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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gmentaj Pensoj2011/07/04 22:25

*이 글은 2011년 6월 24일 진행된 연구공간L 맑스주의 세미나 발제문이다. 이 날 세미나에서 검토한 글은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전반부였다. 발제문을 작성하면서 그전에 연구공간L에서 친구들과 함께 읽은 『연속혁명』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검토하는 부분이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연속혁명론’을 비판하는 부분을 발제문에 포함시켰었다. 그런데 트로츠키에 대한 비판에 매몰된 나머지 사실 연속혁명론에서 오늘날 여전히 발전적으로 전개시킬 수 있는, 아니 전개시켜야만 하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것 없이 단순히 비판을 하는 것으로 연속혁명론을 다룬 것 같다. 우리가 글을 읽고 또 쓰는 이유가 단순히 비판을 하는 것,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단초를 확인하고 그래서 죽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의식하면서도 살릴 수 있으며 또 살려야만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전유하는 데 있다면, 사실상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이 발제문은 위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너무도 불충분한 작업임을 의심할 수 없다. 세미나에서도 지적됐듯이 특히 이 발제문에서 제시된 연속혁명론에 대한 평가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제기된 트로츠키의 주장을 연속혁명론에 재투사한 것의 귀결이며, 나아가 이러한 재투사가 『연속혁명』의 합리적 핵심을 오늘날 발본적으로 재전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됨은 분명하다. 연속혁명론에 대한 이러한 독해가 설혹 연속혁명론을 완전히 오해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닐지 모르나, 그것이 부족한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나저나 내가 쓴 글을 이렇게 스스로 비판한 다음 여기에 게시하려고 하니 조금 멋쩍기는 하다. 트로츠키 형님께서 최고로 도달한 곳에서 형님의 베스트를 전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 음 ... 이 작업은 발제문에서도 말했듯이 다음 발제자, 아니 이미 다음 발제자가 발제를 했으니 다다음, 다다다음 발제자에게 우선 맡기기로 하고 일단 나는 오늘 맥주를 한잔 해야겠다. 맥주가 왠지 너무 땡긴다. ㅎㅎㅎ

연구공간L 맑스주의 세미나

 

트로츠키『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검토

 

 

들어가며

 

러시아혁명 이후 트로츠키는 카우츠키에 맞서 러시아 소비에트체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테러리즘과 공산주의』를 작성했다. 따라서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는 카우츠키의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서 러시아혁명 이후의 상황을 반영한 프롤레타리아독재, 민주주의, 테러리즘 등에 대한 트로츠키의 시각을 접할 수 있다. 이 글은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제기될 수 있는, 나아가 (비단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트로츠키에게서 일반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몇몇 논점들을 중심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러시아 소비에트체제에 관한 트로츠키의 상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행기에 대하여

 

『테러리즘과 공산주의』가 발표된 1920년의 러시아는, 트로츠키가 보기에, 1917년 혁명 이후에 아직 사회주의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이행기’에 있었다. 트로츠키는 사회주의에서는 강제기구로서의 국가가 존재하지 않으며 생산과 소비가 코뮌에 완전히 흡수되지만, 사회주의에 이르기 전에 먼저 국가 원칙이 최대로 강화되는 시기, 즉 이행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트로츠키 2009, 236-7; 이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인용은 쪽수만을 표기한다), 국가 원칙이 최대로 강화되는 이행기에는 언제나 비극이 동반된다고 말한다(55). 왜 사회주의에 이르기 전에 비극을 동반한 이행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의 과제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것이라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프롤레타리아의 손에 온전히 집중하고 예외적인 정권이 지배하는 이행기를 두어야 한다(70).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근거한 자본주의로부터 그 사적 소유의 철폐를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 이행기가 필요하며, 또 이 이행기에는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기초한 국가권력의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행기에서는 왜 국가권력이 강화되어야만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간단히 답변을 한다.

 

인류 역사는 노동을 위해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조직화하고 교육한 역사다. 그 목적은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 문명의 발전은 인간 노동의 생산성으로 측정된다. 새로운 사회관계는 모두 이러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209).


 

사회주의사회가 자본주의사회 이후의 사회인 한에서 사회주의사회에서의 노동생산성은 자본주의사회의 그것보다 더 높아야만 한다. 물론 연속혁명을 주장하는 트로츠키가 후진적이었던 러시아가 홀로 이러한 높은 노동생산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각주:1] 

국가의 폐지와 국가의 사멸을 명시적으로 구분했던 『국가와 혁명』의 레닌이 (부르주아국가를 폐지하는)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과 구분되는 (프롤레타리아국가 혹은 준-국가를 사멸시키는) 일종의 영구적인 사회혁명을 제시한 것과는 다르게(레닌 1988, 30), 트로츠키는 국가권력 강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회주의개혁’에 대해서 말한다(111). (물론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트로츠키가 프롤레타리아국가에서 이루어지는 ‘사회혁명’(168) 개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사실) 습관화에 기초한 사회적 교류의 기본적 규칙들의 습득에 관심을 갖는 레닌과는 달리(레닌 1988, 111), 트로츠키의 관심은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엄격함에 있다. “등불이 꺼지기 직전에 찬란한 빛을 내뿜듯 국가 또한 사라지기 직전에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가장 가혹한 국가 형태를 취한다. 이 형태는 모든 영역에서 시민의 삶에 독재를 행사한다”(237).

물론 레닌과 트로츠키의 위와 같은 차이는 아마도, 혁명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보다는 혁명을 하는 것이 훨씬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국가와 혁명』의 집필을 중단한 채 10월 혁명에 투신한 1917년의 레닌과, 러시아혁명 이후에 소비에트체제를 카우츠키의 비판으로부터 방어해야 했던 1920년의 트로츠키 사이의 어떤 거리를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는 동시에 레닌과 트로츠키라는 두 혁명가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적어도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과 그에 뒤따르는 사회혁명으로 전체 혁명과정을 구분․구성한다는 점에서, 즉 국가권력 장악을 최우선적 과제로 요구하는 정치혁명과 궁극적으로 국가 자체를 해체시키는 사회혁명으로 전체 혁명과정을 구분․구성한다는 점에서, 두 혁명가가 일치한다는 점 역시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혁명도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이라는 두 단계로 구성되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혁명을 두 단계로 구분․구성한 ―사실은 혁명을 그와 같이 구분․구성해야만 했던― 토대 자체가 오늘날에는 사라졌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생산이 단순히 공장 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가 생산의 장이 되며, 따라서 자본과 권력이 생존하기 위해 사회적 삶 자체를 포섭해야만 하는 삶권력으로 전화한 오늘날, 정치혁명은 더 이상 국가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결박된 사회적 삶을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탈주시키기 위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며 사회적 삶을 자본과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율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투쟁이 아닌 국가권력의 장악, 즉 주권 장악을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탈근대적 변형에 비춰볼 때 적실한 정치투쟁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정치혁명은 사회적 삶을 변형하는 투쟁으로서의 삶정치적 혁명일 수 있을 따름이며, 그래서 삶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은 사회적 삶 그 자체를 변형하는 투쟁으로서 사회혁명이기도 한 것이다.

