생산과 재생산은 그럼에도 어떤 선행적으로 존립하는 개체로서의 주체를 넘어선 주체성의 과정이지 않을까?

 개체로서의 인간 주체는 분명 존재하며, 인간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소위 객체로서의 자연 역시 분명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그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자연은 무한한 생산의 연쇄에서 생산된 것을 그 생산과정으로부터 탈각시켜 이미 생산된 어떤 현실적 대상으로 파악할 때에만 가능한 것일 수 있다. 나아가 무엇보다도 생산과정의 시작을 주관하는 원초적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생산과정의 원초적 시작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원초적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생산과정의 원초적 시작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계적 생산의 주체성을 탈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계를 주체성으로 독해하면서 우리는 기계를 어떤 단순한 객체적 생산수단으로서의 고정자본이 아닌 사회적 두뇌가 체현된 일반지성으로, 그리하여 지식, 정보, 소통, 정동 등 비물질적 노동의 네트워크적 협력의 생산력으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이 기계적 생산력은 결코 개체로서의 주체의 생산력이 아닌 집단적 주체의 네트워크적 협력의 생산력이었다. 다시 말하면 기계적 생산력은 집단적 주체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주체성의 생산력이었다.

 그래서 기계를 사용하거나 지휘하는 주체가 없으며 기계가 주체에 의해서 창조된 것도 아니고 나아가 생산과정이 시작되는 어떤 원초적 지점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기계적 생산이 동시에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이며 그래서 기계는 집단적 주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7) 주체는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의 효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집단적 주체성보다 선행적으로 존재하면서 집단적 주체성을 구성하는 어떤 원자와 같은 것이 아니다. 주체가 기계적 생산의 현실적 효과로서 존재하듯이 집단적 주체성이 주체로서의 인간을 생산하지 그 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인간-자연에 의한 인간-자연의 생산과정 바깥에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의 내재성 테제를 기계적 생산과 관련하여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자연의 내재성 테제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것은 인간-자연에 의한 인간-자연의 생산이 그 자체 집단적이고 복수적(複數的)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인간-자연-기계의 일의적 존재는 집단적이고 복수적인 생산과정 안에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생산과정은 집단적이고 복수적인 주체성의 생산과정에 다름아니다.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자연은 기계적 생산과정의 현실적 효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 이러한 효과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자연은 그 자체 기계적 생산과정에 초월적이다. 하지만 집단적이고 복수적인 주체성으로서의 기계는 이 기계적 생산과정에 내재적이다. 따라서 이제 자연적 인간, 인간적 자연의 생산을 강조하는 자연의 내재성 테제는 집단적 주체성의 내재성 테제로 확장될 수 있으며, 이때 집단적 주체성의 내재성은 다름 아닌 이 세계 전체의 생산과 재생산에 내재적인 것은 단순한 주체나 단순한 객체가 아닌 집단적 주체성으로서의 기계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의 시간』에서 네그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계는 언어적․주체적 보철들의 목적론에 의하여 충전된다. 이것이 우리가 기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즉 인간의 본성에 부착되는 인공물들 ―삶정치적 인공물들― 을 철저하게 물질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세계의 생산이다. ... 만일 생산이 소통이라면 자연과 인공물들의 세계는 다시 주체성 생산과의 관계로 전적으로 되돌려져야 한[다].8)


여기서 네그리는 세계의 생산을 기계적 과정으로 보면서 이 생산이 소통인 한에서 그것은 다시금 주체성의 생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네그리에게 세계의 생산이 기계적 과정인 이유는 인간 주체의 본성에 부착되는 인공물들, 즉 삶정치적 인공물이 물질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기계적 주체성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 주체의 본성에 부착되는 인공물인 기계적 주체성의 생산이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는 존재론적 함의를 갖는다는 점이다. 네그리는 ‘인간’이 자연과 섞여있는 인간인 켄타우로스로부터 실천을 통해 구축된 인간-인간을 거쳐 비로소 생산 속에서 변형되어 자신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발전시키는 인간, 그의 본성이 계속해서 변화하여 두 번째, 세 번째, n 번째에 이르게 되는 기계-인간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한다.(110) 물론 네그리가 말하는 기계-인간으로서의 인간은 결코 어떤 초역사적, 비역사적인 인간학적 주장이 아니다.

 네그리의 기계-인간으로서의 인간은 바로 역사화된 존재론적 인간학, 생산양식의 탈근대적 변형을 통해 가능해진 존재론적 인간학의 역사화에 근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탈근대의 생산조건이 된 일반지성으로서의 지적 소통적 정보적 정동적인 집단적 생산력, 다름 아닌 ‘기계적인 생산력’(152)이 비로소 생산양식의 역사적 진화에 근거하여 등장했기 때문에 우리는 기계-인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탈근대의 생산은 언어를 통해 기계를 육화하는 신체로서의 인간-기계에 의한 인간-기계의 생산, 즉 기계적 신체의 생산이다. 그래서 기계적 신체의 집단적 생산의 핵심인 언어가 생산의 어떤 단순한 도구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99). 그리고 중요한 것은 탈근대 생산의 핵심으로서의 언어는 어떤 술어화된 진술들, 즉 문장들의 집합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적 언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라는 점이다.

 네그리는 오늘날 인간존재가 변형되고 기존에 수립된 경계들을 가로지는 혼종화가 실현된다고 말하면서 “‘자연적’ 한계의 극복, 언어들의 상호영향, 류(類)들과 인종들의 섞임 그리고 존재의 일반적 혼종화[가] 모두 탈근대에서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라고 말한다.(182) 아마도 오늘날 생산의 핵심인 언어는 기계적 주체성의 집단적 구성을 가능케 하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의 언어를 넘어선 어떤 언어일 것이다. 그것은 가령 정동의 교환이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언어적 의사소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소통이며 그리하여 그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언어에 기반하는 것처럼, 통상적인 의미의 인간어를 넘어선 어떤 언어일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탈근대적 변형을 통해서 기계적 주체성이 등장하였다는 점, 그리하여 이로부터 인간-기계의 존재론적 인간학을 역사화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졌다는 점은 이러한 역사화가 순전한 사변의 산물일 수는 없으며 오히려 생산양식의 역사적 진화에 근거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진화가 사회적 적대에 의해 추동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인간-기계의 존재론적 인간학이 사회적 적대가 추동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사회적 적대가 추동하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자연-기계의 존재론적 일의성을 탐구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자연-기계의 존재론적 일의성은 사회적 적대가 추동하는 역사적 지평 위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자연-기계의 존재론적 일의성을 역사적으로 사유함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사유해야 된다는 점을 간단히 검토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도록 하자.


