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정원2018. 3. 9. 07:22

*아래는 P2P 재단의 블로그에 실린 미셸 보웬스(Michel Bauwens)의 글 “If we can have p2p economics, why not p2p spirituality”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블로그의 글들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 Alike 3.0 Unported License를 따른다. 이 글은 원래 open democracy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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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경제가 가능하다면, P2P 영성(spirituality)이 불가능할 이유가 있는가?

 

옮긴이: 카오모


컴퓨터에 사용되는 지식·소프트웨어·코드가 자기조직적인 개인들의 공동체에 의해 피어생산(peer produce)되는 것처럼 영적 경험과 통찰이 공동생산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영성은 우리가 사는 시공간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세계관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이 출현하는 영적 관점과 영적 실천은 새로운 사회문화적 복잡성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필수적인 의식의 진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함의는 심대하다.

영성과 종교는 항상 그것들이 태어나고 뿌리내린 사회구조의 특징을 담지한다. 새로 출현하는 종교들이 의식의 새로운 형태를 재현한다는 점에서 종종 사회구조의 부분적 변형을 재현하더라도, 주류 사회논리에 뿌리내리고 그 논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결코 헤게모니적이 될 수 없다. 

예컨대 우리는 가톨릭과 불교교단의 조직구조와 이념에 강한 봉건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혹은 개신교가 출현하고 있던 자본주의적 그리고/혹은 민주주의적 형태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혹은 종종 뉴에이지 영성”(New Age Spirituality)이라 불렸던 것이 상품화된 영적 경험이 판매될 수 있는 시장에 맞춰 고안된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가톨릭과 불교교단이 각각 로마의 정치질서와 노예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가치창조와 가치분배의 새 모델로 나타난 피어생산 역시 영적 조직과 영적 경험의 새로운 형태를 낳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분명 타당하다.

피어생산 혹은 ‘P2P’는 개방적 투입과 참여적 절차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과정으로 정의되는데, 여기서는 산출물을 누구나 커먼즈(공통재)로 이용할 수 있다. 이 정의는 P2P 영성에도 적용될 수 있는 다수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째 영적 공동체는 그 기본적 규칙과 지침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적이어야 한다. 둘째 중앙의 기획과 신념을 부과할 수 있는 미리 수립된 위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셋째 영적 지식은 저작권이 부여되거나 사유화될 수 없다. 사이언톨로지(Scientology)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말이다.

다른 모든 낡은 형태들과 구분되는 P2P 영성의 핵심적인 긍정적 윤리적 가치는 잠재력 균등성”(equipotentiality)이라 불려온 것에 뿌리내리고 있다. 잠재력 균등성은 모든 인간 존재가 가진 자신의 자질을 개발시킬 수 있는 능력으로서, 이 자질들은 공통의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데 모두 필요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보완이 되는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잠재력 균등성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영적 형태를 오염시킨 순위매기기 방법론에 대한 필수적 해독제이다. 스페인의 트랜스퍼스널 심리학자인 호르헤 페레르(Jorge Ferrer)에 따르면 비교하는 마음은 언제나 서로 간에 더 높거나 더 낮게 순위를 매기게 되는 위계의 필수불가결한 기반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통합적인 체화된 영성은 쉽사리 경쟁·대립·시기·질투·대결·증오를 낳는, 비교에 기반한 현재의 인간관계 모델을 효과적으로 약화시킬 것이다. 개인들이 그들의 가장 순수한 활력으로 조화롭게 발전할 때 상호교류와 상호증진으로 특징지어지는 인간관계가 자연스레 출현할 것인데 이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그들 자신의 욕구와 결핍을 투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분명히 말하면 비교하는 마음을 중지하는 것이 영적 집단들에 역설적으로 그토록 퍼져 있는 광범위한 위계적 상호작용 양식을 해체할 것인데, 이 집단들에서는 사람들이 기계적으로 다른 이들을 전체적으로 혹은 몇몇 특권적 측면들에서 우등하거나 열등하다고 본다.”