 

 

연속혁명에 대하여

 

그런데 오늘날 삶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이 그 자체 사회혁명이며 따라서 사회혁명과 분리된 정치혁명,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으로서의 정치혁명이 오늘날 적실한 정치적 투쟁이 될 수 없다는 우리의 주장에 비춰볼 때, 트로츠키주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연속혁명론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연속혁명』의 초판 서문에서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에는 세 가지의 측면이 통합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연속혁명론의 첫 번째 측면은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혁명으로 혁명이 연속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고, 두 번째 측면은 항구적인 내적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즉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충돌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가 변화하고 사회가 발전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 자체가 연속적이라는 것이며, 세 번째 측면은 사회주의 혁명이 설사 일국에 기반하여 시작하더라도 결코 일국의 기반 내에서 완성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일국의 사회주의 혁명은 그 자체로 자족적인 것일 수 없는 국제적인 사슬의 한 고리라는 것,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이 국제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트로츠키 2003, 184-5).

여기서 우리는 사실 트로츠키가 말하는 연속혁명이 국가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일국의 프롤레타리아독재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혁명으로 혁명이 연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연속혁명론의 첫 번째 측면의 핵심은 사실 (일국으로서의) 후진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정당화하는 데 있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이론[연속혁명론]은, 우리 시대에는 후진적인 부르주아국가의 민주주의과제들은 직접 프롤레타리아독재로 귀결되며, 프롤레타리아독재는 사회주의과제들을 당면 문제로 제기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바로 그것이 이 이론의 핵심 사상이었다. 어느 정도 오랜 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거쳐서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도달한다는 전통적인 견해와 달리, 연속혁명론은 후진국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길은 직접 프롤레타리아독재로 통한다는 사실을 정립한 것이다(트로츠키 2003, 184).


 

또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의 충돌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가 발전하며 따라서 사회주의혁명 자체가 연속적 성격을 갖는다는 연속혁명론의 두 번째 측면의 핵심은 사실 (설령 이러한 문제의식이 부재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그럼에도) 사회적 삶의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 국가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계급과 부르주아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내전의 과정 및 프롤레타리아국가와 제국주의국가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과정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쟁취는 혁명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일 뿐이다. 사회주의건설을 국내적․국제적 차원의 계급투쟁을 토대로 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조건에서 이 투쟁은 불가피하게 폭발, 즉 대내적으로는 내전, 대외적으로는 혁명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트로츠키 2003, 362).


 

마지막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연속혁명론의 세 번째 측면은 사실 일국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이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기반으로서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은 국민적 무대에서 시작돼 국제적 무대에서 전개되고 결국에는 세계적 무대에서 완성된다”(트로츠키 2003, 362).

이로부터 우리는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그것이 설사 사회주의혁명의 국제적 성격을 강조할지라도, 일국에서의 국가권력 장악을 통한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기반해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트로츠키가 견지하는 국제적 시각은 개별 국민국가의 주권에 근거한 국민국가 주권들 사이의 관계에 기초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상 트로츠키의 국제적 시각은, 물론 어떤 혁명가도 그가 속한 시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국주의적 시각을, 그가 비록 침략이 아닌 혁명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지언정, 분명 ‘반영’하고 있다. 물론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제국주의적 시각을 어떤 점에서는 분명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연속혁명론의 역사적 한계를 말해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이 오늘날의 혁명에서 유효한 무기로 쓰이기 위해서는 그 자체 발본적으로 혁신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속혁명론을 오늘날의 혁명에서 유효한 무기로 쓰기 위한) 연속혁명론의 발본적 혁신은 사실상 연속혁명론의 핵심 그 자체를 수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하여

 

이제 트로츠키가 말하는 일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에 초점을 맞춰서 논의를 진행하기로 하자. 레닌과 마찬가지로, 트로츠키는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가 권력,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말한다.[각주:2]  물론 프롤레타리아의 국가권력 장악은 반혁명 세력의 저항을 분쇄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으며, 반혁명 세력의 저항에 맞서는 것은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각주:3] 결국 트로츠키의 정식을 따를 때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는 프롤레타리아의 수중에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반혁명 세력의 저항을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분쇄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독재를 수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혁명적 ‘독재’인가? 그것은 설사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더라도 강제성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본질적으로 혁명적 전위의 직접 지배를 뜻하며, 이들은 다수의 대중에게 의존하고 필요할 경우 뒤처진 후미가 선두를 따르도록 줄 세운다. ... 프롤레타리아는 권력을 장악한 이후 강제성을 지니게 된다(171-2).


 

물론 (혁명적 전위의 직접 지배로서의) 프롤레타리아독재가 강제성을 갖는 이유를, 우리는 우리가 앞서 확인한 노동 생산성에 대한 트로츠키의 강조를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끌어들이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노역을 도입하는 것이다(198). 노동의 군사화 방식을 어느 정도 적용하지 않고서 강제노역을 도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201). 노동의 군사화는 ... 국가 강제를 토대로 삼는다. 국가 강제 없이는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바꾸는 것은 언제까지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205).

 

노동의 군사화에 기초한 강제노역의 도입이 자본주의 경제를 사회주의 경제로 바꾸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트로츠키는 동시에 프롤레타리아국가와 (부르주아계급의) 자본주의국가가 분명히 구분된다고 말한다. 어떻게?

 

부르주아계급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무기는 종교다. 우리의 무기는 상황을 대중에게 솔직히 설명하고,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지식을 확장하며 국가의 일반 경제계획에 대중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런 토대를 만드는 데 소비에트 정권의 모든 노동력을 쏟아부어야 한다(213).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맑스 1991, 2)고 말한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의 맑스를 따라 트로츠키는 자본주의국가가 종교적 최면을 통해서 대중을 홀리는 데 반해, 프롤레타리아국가는 대중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를 통해 대중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을 국가의 일반 경제계획에, 아니 나아가 통치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질서는 수수께끼였고 우리는 이 수수께끼를 대중에게 풀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대중에게 사회의 수수께끼를 소비에트 질서의 메커니즘 자체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대중은 통치의 모든 부분에 참여한다(213).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독재’인 한에서, “독재는 의지의 통일, 방향의 통일, 행동의 통일을 전제”하며,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지배는 프롤레타리아 내부에서 정당의 정치적 지배를 전제”한다(169). 물론 이 당, 즉 공산당이 명확한 행동강령과 흠 없는 내부규율을 지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169). 공산당은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하고 헌신적인 성원만을 포함하며, 구성원을 확대할 때는 반드시 신중한 선별과정을 거친다(171). 그리고 공산당은 노동자계급 전체가 인정하는 대의기구로서(170),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갖는다(168).