존재론적 일의성과 정치

존재론적 일의성과 정치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맑스의 「기계에 대한 단상」의 해석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확인한 것은 맑스가 「기계에 대한 단상」에서 말한 일반지성이 오늘날 어떤 단순한 고정자본으로서의 기계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 자체 기계적 생산력으로서의 집단적 주체성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계적 생산력의 집단적 주체성인 인간-기계의 등장은 자본주의의 어떤 ‘자연적’ 진화를 통해 귀결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계급투쟁의 산물이었다.

 네그리와 하트의 『디오니소스의 노동』에서 인간-기계의 등장은 ―물론 여기서 네그리와 하트는 인간-기계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며 존재론적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한다기보다는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한 자본의 재구조화의 산물로서 말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개별적인 노동 거부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공장 안의 자동화 도입과 연합적 노동의 협업적 관계를 깨뜨리는 집단적 거부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생산적인 사회적 관계의 컴퓨터화 등에서 비롯되었다.9)

 우리는 탈근대적 생산이 기계-인간에 의한 기계-인간의 생산이라고 말할 때, 이러한 생산이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생산양식을 표현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생산양식이 그 전 시기의 계급투쟁의 산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오늘날의 생산양식이 진정으로 인간-기계에 의한 인간-기계의 생산이라면, 오늘날의 계급투쟁은 바로 이 인간-기계의 집단적 주체성에 근거해야 하며, 그리하여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 외부에 계급투쟁이 자리한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비로소 오늘날 존재론적 일의성의 정치화가, 일의적 존재론의 정치화가 가능한 것 같다. 오늘날 정치적인 것은 기계적 주체성의 생산에 있어 단순히 그 생산에 명령을 부과하려고 하거나 혹은 단순히 그 생산을 통제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점점 더 그 생산에 초월적으로 되어가며 아니 사실은 이미 그 생산에 초월적으로 되어버린 자본과의 전투에 있다. 자본이 생산양식의 역사적 진화를 매개하는 시기가 지나면서 탄생시킨 집단적이고 복수적인 기계적 주체성은 삶 자체, 세계 자체의 생산과 재생산에 절대적으로 내재한다. 그것은 오늘날 자본이 이 삶과, 이 세계의 생산에 초월적인 것과는 다르다.

 만약 우리가 오늘날 자본과의 적대 속에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삶정치적 주체성을 다중으로 규정한다면, 필자가 보기에는 이 다중은 결코 통상적인 의미의 어떤 개체로서의 주체가 아니며 또 개체들의 어떤 단순한 집합으로서의 주체들도 아닌 것 같다. 다중은 오늘날의 삶 자체의 생산에 절대적으로 내재적인 생산력으로서의 집단적이고 복수적인 기계적 주체성일 것이다. 그래서 다중은 집단적이고 복수적이며 기계적인 생산력 자체이다. 다중은 생산과정에 절대적으로 내재적이기 때문에 결코 생산과정의 효과로서 존재하는 어떤 통상적 의미의 개체로서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이러한 개체들의 어떤 단순한 집합으로서의 주체들이 될 수도 없다.

 물론 다중은 분명 주체성이다. 그것은 어떤 통상적 의미의 주체나 주체들을 넘어선 주체성, 삶정치적 생산의 주체성이다. 인간-자연-기계의 존재론적 일의성의 정치화는 오늘날의 삶정치적 생산의 주체성으로서의 다중에 대한 긍정, 물론 당연히 개체로서의 주체도 아니며 개체들의 단순한 집합으로서의 주체들도 아닌 집단적이고 복수적인 인간적 자연적 기계적 주체성으로서의 다중에 대한 긍정에까지 도달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1) Braun, B., "Towards a New Earth and a New Humanity: Nature, Ontology, Politics", in David Harvey: A Critical Reader, edit. Noel Castree and Derek Gregory, Oxford: Blackwell Publishing, 2006, p.193. 2) Deleuze, G., Gattari F., Anti-Oedip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Hurley, R., Seem, M., Lane, H. R.,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3, pp.4~5, 마이클 하트, 「『안티-오이디푸스』읽기』, 『들뢰즈 사상의 진화』, 갈무리, 2004, 325쪽 재인용, 강조는 필자.

3) 칼 맑스, 『독일-이데올로기』, 박재희 옮김, 청년사, 2004, 42쪽.

4) Marx, K.,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rans, Nicolaus, M., Harmondsworth: Penguin Books, 1973, p.706.

5)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디오니소스의 노동Ⅰ』, 이원영 옮김, 갈무리, 1996, 40쪽.

6) 맑스의 일반지성에 대해서 비르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맑스는 일반지성(혹은, 주요한 생산력으로서의 지식)을 고정자본과 완전히 동일시했고 이 때문에 동일한 일반지성이 반대로 산 노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시급을 무시했다. 이것은 정확히 오늘날의 결정적 측면이다.”(빠올로 비르노, 「“일반지성”에 관하여」,『비물질노동과 다중』, 조정환 옮김, 갈무리, 1994, 217쪽.)

7) 물론 주체성의 생산으로서의 기계적 생산은 인간-기계의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이자 인간-자연의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자연의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에 대해서는 기계적 생산을 중심으로 이를 검토하기 이전에 이미 ‘사회적 인간’에 대한 맑스의 논의를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맑스는 코뮤니즘을 사유하면서 사회적 인간에 있어 인간-자연의 생산을 검토한다. 자연이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과정 속에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신체인 한에서(칼 맑스,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 강유원 옮김, 이론과 실천, 2006, 91쪽) “자연의 인간적 본질은 사회적 인간에게서 비로소 존재한다. 자연은 여기에서 인간에 대해 인간과의 유대로서 다른 인간에 대한 인간의 현존으로서, 마찬가지로 인간적 현실의 생활요소로서, 여기에서 비로소 자연은 인간의 고유한 인간적 현존의 기초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의 자연적 현존은 인간에게 자신의 인간적 현존이 되었고, 자연은 인간에게 인간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본질통일이고 자연의 진정한 부활이며, 인간의 관철된 자연주의이고, 자연의 관철된 인간주의이다.”(129-130) 여기서 우리가 접하는 것은 맑스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자연과 인간의 존재론적 일의성이다. 물론 이 존재론적 일의성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사회적 인간’에 의한 인간-자연의 집단적 생산이다. 사회적 인간이 개체로서의 주체를 넘어서 있는 주체성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인간을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집단적 주체성이며, 그래서 이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은 전통적 의미의 주체에 의한 객체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일 수 없다. 이는 우리가 확인한 기계적 생산, 즉 개체로서의 주체로도 개체들의 단순한 집합으로서의 주체들로도 환원될 수 없는 기계에 의한 기계의 생산과 연관된다. 인간-자연-기계의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은 어떤 단순한 객체적 과정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동시에 어떤 단순한 주체적 과정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과정이다. 8) 안토니오 네그리, 『혁명의 시간』,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04, 124-5쪽.