이와 달리 모든 각각의 개인들은 다양한 속성·강함·약함의 집합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것들 각각에서 다른 이들보다 못할 수도 있고 나을 수 있다. 핵심은 모든 개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최고의 기술과 자질이 공통의 프로젝트에 기여할 수 있고 그러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피어생산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이와 같은 것이 P2P 영적 프로젝트에도 타당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적 성취를 다른 모든 이들을 능가하는, 한 사람에게 무소불위의 권위를 부여하는 초월적 자질인 깨달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위대한 음악가나 예술가에게 어떤 특별한 힘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존경하는 것처럼 영적 성취를 존중받을 만한 특별한 기술로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사조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특정의 일을 맡는 솜씨 좋은 선생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선생들은 기술적 조력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는 재능있는 동료들이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접근법에서는 영적 탐구의 방법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존 헤런(John Heron)이 발전시킨 협동적인 영적 탐구 집단들이 이러한 방법론의 실제적인 좋은 사례이다. 이 집단들에서 영적 탐색은 영적 경험이 쉽게 출현하도록 하는 특정한 실험들과 명령들을 집단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여기에 미리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경험 많은 선() 선생을 초청하여 명상 수행을 이끌도록 할 수는 있지만, 참여하는 모든 개인들은 그들의 상호 이해와 배움을 키우고자 집단 내 다른 이들과 그들의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위계적 집단의 영적 실천과 달리 특정 경험의 선험적 타당성이란 없으며 다른 경험들을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경험이 존중되며 집단적으로 의미를 만드는 경험의 일부가 된다. 

과거에는 영적 탐구자들이 다음의 두 가지 사이에서 즉 수평적·공통적 측면이 대체로 위계 속에 통합되어 있던 전통적인 종교적 구조들과 종종 꽤나 자기도취적이었던 더 개인주의적인 뉴에이지 버전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됐는데, 후자의 버전들은 (종종 돈과 교환되는) 영적 경험의 획득에 기초하지 수평적 관계에는 미약하게만 근거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P2P 영성은 무엇보다도 공동체와 공동생산을 존중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시사하는 바는 내가 기여적’(contributory)이라 부르는 영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은 각 영적 전통을 가부장제, 배타적 진리론 같은 특정 시대와 연관된 가치들에 영향받는 특정한 사회틀 내의 일단의 명령들로 이해한다. 동시에 각 전통은 우리와 우주의 관계에 관한 특정 진리를 표현하는 심적·영적 실천의 중요 부분 또한 포함한다. 이러한 영적 진리를 발견하는 것은 최소한 이러한 실천들에 부분적으로나마 노출되는 것을, 아울러 다른 이들로부터의 상호주관적인’(inter-subjective) 피드백을 받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이는 홀로 착수할 수 없는 탐색이며, 같은 길 위에 있는 다른 이들과의 공유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접근법에서는 전통이 거부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비판적으로 경험되고 평가된다. 기여적인 영적 실천가는 스스로를 특수한 전통에 빚지고 있는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그가 그 전통에 구속되어야 한다고 느낄 필요는 없다. /녀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전통들에 다가가며 그것들을 개별적·집단적으로 경험하고 다른 이들과 경험을 교환하는 영적 탐구 집단들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집단들을 통해서 영적 경험의 새로운 집단적 신체가 탐구하는 영적 공동체 및 개인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공동으로 창조될 수 있다. 영성의 공동생산에 P2P 거버넌스P2P 소유관계를 더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미래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예시적 실천들을 발명할 수도 있다. 새로이 출현하던 기독교 문명의 뿌리가 된, 새로운 기독교 주체성을 발명했던 가톨릭 수도승처럼 P2P 영적 실천자들은 출현하고 있는 P2P에 기반하고 커먼즈로 향해있는 사회를 공동으로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의 귀결은 공동으로 만들어낸 실재일 것이다. 이 실재는 예측불가능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이 모든 인류가 이용할 수 있는 영적 지식의 커먼즈에로 이끄는,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접근일 것이라는 점이다

Posted by 카오모
번역정원2018. 3. 9. 07:14

*아래는 P2P 재단의 블로그에 실린 캐머런 네일란(Cameron Neylon, 커먼즈 전략 그룹)의 글 Patterns of Commoning: Open Access Pioneer: The Public Library of Scienc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플로스(PLOS)의 전() 옹호국장(Advocacy Director)인 네일란은 인터넷을 과학을 위한 도구로서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연구를 위한 웹 기반 도구의 설계 등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이 블로그의 글들은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 Alike 3.0 Unported License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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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액세스의 개척자: 과학 공공 도서관(The Public Library of Science)

 

옮긴이: 카오모

 