여기서 우리는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의기구이자,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최종 결정권을 갖는 공산당의 대의성과 강제성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적어도 어떤 점에서는 그것의 대척점에 있는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실상 유사한 것이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지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서문으로 작성된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또는 격동기 1920년의 절망과 유토피아」에서 지젝은 ‘독재’라는 용어를 정확한 의미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형식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 또한 독재의 한 형태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독재’라는 용어는 정확한 의미로 써야 한다. 형식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주의 또한 독재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 아무리 ‘자유로운’ 선거라도 이를 정당화하고 조직하는 법적 절차, 선거과정을 (필요하다면 강제로) 보장하는 국가기구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측면에서의 국가는 이익의 대리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다. 이러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다(지젝 2009, 22-3).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독재(?)의 강제성과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강제성은 다르다. 민주주의독재의 강제성이 법적 절차, 선거 과정을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보장하는 국가기구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다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라면, 트로츠키가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의 강제성은 무엇보다도 명확한 행동강령과 흠 없는 내부규율을 지닌 공산당의 정치적 지배의 강제성이다. 그렇다면 대의성은 어떠한가. 강제성과 마찬가지로 의회민주주의의 대의성과 공산당의 대의성 역시 물론 분명히 다르다. (앞서 확인하였지만)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의기구로서의 공산당은 계급의식이 가장 투철하고 헌신적이며 오직 신중한 선별과정을 거친 프롤레타리아‘전위’로만 구성되며, 그래서 허구적으로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하는 의회주의적 대의와는 달리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의 대의는 프롤레타리아전위에 의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대의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공산당의 정치적 지배의 대의적 성격과 강제적 성격을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공산당의 강제성은 (노동자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일반을 대의하는) 선진적인 프롤레타리아전위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일반 및 농촌의 하위중간계급으로서의 농민 그리고 도시의 하위중간계급에 대한 정치적 지배의 강제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의 정치적 지배의 강제성은 (프롤레타리아전위가 대의하는 노동자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일반뿐만 아니라 도시의 하위중간계급 및 특히 농민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이론적인 수준에서도 프롤레타리아(전위)와 하위중간계급, 특히 농민과의 관계는 강제의 관계이기는 하지만 대의의 관계는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전위)와 농민의 관계에 대한 트로츠키의 문제의식을 『연속혁명』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연속혁명』에서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와 농민의 관계에 대한 레닌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일치함을 확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레닌은 ... 독자적인 농민 정당이나 특히 혁명 정부에서 농민 정당의 지배적 역할과 같은 관념을 배제하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즉, 프롤레타리아가 농민을 지도하고 그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결국 혁명권력은 프롤레타리아 당의 수중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연속혁명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트로츠키 2003, 266; 강조는 트로츠키).


 

프롤레타리아전위의 당으로서의 공산당은 농민을 지도하고 농민의 지지를 받는 것이지 농민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독재가 특히 하위중간계급과 농민에 대해 별도의 합의나 상당한 양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70-1),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이러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권력기구를 소유하고, 사회주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양보할 부분과 고집할 부분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71).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시금 트로츠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민주주의독재가 과연 얼마나 상이한 것인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전위와 일반대중 사이의 정치적 지배-피지배 관계가 너무도 분명히 존립하며,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프롤레타리아전위에 의한 일반대중의 사실상의 일방적 종속의 체제이지 않은가?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민주주의독재의 강제성은 분명 다르지만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의 (프롤레타리아전위-일반대중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는 형식적 민주주의에서의 (대의하는 자-대의되는 자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와 ‘형식적으로’ 너무도 유사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형식적 민주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독재에서도 지배-피지배 관계가 어떤 점에서는 분명 유지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뒤따르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의 ‘내용’ 자체를 혁신하고자 했던 트로츠키의 긍정적 측면(및 나아가 그 한계)을 너무나 손쉽게 판정해 버리는 것일지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문제를 검토하면서 다시 확인하기로 하자.

 

 

세력균형에 대하여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수립은 프롤레타리아가 의회민주주의적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프랑스, 영국 등의 민주주의가 건전하고 정상적이고 평화롭게 사회주의의 발전을 가져오리라고 보는 카우츠키에 맞서 트로츠키는 카우츠키의 이러한 생각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면서(56), 의회민주주의적인 편견에 단호히 맞서는 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쟁취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59).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은 혁명적 투쟁을 ‘세력균형’에 기초하여 사유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을 살펴보기 전에 트로츠키가 왜 ‘세력균형’에 의존하여 혁명적 투쟁을 사유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의 1장은 <세력균형>인데, 여기서 트로츠키가 말하는 세력균형은 물론 정치적 세력균형이다. 정치적 세력균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트로츠키는 세력균형을 “이른바 현실주의 정치인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치적 인상을 요약한 것”(62)이라고 말하는데, 이로부터 우리는 세력균형이 현실적인 정치권력들 사이의 역力관계에 대한 표상을 말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혁명적 투쟁이 이러한 현실적 역관계에 대한 표상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일견 혁명적 투쟁에 대한 트로츠키의 사유에서 어떤 긍정성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갖는다. 그것은 혁명적 투쟁이 현실적 역관계에 대한 표상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 즉 현실성에 기초하여 우리가 혁명을 사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력 균형에 따라서 현실권력들 사이의 역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이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어떤 발본적인 새로움을 낳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은 현실적인 항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따라서 그 자체 실재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것처럼 실재하지 않는 잠재적인 것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력 균형에 기초해서 혁명적 투쟁을 사유해서는 안 된다고 트로츠키가 말했을 때, 일견 트로츠키가 혁명을 어떤 단순한 현실성에 기초해서 투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우리는 갖게 된다. 그렇다면 트로츠키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세력 균형을 넘어서 있는 혁명의 조건으로 사유하고 있는가?

 

역사발전의 결정적 요인인 생산의 거대한 힘은 상부구조의 낡은 제도(사적 소유와 국민국가)에 질식했다. 이들은 이전 발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자본주의가 낳은 생산력은 모든 부르주아 국민국가의 문을 두드리며 경제활동을 전 지구적 규모에서 사회주의적으로 조직하여 자신을 해방시켜달라고 간청했다(66).