9)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디오니소스의 노동Ⅱ』, 이원영 옮김, 갈무리, 1996, 158쪽.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0/06/22 13:35
*이 글은 2010년 봄학사회철학 세미나의 보고서이다. 2010년 봄학기 사회철학 세미나의 주 텍스트는 맑스의『경철수고』였다.

                                            맑스의 자연사로서의 역사에 대하여

문제제기: 맑스의 자연과 역사
 통상적으로 우리는 자연과 역사를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자연을 인간과 구분되어 존재하는 어떤 영역, 인위적 조작 및 산출과는 구분되는 어떤 영역, 그래서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하는 영역으로 이해한다. 반면 우리는 역사를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형성된 과거의 업적들로 이루어진 영역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경철수고』에서 맑스는 우리의 통상적인 이해와는 다른 자연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제시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경철수고』에서 맑스는 역사와 자연을 구분되어 있는 영역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맑스는 역사와 자연을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며 그래서 인간의 과거의 업적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자연과 구분되는 독자적 영역이 아닌 그 자체 자연사로 이해한다. 이러한 맑스의 자연사로서의 역사 개념은 어떻게 가능하며 또 이 개념이 갖는 함의는 무엇인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는 명시적으로 인간 역사의 전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는 물론 살아 있는 인간 개개인들의 존재이다. 따라서 첫 째로 설정되어져야 할 것은 이들 개개인들의 신체적 조직 및 그로 인해 주어지는 여타 자연과 그들의 관계이다.”1)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가 제시한 역사의 전제는 첫째, 인간 개개인들의 실존이며, 둘째 인간 개개인과 자연의 관계이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유념해야 되는 사항은 역사의 첫 번째 전제인 ‘인간 개개인들의 실존’이 순수 개별인으로서의 개인이 역사의 전제임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고립된 채로 살아가지 않으며, 그 출생에서부터 이미 항상 사회적 관계 안에서 태어난다. 따라서 역사의 첫 번째 조건은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실존이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실존이 아니다.

 물론 맑스 이전 철학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서 개인과 집단의 문제는 중요한 입지점을 형성한다. 그것은 고립된 개인, 원자적 개인의 반성을 통해서 철학을 정초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기반이 그 자체 사회적 관계이어야 한다는 중요한 함의를 낳는다. 나아가 개인이 아닌 집단에 대한 강조는 맑스의 자연사로서의 역사 개념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하지만 이를 검토하기 전에 먼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해진 맑스의 인간 역사의 두 번째 전제,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검토하도록 하자.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역사의 전제로 삼는 맑스에 따르면 결국 인간사에 있어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자연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아가 자연은 인간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노동자는 자연 없이는, 감성적인 외부세계 없이는 아무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것[자연]은 노동자의 노동이 그 안에서 실현되며 활동이 이루어지며, 그것에서 그리고 그것을 매개로 생산하는 소재이다.”2) 인간사에서 자연이 인간의 생산 활동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또 인간의 생산 활동이 노동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매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결국 인간의 생산 활동에서 자연은 생산의 원천인 일차적 자연이자, 동시에 생산의 산물인 이차적 자연으로서만 존재한다. 노동을 통해 인간과 매개되는 일차적 자연은 노동을 통해서 다시금 이차적 자연으로, 즉 인간과의 매개를 통한 인간적 자연으로 생산된다. 자연은 일차적 자연이자 동시에 이차적 자연이며 그래서 노동의 매개를 통한 인간적 자연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노동과의 매개를 통한 인간적 자연의 생산이라는 맑스의 논의는 자연을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노동과의 매개를 통한 인간적 자연의 생산이라는 맑스의 논의는 전(全) 시대에 통용될 수 있는 역사 초월적인 논의가 아니다. 맑스의 논의는 비역사적 혹은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지극히 역사적이며,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연의 생산과 변형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서 자연은, 아니 무엇보다도 인간적 자연은 어떻게 생산되고 재생산되는가. 이 문제를 먼저『경철수고』에서 제시된 ‘하나의 과학’으로서의 자연과학을 중심으로 검토하도록 하자.

맑스의 학문일원론: ‘하나의 과학’으로서의 자연과학
앞서 확인했듯이 맑스는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자연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맑스가 자연에 갖는 관심은 그것이 노동을 통한 인간 자신과의 매개라는 생산의 관점에 기초해 있다. 이는 맑스가 자연에 갖는 관심이 자연이 인간적 실천의 구성 요소라는 점에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맑스에게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순수하게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이다. 맑스에게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실천적인 것이라는 점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인간과 자연의 실천적 관계는 그것이 첫째, 자연을 변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둘째, 인간 자신을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연을 자기의 일부로 만든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의 실천적 관계는 인간의 주체적 활동으로서 객체를 주체화하는 활동이다.

 『경철수고』에서 맑스는 이러한 객체의 주체화, 자연의 인간화를 인간과학으로서의 자연과학이라는 논의를 통해서 제시한다. “인간은 자연과학의 직접적 대상이다.”(544) 물론 인간이 자연과학의 직접적 대상이듯이 역으로 자연은 자연과학으로서의 인간과학의 직접적 대상이다. “... 자연은 인간에 관한 학문의 직접적 대상이다.”(544) 결국 “자연의 사회적 현실과, 인간적 자연과학 또는 인간에 관한 자연적 학문은 동일한 표현이다.”(544) 맑스는 인간은 자연과학의 직접적 대상이며, 자연은 자연과학으로서의 인간과학의 직접적 대상이고, 그래서 인간에 관한 자연적 학문만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자연과학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 자연과학을 포섭하듯이, 인간에 관한 학문을 포섭할 것이다. 하나의 학문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544) 맑스가 말하는 하나의 학문은 인간에 관한 자연적 학문으로서의 인간적 자연과학이다. 하지만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인간적 자연과학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자연이 사회적 현실로 되어야만 한다는 점에 있다.

 왜 자연이 사회적 현실일 경우에 비로소 인간적 자연과학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이는 자연이 인간이 살기 위해 그것과 끊임없이 교류하는 인간의 신체 자체, 인간의 ‘비유기적 신체’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결국 인간이 자연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자연이 자연 자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이외의 다른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516) 다시 말해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서의 사회는 동시에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며 그리하여 자연과 자연의 관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맑스에게 자연은 그 자체 사회적 현실이다. 