1990년대에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 해럴드 바머스(Harold Varmus)와 캘리포니아 과학센터의 과학자 패트릭 브라운(Patrick Brown), 마이클 아이센(Michael Eisen)은 과학연구를 공유하는 데 가해지는 많은 제약으로 인해 점점 더 좌절을 겪었다. 학술 연구자들이 (상당수가 납세자들에 의해 재정지원을 받는) 돈이 많이 드는 어려운 과학연구를 하고 같은 전공자로서 연구물에 대해 리뷰를 하는 사람들임에도 상업적인 학술지 출판사들은 보통 출판된 결과물의 저작권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출판사들은 도서관들로서는 종종 감당할 수 없는 구독료를 부과하고 연구논문들에 접근·복사·공유하는 사람들의 권한에 법적 제한을 가할 수 있었다. 구독료는 10년 넘게 인플레이션율 이상으로 오르고 있으며 미국 대학들은 이제 학술지들에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을 쓴다. 심지어 하버드대 같은 가장 부유한 기관들조차 이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1 

이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바머스와 그의 동료들은 세계 전역의 과학자들에게 그들 논문의 전문을 모두가 무조건적으로 즉각 혹은 몇 달 간의 타당한 지연이 있은 다음에 이용하는 것을 막는 학술지들에는 더 이상 논문을 내지 않겠다고 서약하기를 청하는 온라인 청원서를 내놓았다. 또한 그들은 더 이상 그러한 학술지들을 구독하거나 그러한 학술지들을 위해 리뷰를 쓰지 말 것을 과학자들에게 촉구했다.2

그에 대한 응답은 신속했고 놀라웠다. 180개국 34,0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그 공개 청원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서명자들이 청원서의 목표를 실질적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는데, 그 이유는 논문들을 실제로 제공하거나 논문들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출판물들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 간극을 메우고자 바머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과학 공공 도서관’(www.plos.org)으로 알려진 새로운 출판벤처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논문들을 모두가 영구적으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 출판 매체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자들과 연구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연구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었다. 원저자는 저작권을 가지며 자유로운 재사용·공유·배포가 가능하도록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어트리뷰션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se) 하에 논문을 공개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에 관한 에세이를 보라.) 이 프로젝트는 런던에 기반을 둔 기업가 바이텍 트라츠(Vitek Tracz) 1990년대 후반의 다른 혁신적 출판업자가 유사한 목적으로 주도했던 출판벤처인 바이오메드 센트럴(Biomed Central)의 개발을 참조하여 이루어졌다.

2003년 설립된 이래 플로스(PLOS)는 공동체의 저항에서 시작하여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직접적으로 접근가능하며 공개적으로 인준된 학문적 내용을 담은 세계 최대의 출판사로 성장했다. 최초의 플로스 학술지인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 2003년 말에 첫 논문들을 출판했으며 순식간에 양질의 논문들로 명성을 얻었다. 그 다음 수년 간 그 프로젝트는 플로스 의학(PLOS Medicine)과 계산생물학, 유전학, 병원균, 도외시된 열대성 질환 분야의 연구에 각각 초점을 둔 네 학술지를 내놨다.

이 여섯 개의 학술지가 성장하면서 설립자들은 학적 소통에서의 변화를 촉진한다는 본래의 더 야심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목표로 나아가는 그 다음의 중요한 단계는 과학 전체를 포괄하기 위해 그리고 과학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척하기 위해 2006년에 새로운 과학지 플로스 원(PLOS ONE)(www.plosone.org)을 만든 것이었다. 처음으로 출판되는 논문 수에 가해지는 어떠한 인위적 제한도 없게 되었다. 투고된 논문들은 예견되는 파급력이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과 기술적 질을 기반으로 검토되었다. 관행적으로 연구자들은 가장 까다로운 학술지에 게재함으로써 갖게 되는 명망을 추구해왔는데, 이것이 이제 학술지의 명망이 논문의 질보다 더 중요하게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논문 저자와 편집자 양자로 하여금 주의 깊은 증거를 제공하기보다는 가장 선정적인 주장을 하거나 그런 주장을 뽑는 비뚤어진 동기를 낳을 수 있다. 플로스 원은 적절하게 수행된 과학이라는 규준을 충족시키는 모든 투고논문을 출판하는데, 이것이 플로스 원 2010년에 세계 최대의 학술지로 만든 출판전략이다. 모든 주요 출판사들이 곧바로 플로스 원 거대 학술지”(megajournal) 모델을 모방하여 논문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광범위한 학술지들을 출판했다.