 

트로츠키가 주목하는 혁명의 조건은 당대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이며, 이로부터 우리는 생산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트로츠키에게서 혁명의 조건이자 핵심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인류가 겪는 불행의 원인은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여 경제활동을 사회화할 만큼 성숙한 지 오래되었다는 데 있다. 프롤레타리아는 생산에서 독재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지위를 차지했다(67).


 

반복하건대,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핵심적 조건을 정치적 세력관계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낳은 생산력의 발전에서 찾고 있다. 생산력의 발전에 주목하는 트로츠키의 문제의식은 확실히 트로츠키의 국제주의적 시각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럼에도 트로츠키가 일국의 국가권력 장악이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프롤레타리아의 연속혁명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된다고 이해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로츠키가 설령 혁명의 조건을 세력균형이 아닌 생산력의 발전 속에서 찾으면서도 동시에 이를 전적으로 주권적 틀 안에서 사유하고 있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현실적인 정치적 세력관계를 넘어서 혁명을 사유하고자 했던 트로츠키로부터 혁명을 잠재성의 코뮤니즘과 그것의 현실화로 파악했었던 어떤 흔적을 확인하는 것은 무리이지 않을까? (나아가 트로츠키가 전제하는 주권적 틀 안에는, 그것이 설사 프롤레타리아주권일지라도, 이미 자본-임노동 관계가 아닌 프롤레타리아국가-임노동 관계의 싹이 이미 배태되어 있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에 대하여

 

전술했듯이, 혁명적 투쟁이 세력균형, 현실의 역관계에 대한 표상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는 트로츠키의 생각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과 맞닿아 있다. 트로츠키는 과거에는 의회선거가 세력균형을 충분히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여겨졌었지만 제국주의전쟁으로 인해서 이러한 낡은 기준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말한다(64). 의회민주주의를 물신으로 숭배하는 카우츠키에게, 트로츠키는 의회민주주의가 합법적 허구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의회주의라는 합법적 허구에 따르면, 보통선거권은 국가 내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의지를 나타내며, 그 결과 국민 대다수를 사회주의로 끌어들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론적인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는 한, 사회주의 소수당은 부르주아 다수당에 복종해야 한다. 의회 다수당이라는 이러한 물신숭배는 프롤레타리아독재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모조리 거부하는 짓이다. 이론상, 사회주의 정책을 다수당과 소수당이라는 의회주의 신화에 종속시킨다면 형식적 민주주의가 전파된 나라에서는 혁명투쟁이 불가능하다(71).


 

트로츠키가 보기에 의회의 다수당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물신숭배는 혁명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있다. 왜 그러한가? 형식적 민주주의를 통해서는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에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각주:4]

 

물론 트로츠키가 민주주의를 무조건적으로 그릇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트로츠키는 민주주의가 역사적으로 유효한 역할을 담당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가령 봉건제 사회의 계급적 특권에 대항하면서 모두가 평등한 선거권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봉건제에 대항하는 구호로서 진보적인 성격을 가졌었다(90-1). 문제는 트로츠키 당대의 형식적 민주주의 이론이 노동자대중과 혁명정당의 현실적 요구를 통제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적 정당성이라는 형태로 노동자의 의식 발전을 제한하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가졌는데 어떻게 노예 상태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91).

여기서 민주주의가 부르주아적 정당성의 형태로 노동자의 의식 발전을 제한한다는 트로츠키의 주장은 사실 의회민주주의에서는 인구의 다양성이 일인일표에 근거한 동일성으로 환원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의회민주주의가 대의라는 허구를 통해서 인구를 민중으로 통일시켜서 주권에 연결시키지만 이러한 연결은 사실 정당화라는 허구에 기초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부르주아주권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트로츠키는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무지렁이 농부는 이름도 쓸 줄 모르고, 입던 옷 그대로 자며, 두더지처럼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주권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법정과 투표소에서 로트실트와 같은 권리를 행사한다. 삶의 실제 조건, 경제적 과정, 사회관계, 생활양식 면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불평등해졌다. 한쪽에서는 엄청난 부가 쌓이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가난과 절망이 더해갔다. 하지만 국가의 법적 체계의 영역에서는 이런 확연한 모순이 사라졌다. 비본질적인 법의 그늘로 숨어든 탓이다. 지주, 노동자, 자본가, 프롤레타리아, 성직자, 구두닦이, 이들은 모두 ‘시민’이자 ‘입법권자’로서 평등하다.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 평등은 하늘에서 한 단계 내려와 민주주의의 ‘자연적’ ‘법적’ 평등의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아직 땅에는 닿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의 경제적 토대는 땅에 있다. 평생 부르주아를 위해 짐말 노릇을 하는 무지한 일용직 노동자에게 의회선거를 통해 나라의 운명에 영향에 미치는 이상적인 권리란 하늘나라에 약속된 궁전보다 더 비현실적이다(92).


 

형식적 민주주의는 무력하고 쓸모없고 기만적일 뿐이다(56).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이는 소비에트체제를 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데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아마도 유일한 구절에서, 트로츠키는 의회주의와 소비에트를 비교하며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의회민주주의보다 우월한 것으로 설명한다.

 

의회주의정권은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에도 국가의 여론을 파악하는 데는 다소 불충분한 방법이었으며, 혁명의 폭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는 투쟁의 과정과 혁명적 의식의 발전을 따라잡을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하지만 소비에트정권은 노동하는 다수 국민과 더 가까이, 더 직접적으로, 더 정직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다수를 반영할 뿐 아니라 그 다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혁명적 독재의 길을 선택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농민의 표를 좇아 색깔을 바꾸는 정당들과 은밀히 경쟁하기보다는, 노동자 대중의 진정한 이익을 위해 국가를 통치하는 과업에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대중을 끌어들이는 쪽에 정책의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의회주의보다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98).


 

여기서 트로츠키는 소비에트정권이 의회주의정권보다 대중과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통계적으로 다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다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다수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다수를 역동적으로 만들어 내는 소비에트체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언명에서 우리는 소비에트체제에 대한 트로츠키의 상을 접할 수 있다.

 

보편적 노역을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중앙집중화된 분배기구를 활용하여, 이 나라의 모든 인구가 경제계획과 자치라는 일반적인 소비에트체제에 참여할 것이다. 소비에트는 지금은 통치기구이지만 차츰 순수한 경제조직으로 바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회주의사회의 현실 조직 위에 제헌의회라는 낡은 왕관을 씌우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제헌의회 이전에, 제헌의회 없이 이미 모두 구성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100).