 맑스가 자연을 사회적 현실로서 파악할 때,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 함의를 갖게 된다. 자연을 사회적 현실로서 파악하는 맑스의 문제의식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적 자연에 대한 학문의 의미를 검토하는 것에로 향해 있다. “... 자연과학은 산업을 매개로 하여 더욱더 실천적으로 인간생활에 개입하였고 그것을 개조하였으며, 직접적으로는 비인간화를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해도 간접적으로는 인간 해방을 준비하였다.”(543) 맑스는 자연과학이 산업을 매개로 인간생활에 개입해 왔으며, 그리하여 직접적으로는 비인간화를 완성하였지만 ―달리 말해 인간 소외를 완성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는 인간의 해방을 준비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산업을 통한 자연과학의 인간생활에의 개입이 인간 소외의 완성이자 인간 해방의 준비인가.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과학을 통한 산업의 발전은 곧 인간적 자연의 발전으로서, 결국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발전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인간화는 산업을 통해 인간에 의한 자연으로서의 인간 자신의 발전을 낳으며 인간의 해방은 이러한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자연과학이 산업의 기초가 되어 자연으로서의 인간 자신의 발전을 이룰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경철수고』에서 맑스가 자연과 인간의 실천적 관계에 주목하면서 노동을 통한 자연의 인간화와 산업을 통한 자연과학의 인간생활에의 개입을 강조하는 이유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해방의 경제적/철학적 기초를 탐구하고자 하는 그의 문제의식에 근거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맑스는 코뮤니즘이 자본주의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실천적 관계로부터 자연으로서의 인간 자신의 전면적 발전을 통해서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는 자연과학을 통한 산업의 발전이 코뮤니즘 사회를 위한 조건들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에게서 코뮤니즘 사회는 인간적 자연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발전을, 그래서 노동을 통한 매개의 두 극으로서의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했던 적대의 완전한 해소를 의미한다. 따라서 맑스가 말하는 자연사로서의 역사의 함의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맑스가 말하는 코뮤니즘을 검토해야만 한다.

코뮤니즘에 대한 맑스의 경향적 파악: 사회적 개인의 산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열 번째 테제에서 맑스는 시민사회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를 구분한다. “낡은 형태의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이다.”3) 시민사회와 인간적 사회 혹은 사회적 인류의 구분은 코뮤니즘 사회가 시민의 권리를 재현하는 기구로서의 국가를 거부한다는 점과 함께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들의 결사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을 함축한다.

 물론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들의 결사로서의 코뮤니즘에서 당연히 사유재산은 폐기된다. “인간의 자기 소외인 사유재산의 적극적 지양으로서, 그리고 따라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 본질의 현실적 획득으로서의 코뮤니즘.”(536)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맑스에게서 사유재산의 적극적 지양이 함축하는 의미이다. 사유재산을 철폐하는 것이 곧 자본주의의 극복이며 그리하여 코뮤니즘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유재산의 적극적 지양은 인간의 생산적 활동 외부에 존재하는 부의 지양을 의미한다.

 사실 맑스는 국민경제학이 이룩한 성과를 그것이 인간의 생산 활동 외부에 존재하는 부를 지양했다는 점으로 파악한다. “[국민경제학에서] 인간 바깥에 존재하고 인간에게 독립적인 ... 부는 지양되는데, 다시 말해서 사유재산이 인간 자신과 합체되고 인간 자신이 사유재산의 본질로 인식됨으로써 이러한 부의 외적이고 생각없는 대상성이 지양된다.”(530) 그런데 국민경제학은 인간의 노동을 부의 원천으로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이 소외된 노동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코뮤니즘에서의 사유재산의 적극적 지양은 인간의 소외된 노동의 적극적 지양을 의미하지 단순히 사유재산을 철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유재산이 철폐되더라도 노동 소외가 종식되지 않는 한 코뮤니즘은 도래하지 않는다. 소외된 노동의 극복은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의 극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경철수고』에서 맑스는 네 가지 소외, 즉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 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 인간에 대한 인간의 소외를 말한다. 따라서 노동 소외의 적극적 지양은 네 가지 소외의 총체적 지양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 소외의 적극적 지양이 네 가지 소외의 총체적 지양인 한에서 사실 노동 소외의 적극적 지양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의 산출에 다름아니다.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의 산출의 전제는 인간의 사회적 노동이 물질적 부의 생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의 사회적 삶 자체의 생산이며,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인간에 의한 인간 자체의 생산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의 산출은 인간에 의한 인간 자체의 생산 과정에서 부와 함께 인간 자신이 생산된다는 것, 아니 인간 자신이 부로서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인간 자신에 의한 부로서의 인간의 생산은 생산력의 발달을 전제한다. 생산력의 발달은 물질적 부로서의 기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기계의 발전에 근거가 되는 비물질적 부로서의 인간 지성의 성장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사실 자연과학을 통한 산업의 발전은 비물질적 부로서의 인간 지성의 성장에 근거한다. 그래서 코뮤니즘은 노동을 통해서 인간과 매개되는 인간적 자연의 전면적 발전이자 동시에 이 발전의 근거가 되는 인간 지성의 전면적 성장으로서, “이러한 코뮤니즘은 완성된 자연주의이자 완성된 인간주의로서, 완성된 인간주의이자 자연주의로서 존재하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충돌의 참된 해결이 ... 다.”(536)

 중요한 것은 완성된 자연주의이자 완성된 인간주의인 코뮤니즘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충돌의 참된 해결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충돌의 참된 해결이라는 점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충돌의 참된 해결은 사회적 개인의 전면적 협력에 의한 사회적 삶의 생산을 의미하며, 코뮤니즘은 사실 이러한 전면적 협력의 결사에 다름아니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지양된 사유재산이라는 전제 아래서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자기 자신과 다른 인간을 생산하는지 어떻게 인간의 개성의 직접적인 실증인 대상이 동시에 타인에 대한 그 자신의 현존이고, 타인의 현존이며, 그 자신에 대한 타인의 현존인지를 살펴보았다. ... 그러므로 사회적 성격이 운동 전체의 보편적 성격이다.”(537)

 하지만 맑스에게서 사회적 개인의 산출은 사회에 의한 개인의 산출로서의 어떤 객체적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맑스에게서 사회적 개인의 산출은 객체적 과정임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주체적 과정이며, 따라서 이 과정의 중심에는 주체가 자리한다. 그리고 바로 이 주체적 과정으로서의 사회적 개인의 산출이 맑스의 자연사로서의 역사를 주체성의 구성으로 독해할 수 있는 원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개인의 산출과 자연의 문제를 인간에 의한 자연 전체로서의 집단적 인간의 생산을 중심으로 검토하도록 하자.

사회적 개인과 자연: 인간에 의한 자연 전체로서의 집단적 인간의 생산
사회적 개인의 산출은 동일한 하나의 운동의 두 가지 측면을 함축한다. 그것은 사회에 의한 개인의 산출과 개인에 의한 사회의 산출을 동시에 의미한다. “사회 자체가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산하듯이 사회는 인간에 의해 생산된다.”(537) 코뮤니즘에서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의 산출은 인간의 생산일 뿐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생산이다. 물론 사회적 개인의 산출이 사회 자체의 생산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산출이 곧 집단으로서의 개인이 산출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집단적 개인의 산출은 사회적 개인의 생산에 근거가 되는 생산력의 발달에 이미 전제되어 있다. 생산력의 발달은 물질적 부로서의 기계의 발전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발전의 근거가 되는 비물질적 부로서의 인간 지성의 성장이기도 하다. 사실 인간 지성의 성장이 기계의 발전의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기계의 발전을 통해서 마찬가지로 성장한다고, 그리하여 양자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여하튼 현재의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지성의 성장이 어떤 고립된 천재적 개인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인간 지성의 성장, 즉 집단 지성의 성장이라는 점이다.