대규모 독자층과 투고논문의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플로스 원은 같은 전공자의 엄격한 출판 전 리뷰의 타당성에서도 선구자가 되었다. 통계적 타당성, 윤리적 리뷰, 보고 지침과 관련한 몇 개의 검증사항은 모든 학술지 가운데 가장 엄격하다.

플로스는 처음에는 자선기금에 의하여 그리고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the Gordon and Betty Moore Foundation),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the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두 재단은 각각 인텔사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와 연결되어 있다과 같은 박애주의적 기금으로부터 온 수입에 의하여 재정을 조달했다. 플로스는 2010년에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으며 비영리사업인데도 그때 이래 매년 흑자를 냈다. 플로스는 재정정보에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왔으며 그리하여 비영리단체에 대해서 정부가 요구하는 정보공개에 준하는, 세부 수입액·지출액 공개의 선구자였다. 2012년에 플로스 출판벤처는 총 3 8백만 달러를 거둬들이고 거기서 7백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정적 지속가능성이 일단 확립되자 학적 소통에서의 새로운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나의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개별 논문들의 파급력과 쓰임새를 아주 세부적으로 측정하는 데 쓰이는 공개 데이터를 제공하는 도구인 논문수준표(Article Level Metrics)였다.3 이러한 혁신 이전에는 연구논문에 대한 평가가 전통적으로 그것 자체의 개별적 가치보다는 그것이 게재된 학술지의 평판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 기획은 또 다른 영향을 미친 바 있으니, 10만 명 이상의 연구자와 400개 이상의 기관이 서명한, 연구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the 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 DORA)이 바로 그것이다.4 2012년의 이 성명은 자금을 댄 사람, 기관, 기타 출판사들이 학술지의 피인용지수’(논문의 평균 인용 횟수)를 개별 과학자의 기여의 질과 혼동하지 않고 연구논문들을 그 자체의 장점을 기반으로 판단하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연구 평가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고용·승진·해고를 결정하는 방식에 느리기는 해도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최근에 플로스는 윤리적인 혹은 기타의 고려에 따라서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게재논문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데이터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플로스는 연구의 정확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논문들을 출판 이후 짜임새있게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들 또한 개발했다.

과학 분야의 출판을 커먼즈의 한 유형으로 다시 생각함으로써 플로스는 학적 출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선봉에 있어왔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플로스가 이제 수천의 오픈 액세스 학술지들을 포함하고 50만 편 이상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구논문들을 포함하는 과학 분야의 출판을 중차대하게 대변하고 선도적으로 혁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Posted by 카오모
번역정원2017. 7. 25. 14:51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2017522일 게시글 “New Videos Explore the Political Potential of the Commons”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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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의 정치적 잠재력을 탐험하는 새로운 영상들

 

옮긴이: 카오모

 

세계 전역에서 온 최전방 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커먼즈에 관한 25분짜리 멋진 개관 영상 <정치공간에서의 커먼즈: 탈자본주의적 이행을 위하여>가 세계 전역의 커먼즈 운동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12개 이상의 개별 인터뷰와 함께 막 배포됐다. 작년 8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찍은 그 영상들은 그곳에서 이루어진 토론과 조직화의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커먼즈 세계에 관한 이 멋진 영상을 함께 만든 몬트리올의 두 단체 리믹스 더 커먼스(Remix the Commons)와 커먼즈 스페이스(Commons Space) 그리고 알랭 앰브로시(Alain Ambrosi), 프레데릭 술탄(Frédéric Sultan), 스테파니 레사드-베루베(Stépanie Lessard-Berube)에게 크게 감사한다. 개관 영상은 커먼즈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오늘날 커먼즈 패러다임의 정치적전략적 전망에 관한 놀랍도록 통찰력 있는 일련의 진전된 해설이다.

개관 영상은 커머너와 전통적 운동과의 현재 출현하고 있는 정치적 동맹, 커먼즈가 국가권력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에 관한 아이디어, 커먼즈적 사고가 정책 토론과 대중문화에 진입하는 방식과 같은 최전방의 사태전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 영상에서 돋보이는 건 프레데릭 술탄, 갤레 크리코리안(Gaelle Krikorian), 알랭 앰브로시, 야닉 마르실(Ianik Marcil), 매튜 레암(Matthew Rheaume), 질케 헬프리히(Silke Helfrich), 샹탈 델마(Chantal Delmas), 빠블로 솔론(Pablo Solon), 크리스티안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 제이슨 나디(Jason Nardi) 등의 해설이다.