 

여기서 트로츠키는 소비에트가 현재는 통치기구이지만 차츰 순수한 경제조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점,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제헌의회가 더 이상 불필요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사회주의사회에서 제헌의회가 불필요하게 되는 이유는 모든 인구가 참여하는 소비에트가 대중의 ‘경제적 삶’을 조직하는 자치기구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경제적 자치기구인 소비에트가 사회주의사회에서도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고 본다. 그것은 소비에트보다 상위의 기구인 (일반적인 통제권을 갖는) 공산당(168)과 (노동규율울 조직하는) 노동조합(172)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사회에서도 소비에트보다 상위의 기구인 공산당과 노동조합의 존재를 상정하는) 소비에트에 대한 트로츠키의 위와 같은 상은 「혁명의 한 가지 근본 문제」에서 제시된 레닌의 소비에트에 대한 상과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로”는 낡은 국가 기구 전체, 민주주의적인 모든 것을 방해하는 관료적 기구를 근본적으로 개조한다는 뜻이다. 이 기구를 없애고 그것을 새로운 인민의 기구, 즉 진정으로 민주적인 소비에트 기구, 조직되고 무장한 인민 다수 ―노동자, 병사, 농민― 로 대체한다는 뜻이다. 대표의 선출만이 아니라 국가 행정을 담당하고, 개혁을 비롯한 다양한 다른 변화를 이루어내는 일에서도 인민 다수에게 주도권과 독립성을 허용한다는 뜻이다(레닌 2008, 171)


 

권력을 소비에트로 옮김으로써 러시아의 행정과 경제적 통제를 노동자와 농민의 손으로 완전하게 이양한다는(레닌 2008, 178) 소비에트에 대한 레닌의 상과 비교해보면, 소비에트에 대한 트로츠키의 상은 사실상 후퇴한 것이다.[각주:5] 그래서 우리는 의회민주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트로츠키의 도달점이었던 사회주의사회의 소비에트 민주주의에서 과연 인민 다수의 주도권과 독립성이 얼마나 허용되는 것인지, 달리 말하면 인민 다수의 구성적 역능을 사유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보다 진정으로 한발 더 나아간 민주주의의 단초를 과연 트로츠키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테러리즘에 대하여

 

형식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트로츠키는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것에 호소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또 유지하고자 한다. 트로츠키가 호소하는 것은 혁명적 테러이다. 프롤레타리아 지배를 보장하려면 부르주아계급에게 프롤레타리아독재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가르쳐야만 하며(72),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지배를 실제로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무장 반혁명에 대한 억압과 위협 조치로서의 테러리즘을 거부하는 것은 그래서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지배와 혁명적 독재를 실제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같다(73).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위해서 테러리즘이 요구되는 것이다.

혁명이 온갖 수단을 써서 목표를 달성하는 혁명계급을 필요로 하며 또 혁명계급은 필요시 무장봉기를 동원할 수 있는 한에서(112), 트로츠키는 혁명계급의 테러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형태의 폭력, 모든 전쟁, 모든 봉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한다(113).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한 만한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트로츠키가 총파업과 무장폭동으로서의 적색 테러를 구분한 다음 총파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리하여 무장폭동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총파업은 프롤레타리아를 동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프롤레타리아의 적인 국가에 대항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파업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적들보다 프롤레타리아의 역량이 더 빨리 소진되는 탓에 노동자들이 조만간 공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총파업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은 프롤레타리아와 적의 무장세력의 충돌, 즉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혁명적 봉기를 준비할 때뿐이다. ... 총파업은 양측을 다 동원하며, 반혁명 저항세력의 힘을 가능해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다. 하지만 혁명계급이 권력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피의 대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려면 무장폭동을 거쳐 투쟁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75).


총파업만으로는 국가 권력을 장악할 수 없으며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장봉기, 테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만 테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도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호시탐탐 전복시키고자 하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국가테러가 필요하다.

 

혼돈의 첫 시기가 지난 뒤, 이전에 러시아를 지배하던 계급의 저항이 필사적으로 변해가고, 어마어마한 위험과 외국의 공격, 국내의 음모와 폭동 때문에 러시아 프롤레타리아가 국가 테러라는 엄중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11).


 

그래서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체제가 사실상 테러체제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투쟁의 잔인성은 국내외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몰아낸 계급의 적이 더 잔인하고 위험하게 저항할수록, 억압체제는 더욱더 테러 체제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108).


 

여기서 우리는 트로츠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가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공공연한 국가테러에 기반한 체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수립하고 또 유지하기 위해서 테러가 필요하다고 트로츠키가 말할 때, 트로츠키가 말하는 테러는 대항폭력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혁명 이전에는) 부르주아계급의 국가폭력에 맞서서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수립하고자 하는 폭력이자, (프롤레타리아혁명 이후에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전복시키고자 하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폭력이다. 중요한 것은 트로츠키가 말하는 대항폭력으로서의 테러가 사실상 부르주아국가의 국가폭력과 동질적인 폭력일 뿐이라는 점이다. 양자의 차이가 있다면 폭력의 주체가 부르주아주권에서 프롤레타리아전위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그렇다면 대항폭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적색 테러의 역사적 귀결은 무엇이었는가? 프롤레타리아의 적색 테러는 부르주아 국가주권이 행사하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예속시키는 또 다른 주권을 탄생시켰고 또 (트로츠키의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그 주권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켰다. 프롤레타리아의 대항폭력은 주권을 해체시키는 것이 아니다. 주권을 해체시키는 대신 프롤레타리아의 대항폭력은 또다른 주권을 탄생시키고 또 강화시킬 따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롤레타리아의 대항폭력이 어떤 발본적인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현실적인 항을 창조할 때에만 비로소 도래할 수 있을 잠재성의 코뮤니즘이 대항폭력을 통해서는 결코 현실화될 수 없다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며

 

지금까지 우리는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몇몇 논점들을 중심으로 트로츠키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러시아 소비에트체제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물론 『테러리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우리의 검토는 우리가 오늘날의 혁명을 위해서 트로츠키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혹은 읽어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수행된 것이었었다. (아니 사실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결국 확인한 것은 트로츠키의 사유와 오늘날의 혁명 사이의, 쉽게 좁히기 힘든 간극인 것 같다. 물론 그만큼 트로츠키에 대한 진정으로 창조적인 재독해의 과제가 (다음 발제자에게) 남아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L>

 

※ 참 고 문 헌 ※

 

레닌 (1988) 『국가와 혁명』, 김영철 옮김, 논장.

레닌 (2008) , 「혁명의 한 가지 근본 문제」, 정영목 옮김, 『지젝이 만난 레닌』, 교양인.

맑스 (1991)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최인호 옮김,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박종철출판사.