 맑스는 인간의 활동과 향유가 그 내용뿐만 아니라 현존 방식에서도 사회적이라고, 그래서 ‘사회적 활동’이며 ‘사회적 향유’라고 말한다.(537) 인간의 사회적 활동과 사회적 향유는 동물의 일면성과 대비되는 인간의 보편성으로 말해질 수 있다. “동물은 일면적으로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보편적으로 생산한다. 동물은 직접적인 육체적 욕구의 지배 아래서만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육체적 욕구에서 자유롭게 생산하고 그러한 욕구에서 벗어난 자유 속에서만 진정으로 생산한다. 동물은 자기 자신만을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자연 전체를 재생한다.”(517) 인간의 보편적 생산, 자연 전체의 생산은 결코 고립된 개인의 생산일 수 없다. 맑스가 말하는 유적 존재인 인간의 보편성은 자연이 첫째, 직접적인 생활수단인 한에서, 그리고 둘째, 인간의 생명활동의 소재와 대상 그리고 도구인 한에서 실천적으로 자연 전체를 그의 비유기적 몸으로 만드는 보편성 속에서 나타난다.(515-6) 자연 전체를 그의 비유기적 몸으로 만드는 인간의 보편적 생산은 자연을 인간의 작품으로서 만드는 것이며 그래서 인간적 자연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개인에 의한 인간적 자연의 생산은 바로 인간적 자연 전체의 재생, 인간적 자연의 총체적 생산, 그래서 동시에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집단적 생산이다. 맑스가 말하는 자연의 인간화가 함축하는 것은 사회적 개인에 의한 자연 전체의 생산이 집단적 주체의 생산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발달된 생산력을 전제로 하는 “[코뮤니즘]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본질통일이고 자연의 진정한 부활이며, 인간의 관철된 자연주의이고, 자연의 관철된 인간주의이다.”(537-8) 그래서 코뮤니즘은 자연의 총체적 생산의 공통체, 인간의 집단적 생산의 공통체이다. 물론 이 자연의 총체적 생산과 인간의 집단적 생산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발달된 생산력이 체화된 물질적 부로서의 기계와 비물질적 부로서의 집단 지성이다. 상호적 발전의 계기로서 작용하는 기계와 집단 지성은 코뮤니즘 사회의 통일된 인간적 자연이자 자연적 인간이다. 따라서 코뮤니즘에서 자연적 인간, 인간적 자연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집단적 개인의 산출을 의미하며 이러한 산출은 다름 아닌 집단적 주체성의 구성을 의미한다. 

 물론 집단적 주체성의 구성이 갖는 함의는 무엇보다도 코뮤니즘 사회의 발달된 생산력이 이 집단적 주체성에 내재한다는 데 있다. 코뮤니즘 사회의 발달된 생산력은 단순히 주체 밖에 존재하는 객체로서의 기계의 발전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코뮤니즘 사회의 발달된 생산력은 우선적으로 그 무엇보다 집단적 주체의 일반 지성, 즉 집단 지성에 근거한다. 이런 의미에서 코뮤니즘 사회의 필수적인 선행적 단계인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달은 기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집단 지성의 성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집단 지성의 성장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산출, 즉 인간에 의한 인간 자체의 변형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 변형의 역사, 인간 혁신의 역사가 다름 아닌 코뮤니즘 사회의 전사(前事)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맑스에게서 자연사로서의 역사의 의미를 인간 혁신의 역사로서의 코뮤니즘 사회의 전사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기로 하자.

맑스에게서 역사와 자연: 자연사로서의 역사
역사를 자연사로 파악하는 맑스의 역사관은 인간적 자연의 생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역사와 자연의 통상적인 구분을 넘어선다. 하지만 맑스가 말하는 인간적 자연의 생산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것이 역사 초월적 사태를 특징짓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맑스는 인간 사회의 성립 행위로서의 인간의 역사 속에서 생성되는 자연이 인간의 현실적 자연이지만, 이와 같이 생성되는 자연은 산업을 통해서 생성되는 자연이라고 말한다.(543) 맑스가 자연이 산업을 통해서 생성된다고 말할 때 이 산업은 당연히 자본주의 산업이며, 따라서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생산이 맑스 논의의 주요한 바탕이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맑스에게서 자연사로서의 역사가 갖는 함의는 이와 같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자연의 생산이 갖는 의미를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 이전에도 인간은 노동의 통해서 자연과 매개하면서 매개의 원천으로서의 1차적 자연을 매개의 결과로서의 2차적 자연으로 생산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자연의 생산이 인간적 자연의 생산, 그리하여 인간의 생산이기도 하다는 것은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함의를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 자연의 생산은 그 자체 전면적으로 발달된 사회적 개인의 산출로 향해가며, 그리하여 이러한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의 산출사가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 즉 자본주의 사회사로서의 자연사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사로서의 자연사는 동시에 코뮤니즘 사회의 전사이다.

 중요한 것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사회적 개인의 산출이 자연 전체의 생산이자 동시에 집단적 주체의 생산이라는 점인데, 사실 코뮤니즘 사회는 이 집단적 주체의 공통체에 다름아니다. 집단적 주체의 공통체로서의 코뮤니즘 사회에서 사유재산과 노동 소외는 지양된다. 물론 코뮤니즘 사회에서 사유재산의 적극적 지양은 사유재산의 철폐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코뮤니즘 사회에서는 소외된 노동의 네 가지 형태가 지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소외된 노동의 네 가지 형태가 지양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선행해야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달이다. 이것이 역설적인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달이 노동 소외를 심화시키지만 동시에 노동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 해방의 가능성을 준비한다는 점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력 발달은 물질적 부로서의 기계의 발전과 비물질적 부로서의 집단 지성의 성장을 통해서 특징지어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자연화와 자연의 인간화가 갖는 함의가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적 자연, 자연적 인간의 생산은 산업을 통한 자연과학과의 접목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과학은 자연이라는 객체에 대한 학문이자 자연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학문, 즉 주체에 대한 학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에 주목할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객체에 대한 학문이자 주체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하나의 과학’만이 존재한다. 이 학문이 객체적인 물질적 부로서의 기계의 발전을 낳을 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비물질적 부로서의 집단 지성의 성장을 낳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비로소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를 자연사로 이해하는 맑스의 역사관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가 인간의 집단 지성의 성장사이기도 하다는 점이 분명해 진다. 그래서 코뮤니즘 사회는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의미에서의 자연적 과정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지성의 주체적 성장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을 따름이다. 맑스에게 역사는 주체적 구성의 과정, 집단적 주체성의 생산 과정에 다름 아니다.