이들 각자와의 개별 인터뷰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전체 리스트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인터뷰들 중 여섯 개는 영어, 아홉 개는 불어, 세 개는 스페인어로 이루어진다. 그것들의 길이는 10분에서 27분 사이이다.

인터뷰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여기 샘플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법학자이자 커머너인 크리스티안 이아이오네는 이탈리아에서의 커먼즈 거버넌스를 위한 연구소(the Laboratory for the Governance of the Commons in Italy)를 이끈다. 5년 전에 수립된 프로젝트는 로마볼로냐밀라노메시나 같은 이탈리아 도시들에서의 커먼즈 거버넌스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더 최근에 그 프로젝트는 셰일라 포스터(Sheila Foster) 교수가 이끄는 포덤대(Fordham University)와 공동작업을 시작했고 암스테르담과 뉴욕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그의 인터뷰 <이탈리아에서의 도시 커먼즈 헌장>에서 이아이오네는 도시 커먼즈에 대한 관심과 부흥을 위한 볼로냐 헌장(the Bologna Charter for the Care and Regeneration of Urban commons)이 커먼즈를 창출하는 데서 그냥 복사해서 붙이는 식의 도구가 아니라고, 다양하고 지역적인 실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아이오네가 말하길 도시의 거버넌스 및 커먼즈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기획술이 발휘되어야 한다.” “헌장은 나폴리 등의 이탈리아 남부에서 단순히 복제될 수 없는데, 그것은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들이 이탈리아의 다른 부분들과 상이한 시민제도들과 공공윤리를 갖기 때문이다. ... 다른 도구들이 필요한데,” 이 도구들은 그 도시들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의 27분짜리 인터뷰 <이탈라이에서 커먼즈의 발생>에서 제이슨 나디는 커먼즈 패러다임이 탈성장, 협동, 연대경제, 생태학자, NGO, 진흥운동, 다양한 인권운동 같은 오늘날 출현하고 있는 대단히 상이한 운동들을 통일하고 통합하는 데 유용한 갱신된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나디는 세계사회포럼이 거대 금융권력이 모든 것을 사유화하는 데 맞싸우기 위하여 다양한 분파들을 통일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데모크랫츠 닷 컴(Democrats.com)의 찰스 렌취너(Charles Lenchner)는 뉴욕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의 정원들을 도시 커먼즈로 변형하기 위한 뉴욕시에서의 중요한 운동을 인용하면서 <미국에서의 커먼>(11)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는 오늘날 뉴욕시에서의 시민참여 예산 편성 운동의 증가를 거론했는데, 이 운동에서는 시의회의 대다수의 선거구가 그 절차를 사용한다. 뉴욕시는 협동조합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을 장려하기도 하는데, 부분적으로 이는 불안정성과 소득불균형을 손보는 방법이다.

독일인 커먼즈 활동가인 질케 헬프리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제로서의 커먼즈>(27)를 논했다. 그녀는 오늘날 커먼즈에 관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는 불가능한데, 이는 너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거나 합류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뒤쫓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커먼즈에 접근하는 서로 다른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집단적으로 관리되는 공유 자원의 집합으로서의 커먼즈, 커머닝을 있게 하는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커먼즈, 진행되고 있는 더 광범위한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사유태도나 사유방식으로서의 커먼즈가 그것이다.

케빈 플러네건(Kevin Flanagan)19분짜리 인터뷰 <P2P에 의한 이행>에서 커먼즈 세계 안에서, 특히 디지털 커먼즈, 피어생산(peer production), 협동경제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정치적 성숙에 대해 말한다. 그는 언제나 커먼즈의 정치가 있어왔다고, 그런데 그 정치는 문화정치에 그치지 않고 해커문화, 창작자 공간(maker space), 열린 디자인(open design), 하드웨어 운동(hardware movement)에 관여하는 더 큰 정치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머너들은 협동조합과 사회연대경제 운동과 같은 더 전통적인 정치운동과 함께 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이 잘 만들어진 일련의 영상들에는 사유를 위한 영양가 풍부한 양식들이 넘쳐난다

Posted by 카오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