조정환 (2008) 「레닌의 제헌권력, 그 열림과 닫힘」,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지젝 (2009)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또는 격동기 1920년의 절망과 유토피아』,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 북.

트로츠키 (2003) 『연속혁명』, 정성진 옮김, 책갈피.

트로츠키 (2009)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카를 카우츠키에 보내는 답변』, 노승영 옮김, 프레시안 북.

  1. “... 하나의 전체로서 세계 경제는, 그리고 특히 유럽 경제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충분히 성숙해 있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어떠한 속도로 그리고 어떠한 단계를 거쳐서 사회주의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유럽과 세계 자본주의의 운명에 달려 있을 것이다”(트로츠키 2003, 180). [본문으로]
  2. “모든 혁명에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국가 권력의 문제다. 어느 계급이 권력을 쥐는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레닌 2008, 169). “혁명계급은 자신을 향한 적의 의지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권력의 문제, 즉 모든 혁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75). [본문으로]
  3. “... 회의․논쟁․의회와 달리, 혁명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보다는 온건하지만 어쨌든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한다”(108). [본문으로]
  4. 트로츠키는 정치적 용어로서의 민주주의가 첫째, 보통선거권을 비롯하여 공식적인 인민정부의 특징을 기초로 하는 국가체제이자 둘째, 정치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민대중 자체를 뜻한다고 말하면서, 첫 번째 뜻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뜻에서도 민주주의의 의미는 계급 구분을 뛰어넘는다고 말한다(83). 따라서 트로츠키가 민주주의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단적인 이유는 민주주의를 통해서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에게 권력을 집중시킬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우리는 권력을 프롤레타리아에게 집중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거부[한다]”(82). [본문으로]
  5. 물론 우리는 아마도 소비에트에 대한 레닌의 위와 같은 상이 레닌 자신에게서도 한결같이 유지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조정환 2008 참조). [본문으로]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1/06/20 11:29

*이 글은 연구공간L에서 진행하는 『인지자본주의』(조정환, 갈무리, 2011) 세미나의 발제문이다. 원래는 논평문을 작성해야 되었지만 책을 읽고 든 생각을 정리한 감상문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ㅎㅎㅎ ^ㅁ^;;

연구공간L『인지자본주의』세미나

인지적인 것, 신체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은 정동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이다―

 

『인지자본주의』의 13장 <21세기 혁명과 인지적인 것>의 마지막 절은 ‘인지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이다. 21세기 혁명과 인지의 관계를 논구하는 (최종적 결론인 종장 이전의 마지막) 장에서 왜 ‘인지적인 것과 신체적인 것’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인지가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는 것(479)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할 때에만 인지가 정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양태의 하나로서의 인지적인 것이 존재의 양태의 다른 하나인 신체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는 『인지자본주의』의 언명은(479), 인지가 이미 항상 신체와의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정치적이기 위해서 인지는 필연적으로 신체와 연관되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하여 왜 인지와 신체의 관계가 문제시되는 것일까?

물론 이 물음은 정치적인 것의 의미가 먼저 규명되지 않고서는 답해질 수 없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은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검토할 것이다.) 따라서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에 대한 성찰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지에 대한 논구로부터 인지와 연관된 신체가 어떻게 변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구로, 그 논의가 심화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지와 연관된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이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한 합리적 핵심이다.

『인지자본주의』에서 인지와 연관된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은 정동으로 규정된다. “이 책에서 나[조정환]는 ‘정동’을, 지각된 것을 변용하여 행동으로 확장할 힘[...]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557). 인지적인 것과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으로서의 정치적인 것을 연결시키는 붉은 실이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으로서의 정동이라면, 이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정치적인 것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지-정동-신체의 관계가, 다시 말하면, 인지와 신체가 적어도 동일한 것은 아닌 한에서 어떻게 정동이 인지와 신체를 절합시키는지가 먼저 규명되어야만 한다.

그러면 인지에 대해서 확인하기로 하자. 인지의 정의는 『인지자본주의』2장에서 제시되고 있다. 인지는 지, 정, 의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심적 활동으로서, 지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의지하는 등의 활동에 포함되는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이다(43). 정신적 과정을 총칭하는 용어로서의 인지는 따라서 정신적인 것, 영혼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에 국한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것이 물질적인 것과 섞여 있거나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거나 물질적인 것을 수반하여 움직인다는 점이다(44).

정리하면, 인지는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인지의 운동, 즉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 인지노동은 물질적인 것과 다시금 연관되는 것이다. 인지노동과 물질적인 것의 연관은 인지가 물질적인 것으로서의 신체 안에 체화된다는 점에 근거한다. 인지적인 것의 ‘체화’(46)가 비물질적인 인지노동이 물질적인 것의 무게를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인지가 체화된다고 하더라도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노동은 당연히 직접적 육체노동이 아니다. 직접적 육체노동이 소비재나 생산도구를 생산함으로써 삶과 간접적이고 매개적으로만 연관됐던 물질노동이라면(325), 인지노동은 삶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비물질노동이며, 따라서 설령 인지노동과 물질적인 것의 연관이 인지적인 것이 체화된다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인지노동은 직접적 육체노동이 물질성을 갖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물질적인 것의 무게를 갖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다시 검토할 것이지만, 인지의 체화로부터 인지노동이 물질적인 것과 연관된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 안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도출하기 위한 것,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사회적 삶의 인지적 생산과 재생산 과정 안에서 도출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어떻게 생산적인 것이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가 먼저 규명되어야만 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인지적 생산은 생산의 정보화에 근거한다. “그것[정보화]은 자본의 인지적 재구성을 개시하는 것이었다”(56). 인지자본주의에서는 공장 안에 한정된 단순상품생산으로부터 사회적 삶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것으로 경제적 생산이 확장되는데(365),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삶을 직접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인지자본주의의 경제적 생산이 단순히 경제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 역시 갖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생산이 공장의 울타리를 넘어서 사회 전체로 확장될 때 생산자들은 늘 새로워지는 생산의 주체들이자 동시에 부단히 쇄신되는 욕망의 주체들로 호명된다(365). 인지자본주의에서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삶에 대한 위로부터의 명령(365)으로서의 삶권력은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삶을 직접적으로 자본관계 안으로 포섭하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의 포섭장치이다. (그래서 그것은 공장 안의 훈육에 기초한, 정보화 이전 시기의 자본의 포섭장치와는 상이한 것이다.) 하지만 삶권력은 사회적 삶을 자본관계를 넘어서 자율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하고자 하는 생산적 주체성의 부단한 적대에 직면한다. 그래서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경제적 생산은 한편에서는 사회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을 자본관계로 포섭하는 삶권력적 생산의 과정이자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삶권력에 저항하는 생산적 주체성의 삶정치적 생산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지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생산이 단순히 경제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 역시 갖는 이유이다. 인지자본주의에서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이분법은 소멸하며 생산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점점 더 동어반복적인 것으로 된다(350). 생산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점점 더 동어반복적인 것으로 되어간다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이제 더 이상 주권의 영역에서 찾아져서는 안 되며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364).