※ 참 고 문 헌 ※

Marx, K., Engels. F., Die deutsche Ideologie, (hrsg.) Institut für Marxismus-Leninismus beim ZK der SED, Karl Marx Friedrich Engels Band 3, Berlin: Dietz Verlag, 1958; 박제희 옮김, 『독일 이데올로기』. 청년사, 1990.

Marx, K.,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강유원 옮김,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 이론과 실천, 2006.

Marx, K., Thesen über Feuerbach, (hrsg.) Institut für Marxismus-Leninismus beim ZK der SED, Karl Marx Friedrich Engels Band 3, Berlin: Dietz Verlag, 1958; 박제희 옮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독일 이데올로기』. 청년사, 1990.


1) Karl Marx, 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hrsg.) Institut für Marxismus-Leninismus beim ZK der SED, Karl Marx Friedrich Engels Band 3, Berlin: Dietz Verlag, 1958, p.20-1.

2)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p. 512. 이하에서는 『경철수고』를 인용할 경우 본문에 쪽수만을 표기한다.

3) Karl Marx, Thesen über Feuerbach, (hrsg.) Institut für Marxismus-Leninismus beim ZK der SED, Karl Marx Friedrich Engels Band 3, Berlin: Dietz Verlag, 1958, p.7.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0/05/30 16:46
*이 글은 2010년 5월 28일에 진행된 연구공간 L 제13차 발표토론회에서 발표한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3부 9장의 논평문이다.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3부 무엇을 할 것인가?

9장 <자연 속의 불만> 논평

<자연 속의 불만>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라는 전체 저술 중에서 마지막 3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자리한다. 이는 지젝이 ‘자연’ 속의 ‘불만’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이 찾아질 수 있다고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 속의 불만으로부터 오늘날의 특정한 정치적 실천이 가능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자연 속의 불만에 근거한 정치적 실천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본 논평문에서 필자는 지젝이 자연 속의 불만으로부터 특정한 정치적 실천을 도출하는 과정을 살펴본 다음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해보고자 한다.

‘자연 속의 불만’이라는 제목은 즉각적으로 프로이트의 유명한 저술 『문명 속의 불만』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지젝은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을 염두에 두고 오늘날에는 문명 속에서가 아닌 자연 속에서 불만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최근의 과학기술적 발전과 함께 문명 속에서의 불만족, 불편함은 자연 속에서의 불만족으로 바뀐다. 자연은 더 이상 ‘자연적’이지 않다.”(649) 지젝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은 더 이상 ‘자연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지젝이 자연이 더 이상 ‘자연적’이지 않다는 점을 검토하기 위해서 준거로 삼는 과학기술은 유전공학이다.

유전공학의 발전은 인간을 그 속성을 변형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자연 대상으로 환원한다. 물론 속성이 변형될 수 있는 자연 대상이 됨으로써 인간의 인간성은 상실된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의 상실이 ‘자연’ 자체의 상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인간성은 우리가 그 안에서 태어나는 우리 자신의 불가해한(impenetrable) 특질들이다. 유전공학의 발전은 인간의 불가해한 특질들을 제거한다. 하지만 인간의 불가해한 특질의 제거는 동시에 자연의 불가해한 특질의 제거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연의 한 종이기 때문에, 유전공학의 발전에 근거한 인간종의 변형은 자연의 불가해한 특질을 제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로부터 도출되는 귀결은 역설적으로 인간성이 불가해한 비인간적 자연이 존재할 경우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가해한 비인간적 자연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자연에 맞선 인간이 존재하며, 인간적 자연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다. 더 이상 자연에 맞선 인공으로서의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젝이 보기에 사실 오늘날 소위 인공으로서의 문화에서 느끼는 불만족은 그 자체 자연 속의 불만족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젝은 오늘날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이라는 관념이라고 말한다. “자연을 보호하는 데 방해가 되는 궁극적인 장해물은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자연의 관념 자체이다.”(664)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이라는 관념은 오늘날의 세계에 더 이상 적실한 것일 수 없다. 지젝이 말하길 오늘날 자연은 이미 그 자체 ‘2차적 자연’이다.(660) “지구상의 ‘자연’은 이미 인간의 개입에 ‘적응’되어 있으며, 인간의 ‘오염’은 이미 불안하고 깨지기 쉬운 ‘자연적’ 재생산의 균형 안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적 개입의 중단은 파국적인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다.”(660-1)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적 개입에 근거하여 단순히 인공적으로 자연이 생산된다는 점(‘2차적 자연’ 개념의 첫 번째 의미)이 아니라, 이러한 생산이 인간적 활동의 결과이면서도 그것이 우리 인간을 벗어나서 독립성을 갖는다는 점에 있다.(‘2차적 자연’ 개념의 두 번째 의미) 그래서 지젝은 2차적 자연의 독립성을 “우리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서 위협을 가하는 과정[이] ... 새로운 형태의 자연적 과정 자체”라는 것을 함축한다고 본다.(651)

이로부터 지젝은 자연과 인간의 분리를 전제한 다음 자연이 행사하는 재앙에 대한 염려에서 (그 논의를) 시작하는 생태주의를 ‘두려움의 생태주의’(655)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두려움의 생태주의와 구별되는 해방적 테러로서의 생태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해방적 테러에 근거한 생태주의의 재정초, 아마도 이것이 <자연 속의 불만>을 관통하는 지젝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재정초의 논리가 ‘2차적 자연’으로서의 주체 자체의 생산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지젝이 규정하는 ‘2차적 자연’의 두 번째 의미의 정치적 함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의미의 2차적 자연은 인간 주체의 활동에 근거하며 그 활동을 초월해서 존재하지는 않는 객체로서의 자연이다. 사실 인공적으로 생산된 자연을 의미하는 첫 번째 의미의 2차적 자연은 오늘날 인간의 사회적 과정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의미의 2차적 자연, 즉 인간 주체의 활동으로부터 독립된 자연,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서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자연은 비록 인간 주체의 활동에 근거하되 그것의 귀결이 우리 인간 주체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는 자연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독립성을 지젝은 어떻게 긍정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이는 지젝의 존재론적 전제에 입각해 있지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적 행동은 일종의 차원의 단락 속에서 ‘고차원적인’ 사회적 배치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할지는 예측 불가능하다. 배치는 본질적으로 포착 불가능하다. 우리(개인이나 집단적 행위자들)는 그것이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행위의 결과를 예견할 수 없다. ... 원인과 결과 사이의 간극은 해소 불가능하며, 이 두 차원의 조화를 보장할, 우리의 개입이 야기할 전체 결과가 만족스러울 것임을 보장하는 어떤 ‘대타자’도 존재하지 않는다.(677)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필연적인 간극이 존재하며 원인과 결과의 조화를 보장할 대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 주체는 자신의 활동의 귀결을 결코 예견할 수 없다.