정치적인 것이 생산적 주체성의 삶의 영역에 자리한다는 것은 생산적 주체성의 물질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이, 즉 (다른 특이한 생산적 주체성들과의 생산적 관계의 공통적 구성을 통한) 생산적 주체성의 특이하면서도 공통적인 사회적 신체의 생산과 재생산의 과정이 정치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정치적인 것은 생산적 주체성의 새로운 사회적 신체의 구성,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신체의 자기변형이다. 그렇다면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러한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신체의 자기변형은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인지자본주의 시대에서 생산적 주체성의 사회적 신체의 자기변형의 가능성은 삶권력과 삶정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자본의 포섭장치인 삶권력은 인지적 생산에 대한 명령으로서 인지적 지배의 성격을 갖지만, 삶권력이 삶정치적 생산의 주체성의 부단한 적대에 직면하듯이, 인지적 지배는 인지적 저항에 직면한다(418). 그렇다면 인지적 저항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가?

앞서 확인했듯이 (설령 인지노동이 소비재나 생산도구 등의 단순한 상품을 생산하는 물질적인 직접적 육체노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지는 분명 체화되는데, 『인지자본주의』에서 인지의 체화가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은 명시적 언명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인지적 지배는 결코 전체주의적일 수 없다. 인지가 신체적이고 정동적인 한에서, 신체의 본래적 다양성이 그 지배에 한계를 부여하고 다른 인지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이다”(420). 결국 인지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른 인지의 가능성 및 이를 통한 신체의 자기변형, 즉 다른 인지의 체화가 인지적 저항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인지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른 인지의 체화는 정동에 기초한다. 『인지자본주의』에서는 정동에 기초한 (인지적 지배에 저항하는) 다른 인지의 체화를 인지적 병리현상들로부터의 탈주를 중심으로 규명한다. “인지적 지배의 결과로 발생하는 감정들, 요컨대 공황, 조울, 불안과 같은 음(-)의 일반감정들은 단지 부정적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양(+)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그것들이, 인지적 지배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면서도 동시에 인지적 지배로부터의 탈주라는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444-5). 공황, 조울, 불안과 같은 음의 일반감정들이 단순히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양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 즉 그것들이 인지적 지배로부터의 탈주를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것은, 인지적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으로서의 정동에 인지적 저항이 근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인지자본주의』에서 말해지듯이, 음의 일반감정들이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도달점일 수는 없으며, 문제제기일 수는 있어도 해결책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445). 중요한 것은 신체의 자기변형의 힘으로서의 정동이 수동적인 변용능력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423). 정동은 수동적인 변용능력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기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신체의 잠재력이다. 그렇다면 정동은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이러한 능동적 기쁨을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가?

지금으로서는 위의 물음에 대해서 단지 잠정적인 결론만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동이 능동적 기쁨을 생산하는 것은 아마도 신체가 (자본주의적인 상품생산관계에 예속된 신체가 아닌) 사회적 관계를 혁신하는 새로운 신체로 자기변형될 때에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의 자기변형은 아마도 욕망에, 물론 『인지자본주의』에서 말해졌듯이 개인주의적인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욕망에, 코뮤니즘의 원리로서의 욕망(518)에 근거할 것이다. <L>

 

Posted by Kaomo
Fragmentaj Pensoj2011/01/03 15:48

*이 글은 지난주 토요일 연구공간 L에서 진행된 <맑스주의> 세미나의 발표문을 부분 수정한 것이다. 내가 맡은 부분은 『반-뒤링』의 제1편 <철학>이었는데, 내가 『반-뒤링』의 <철학> 부분에서 엥겔스의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에 대한 비판과 극복에만 집중한 나머지, 아니 사실은 매몰돼 있던 나머지, 사태에 적실한 개념 구분을 통해서, 사태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있는 개념 구분을 통해서 작업을 진행했어야 됐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사태에 적실한 개념 구분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너무도 분명한 것은 전문화된 산업생산에서 대량산업생산으로, 대량산업생산에서 사회적 생산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변형되었고, 그리하여 물질적 생산을 둘러싼 집단적 배치가 변형된 것이 사실이더라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로서의 자본-임노동 관계 자체가 변화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임노동 관계는 전문화된 산업생산에서도, 대량산업생산에서도, 사회적 생산에서도, 그리고 오늘날 삶정치적 생산에서도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분명 오늘날에도 자본-임노동 관계는 종식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생산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는 가령 대량산업생산 시기에서의 그것과 분명히 구분된다. 이제 생산력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생산적 주체성의 협력적 네트워크이지 더 이상 어떤 물화된 객체로서의 고정자본인 기계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는 설사 자본-임노동 관계가 대량산업생산 시기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긴 하지만,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는 달라졌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집단적 배치와 자본-임노동 관계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생산관계를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생산력이 그 안에서 운동하며 또 조직되는 ‘관계’로 이해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적어도 다음의 두 차원, 즉 1) 자본-임노동 관계의 차원, 2)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의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우리가 오늘날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분법이 폐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 자본-임노동 관계가 종식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며, 또 자본-임노동 관계가 생산력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확인하였듯이 오늘날 생산력의 중심에 있는 것은 (가령 대량생산시기에서 그것이 고정자본으로서의 기계였던 것과는 달리) 생산적 주체성의 협력적 네트워크, 즉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 자체이다. 그래서 오늘날 생산력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결코 더 이상 생산적 주체성과 분리된 어떤 물화된 객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 이해된 생산관계가 그 자체 생산력의 중심에 놓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분명 오늘날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단순히 동일한 것일 수는 없지만) 이 생산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다름 아닌 생산력 자체의 변형이라고, 생산력의 발전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생산력 발전의 문제를 진정으로 ‘주체적’인 시각에서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사실 이러한 주장은 (토론 시간에서도 지적된 것이었지만) 분명 다시금 다음과 같은 문제를, 즉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생산관계와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서의 생산관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검토해야 될 과제로서 제기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아마도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 ‘관계’를 검토해야 될 것 같다. (필요노동 시간과 잉여노동 시간 나아가 여가 시간이 명확히 구분됐던) 맑스가 살았던 시기와 달리 오늘날 만약 정말로 생산시간과 삶시간이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면, 사실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서의 생산관계는 다름 아닌 삶시간을 구성하는 생산관계로서의 ‘삶관계’ 자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삶관계와 구분되는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생산관계는 자본이 삶시간을 수탈하고, 그리하여 ‘삶관계’를 포섭하는 관계일 것이다. 따라서 자본-임노동 관계로서의 생산관계와 생산적 주체성의 집단적 배치로서의 생산관계, 즉 삶관계 사이의 ‘관계’는 우선적으로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검토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검토로부터 다시금 자본-임노동 관계로의 포섭에 대항하는 삶관계 안에서의 실천, 즉 저항의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저항의 문제를 (이 글에서 논구했듯이 생산력 발전을 신비화하는 변증법적 역사유물론과 달리) 생산력 발전을 탈신비화하는 비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인 저항의 우선성 테제에 기초하여, 오늘날 잠재성의 코뮤니즘을 현실화하는 가능성(가능성-실재성 쌍에서의 가능성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 네그리가 <제국>에서 말하는 가능성)과 관련하여 검토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단순히 개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위의 문제틀을 중심으로 새로이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 글을 토론 시간에서 제기된 여러 지적들 중 위의 핵심적인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문제들을 중심으로 부분 수정하는 것 이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이 글에는 위의 문제들을 반영하지 못한 오류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내게 이 글은 내가 단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문제를 보다 분명하게 정식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족한 글을 함께 읽고 논의한 동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연구공간 L 맑스주의 세미나(2011.1.1)