그런데 인간 활동의 산물인 2차적 자연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독립성을 가지며 또 인간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지젝의 말이 맞다면, 결국 문제는 이러한 위협의 실재성에 눈감는 것으로 귀착될 것이다. 실제로 지젝은 공통감각(common sense; 즉 상식)을 문제적으로 보면서 “공통감각이 우리의 생활세계 안에 습관처럼 내면화되어서 일상생활의 현실적 흐름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681). 지젝이 이와 같이 공통감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공통감각이 우리가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떤 확고한 토대나 은둔지도 없다는 사실”(660)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젝이 보기에 안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떤 토대나 은둔지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우리 존재가 근거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러한 존재의 근거 없음에 대한 수용이 곧 테러이다.(660) 그리하여 혁명적 테러가 생태주의와 결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공통감각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2차적 자연의 위협의 실재성을 인식하는 것.

그런데 2차적 자연의 위협은 진정 실제적인가? 아니다. 2차적 자연의 위협은 그 자체 실재가 아니다. 그것은 그 가능성을 흡사 실제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현실과 단절하기 위한 전략, 다시 말하면 혁명적 테러를 위한 전략이다.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가능성들의 차원에서 미래는 운명 지어져 있어서 재앙은 꼭 발생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이런 수용을 배경으로 우리는 운명 자체를 바꿀 행동을 조직해야 하며, 그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과거 안에 삽입해야 한다. 바디우에게 사건에 대한 충실의 시간은 전미래 시제이다. 자기 자신을 미래로 추월함으로써 현재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이미 여기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전미래 시제의 순환 전략은 대재앙(이를테면, 생태학적 재난)에 마주하여 가장 실제적인 전략이다.”(687-8)

 

물론 가능성의 차원에서 미래가 운명 지어져 있으며 그리하여 재앙이 반드시 발생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오직 이럴 경우에만 ‘두려움’의 생태주의로부터 ‘테러’의 생태주의로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앙이 우리의 숙명이라면 (우리에게) 두려움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테러]은 우리가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 즉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것,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그것(자연 ...)이 언제나 이미 상실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일어나는 두려움 자체의 변화이다.”(647)

결국 지젝은 정치적 실천의 주체를 벌거벗었으며 벌거벗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주체로 상정한 다음 이 벌거벗은/을 주체에게 다만 혁명적 테러의 신념을 불어넣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벌거벗은/을 주체에게 2차적 자연의 가상적 위협은 혁명적 테러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지젝이 말하는 해방적 테러로서의 생태주의에서는 오늘날 2차적 자연의 생산에서 인간 자신에 의한 (전면적으로 발달한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생산이 가질 수 있는 함의가 논구되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는 오늘날 자연이 이미 그 자체 2차적 자연이라는 논의는 오늘날 2차적 자연의 생산이 동시에 (인간에 의한)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생산이기도 하다는 것에 기초할 때 다른 정치적 지평에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는 단지 원인과 결과의 조화를 보장하는 대타자를 부정하는 것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생산의 공통체, 주체성의 공통체을 긍정하는 것, 그리하여 대타자의 부정을 공통체의 긍정으로 전도시키는 것을 함축한다.

이로부터 귀결되는 정치적 함축은 첫째, 벌거벗은/을 주체가 아니라 공통체를 구축할 힘을 담지한 주체가 정치적 실천의 기초라는 점, 나아가 둘째, 지젝이 (박탈당하고 가난해진 사람들의 터전인) 후기 산업사회의 황무지, 즉 슬럼을 오늘날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건적 장소’로 보는 것과는 달리,(635, 675) 오늘날의 사건적 장소는 그 모든 2차적 자연이 구성되는 생산적 공통체로서의 메트로폴리스 자체라는 점이다.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0/05/19 10:15

*이 글은 2010년 5월 14일에 진행된 연구공간 L 제11차 발표토론회에서 발표한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2부 4장의 논평문이다.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2부 과거로부터의 교훈

4장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 논평

 

이 장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장은 ‘혁명적 테러’를 검토한다. 물론 지젝이 혁명적 테러를 검토하는 이유는 당연히 그것을 긍정하기 위함이다. 지젝은 명시적으로 휴머니즘이 아니라 폭력을 긍정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휴머니즘이 아닌 폭력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250) 그런데 어떠한 폭력인가? 물론 혁명적 테러와 같은 폭력이다. 따라서 당연히 물음이 제기된다. 지젝이 말하는 혁명적 테러는 무엇인가? 왜 혁명적 테러를 긍정해야 되는가?

모든 폭력이 혁명적 테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혁명적 테러는 분명 어떤 특정한 폭력이다. 지젝이 말하는 혁명적 테러는 신적 폭력이다. 따라서 혁명적 테러에 대한 지젝의 긍정 역시 신적 폭력에 대한 긍정이다. 그렇다면 왜 지젝은 혁명적 테러를, 신적 폭력을 긍정하는 것일까? 그것은 혁명적 테러가 국가를 세우는 ‘국가 초석적 폭력’이기 때문이 아니다. 벤야민이 말하는 ‘국가 초석적 폭력’은 새로운 법의 제정을 위해서 폭력을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 초석적 폭력은 폭력에 대한 수단적 관점을 넘어설 수 없다.

지젝이 긍정하는 혁명적 테러는 새로운 법의 제정을 위해 폭력을 수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바디우의 논의를 빌려와서 지젝은 혁명적 테러를 “인민의 적을 타도하겠다는 무자비한 의지”(237)로 규정한다. 여기에는 폭력에 대한 어떠한 수단적 접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단이 아닌 폭력, 그 자체 순수하고 직접적인 목적으로서의 폭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삶을 재현하는 법 형식을 제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 아니라) 그 자체 일상생활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폭력이다.

그래서 지젝은 무자비한 의지로서의 혁명적 테러가 ‘추상적 테러’와 ‘구체적 테러’로 나누어지며, 혁명적 과정의 순간에는 거대한 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추상적 테러와 구분되는 ‘구체적 테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264) 물론 이때 구체적 테러는 새로운 일상의 강제적 부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지젝은 혁명적 실천에서의 제도화의 문제를 검토한다. “… 민주주의적 절차보다 상위에 있는 이런[자코뱅이 제시한 것과 같은] 과잉의 평등-민주주의는 오직 자기 대립물로서 혁명적 민주주의적 테러의 형태로만 ‘제도화될’ 수 있다 ….”(265)

지젝이 제안하는 혁명적 실천의 제도는 결국 절차로서의 제도가 아닌 테러로서의 제도이다. 어떻게 제도가 절차이지 않고 테러일 수 있을까? 우선적으로 그것은 테러로서의 제도가 새로운 일상생활 형식의 창조, 새로운 일상의 강제적 부여로서 역사적 현재로서의 과거와의 단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테러로서의 제도는 역사적 현재와 절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절연은 평등한 정의라는 영원한 이데아를 구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결국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평등한 정의라는 영원한 이데아가 존재한다. 둘째, 물론 역사적 현재와 이데아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셋째,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사건이라면 사건은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 즉 새로운 삶의 형식을 창조해야 하며 따라서 이 단절을 위해서 신적 폭력, 즉 혁명적 테러가 요구된다.(혁명적 테러가 거대한 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추상적 테러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상생활의 강제적 부여로서의 구체적 테러이기도 한 이유는 이와 같다.)

이로부터 우리의 과제가 명확하게 제시된다. 평등한 정의의 영원한 이데아와 실재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혁명적 테러!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정확히 해방적인 테러를 재창안하는 것이[다].”(263) “그것[혁명적 폭력]을 오늘날의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여 그 현실화로부터 그것의 잠재적 내용을 부활시킬 방법이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그것은 가능하며 또한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248)

물론 지젝이 오늘날의 역사적 조건에서 평등한 정의의 영원한 이데아, 혁명적 이데아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럼에도 지젝에게서 읽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즉 혁명적 이데아에 대한 강조에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혁명적 이데아에 대한 강조가 무엇보다도 제도를 단순히 절차로서 사유하지 않도록 만드는 이유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절차로서의 제도는 혁명적 이데아의 온전하지 못한 현실화로서 이데아와 그것의 현실화 사이의 간극이 된다.

혁명적 이데아와 그것의 현실화 사이의 간극은 존재론적 차원과 사회정치적 차원의 간극으로 재정의될 수 있다. 가령 조정환 선생님이『미네르바의 촛불』에서 촛불에 접근하는 원리로 제시한 (촛불의 두 가지 차원으로서의) 존재론적 차원과 사회정치적 차원을 생각해보자. 존재론적 차원의 촛불을 통해서 “역사는 우리에게 혁명들이 패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실제로는 그것이 거대한 도약을 하고 있음을 여러 차례 입증해 주었[고] 그래서 혁명은 영원하다, 촛불은 영원하다, 촛불이 승리한다”고 말할 있는 것이 아닌가.(『미네르바의 촛불』, 10)

혁명적 이데아에 대한 긍정은 사회정치적 차원과 구분되는 존재론적 차원에 대한 긍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존재론적 차원의 승리능력을 사회정치적 차원에까지 폭발시키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점에 있다. “역사적 혁명은 실제로는 존재론적 능력을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실현하려는 부단한 과정 그 자체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미네르바의 촛불』, 10) 하지만 바로 이 지점 즉, 존재론적 능력이 어떻게 사회정치적 차원 속에 구현될 수 있는가를 사유해야 하는 지점에서, 필자가 보기에 지젝은 철저하게 부정성에 기초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것 같다.

신적 폭력에 대한 지젝의 정의를 살펴보자. 지젝은 신적 폭력을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설명한다.

 

… 우리는 신적 폭력을 가차 없이 실증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현상과 일치시킴으로써 그것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을 피해야 한다. 구조화된 사회적 장 외부의 그런[1792~94년 사이의 혁명적 폭력과 같은] ‘맹목적인’ 스트라이크가 일어날 때, 그 속에서 즉각적인 정의/복수의 요구와 함께 그 요구의 실행이 일어날 때 그것이 ‘신적 폭력’이다. 10여 년 전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들이 도시의 부자 동네로 몰려가 슈퍼마켓을 약탈하고 불태웠을 때 이것이 바로 ‘신적 폭력’이다.(245)

여기서 신적 폭력은 정의와 복수가 구분 불가능한 지점에서 일어나는 맹목적인 스트라이크로서 말해지고 있다. “신적 폭력의 모토는 ‘세상이 망하더라도 정의는 세우라’이다.”(246)

결국 신적 폭력은 무엇보다도 기존 권력에 대한 파괴의 계기로 구성된다. 물론 신적 폭력이 단순히 파괴의 계기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 테러에서 신적 폭력에 내재한 구성의 계기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앞서 살펴봤듯이 이 구성의 계기는 (국가 초석적 폭력에서와 같이 수단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의 강제적 부여로서 혁명적 폭력 자체의 순수하고 직접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테러는 구성된 권력에 대한 파괴에 우선하는 삶의 활력에 대한 긍정일 수는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폭력의 문제를 발생론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지젝이 말하는 신적 폭력은 그것이 현존하는 권력의 폭력에 대한 인민의 정의/복수의 요구로서 실행된다. 신적 폭력이 결코 현존하는 권력의 폭력에 대칭적이지 않으며 그래서 절대적인 것이더라도, 신적 폭력은 그것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마치 치안이 우선하듯이) 현존하는 억압적인 권력의 우선성을 전제해야 한다. 때문에 신적 폭력에 내재하는 구성적 계기는 (혁명적 민주주의적) 테러와 같은 형식으로만 제도화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단순히 절차와 같은 것으로도 나아가 테러와 같은 것으로도 제도화하지 않으려면, 첫째, 먼저 삶 자체의 집단적, 협력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지평이 고려되어야 하고, 둘째 물론 이 삶의 협력적, 집단적 생산이 권력이 행사하는 폭력에 의해 통제되더라도, 근본적으로 삶의 집단적, 협력적 생산에 대한 권력의 의존성과 기생성, 그리하여 권력에 대한 삶의 절대적 우위가 고려되어야 한다. 오직 이럴 경우에만 새로운 삶의 형식을 위한 존재론적 능력을 부정성이 아닌 긍정성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전도는 (물론 혁명적 이데아에 대한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압제가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적 삶의 네트워크가 우선한다는 것, 권력이 행사하는 폭력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다중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것, 그래서 억압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이 우선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는 새로운 삶의 형식의 원천을 “고독한 주권적 결정의 영웅적 승인”,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이뤄진 결정”(246)으로서의 신적 ‘폭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다중의 네트워크적 ‘협력’에서 찾아야만 하는 것 같다.

이는 폭력에 대해 협력이 절대적인 존재론적 우위를 갖는다는 것을 함축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폭력을 무조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가령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다중의 협력을 방어하는 폭력에 대한 절대적 긍정이 요구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새로운 삶의 형식에 대한 존재론적 능력은 부정성이 아닌 긍정성을 통해 정초되어야 하며, 이러한 전도는 폭력에 대한 협력의 절대적인 존재론적 우위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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