엥겔스와 변증법의 문제


1.

1878년 <서문>에서 엥겔스 본인이 밝히고 있듯이, 「반-뒤링」은 자칭 사회주의의 대가이자 개혁자로 등장한 오이겐 뒤링의 새로운 사회주의 이론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서 작성된 저술이다. 뒤링의 이론을 상세히 비판하는 「반-뒤링」은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본고는 이중 철학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을 검토하고자 한다. 물론 이 검토는 단순히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의 비판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 즉 가령 이 비판은 적절하고 저 비판은 과도하며 그 비판은 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과제는 엥겔스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 비판의 입지점, 즉 엥겔스 자신의 논의의 기반이 되는 ‘철학’을 다시금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물론 뒤링의 이론에 대한 엥겔스의 모든 비판에서 우리가 엥겔스가 발판으로 삼고 있는 그 자신의 철학적 입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령 논적이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하기 위해서 비판자가 반드시 그 자신의 어떤 고유한 철학적 입지점을 견지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제정신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물론 당연히 「반-뒤링」에서 엥겔스 역시 뒤링은 단지 미쳤을 뿐이라고 조소하지 않는다. 「반-뒤링」의 철학 부분 전체에 걸쳐서 엥겔스는 뒤링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를 상세히 논증하는데, 이러한 논증을 통해서 엥겔스가 드러낸 사실은 무엇보다도 뒤링이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변증법적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로부터 우리는 역으로 다음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엥겔스 자신의 논의의 기반이 되는 철학적 입장은, 엥겔스 스스로 긍정하듯이, 다름 아닌 제대로 된 변증법이라고.

 그런데 과연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변증법적 이해란 무엇인가. 아니 도대체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엥겔스가 긍정하는 변증법이 제대로 되지 못한, 헤겔식의 관념론적 변증법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1) 헤겔식의 관념론적 변증법과 구분되는 엥겔스의 변증법은 물론 유물론적 변증법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과연 유물론적 변증법은 무엇인가. 물론 유물론적 변증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념론적 변증법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유물론적 변증법은, 엥겔스 스스로 주장하듯이, 관념론적 변증법의 신비적 형태를 벗겨 냄으로써 비로소 완연히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2) 신비적 형태로 전개된 관념론적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에 다름 아닌데, 헤겔의 변증법은 우선적으로는 사유의 최고 형식에 다름 아니다.3) 물론 사유의 최고 형식으로서의 변증법은 “우리의 머리 속에서, 일단 인식되기 전까지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법칙이며, 헤겔에 의해서는 처음으로 명료하게 정식화되었을 뿐이다”(159). 그리고 우리는 엥겔스를 통해서 헤겔에 의해 처음으로 명료하게 정식화된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이 바로 부정의 부정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이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반-뒤링」을 저술하는 엥겔스의 과제는 이를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 엥겔스는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이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부정의 부정을 그의 유물론적 변증법의 법칙으로 삼아서 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본고의 과제 역시 사유의 최고 형식이 과연 부정의 부정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본고의 과제는 부정의 부정을 유물론적 변증법의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엥겔스의 세계 이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 우리는 (사유의 최고 형식이 과연 부정의 부정인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부정의 부정에 기초한 엥겔스의 세계 이해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4) 

 엥겔스는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운동 법칙이 사유뿐만 아니라 역사와 자연에도 공히 적용된다고 본다.5)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운동 법칙이 역사와 자연에 적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물론 엥겔스가 말하듯이 변증법적 법칙을 구성하여 자연 속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 법칙을 자연 속에서 찾아내어 자연으로부터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14). 그런데 자연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변증법적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자연과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운동한다는 것, 그리하여 부정의 부정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운동한다는 것,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부정의 부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 역사, 사유의 극히 일반적인, 바로 그 때문에 극히 광범위한 작용 범위를 가지는 중요한 발전 법칙이다. 그것은 ... 동물계와 식물계, 지질학, 수학, 역사, 철학에서 통용력을 지니는 법칙이며, 뒤링 씨조차 그토록 앞길을 막고 뒷덜미를 잡아 끌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자기의 방식대로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법칙이다”(157).

 그렇다면 자연, 역사, 사유가 부정의 부정으로 발전한다는 엥겔스의 변증법은 어떤 문제를 갖는가. 이 문제를 엥겔스의 자연, 역사, 사유의 변증법적 발전 도식 중 특히 변증법적 역사 발전 도식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기로 하자.

 

2. 

엥겔스의 변증법적 역사 발전 도식의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먼저 뒤링의 맑스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한 엥겔스의 재비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뒤링은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의 개인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의 관계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는데, 뒤링의 맑스 비판의 요지는 맑스가 (기존의 개인적 소유의) 부정의 부정을 통한 (새로운) 개인적 소유는 곧 사회적 소유라고 말하는 것이 말장난일 뿐이라는 것이다(145). 그리고 이에 대해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몰수자에 대한 몰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태는 토지에 대한 사회적 소유와 노동 자체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기초로 하는 개인적 소유의 복원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사회적 소유에 들어가는 것은 토지와 그 밖의 생산수단이고 개인적 소유에 들어가는 것은 생산물, 따라서 소비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147; 강조는 필자). 결국 엥겔스 재비판의 요지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개인적 소유와 사회적 소유가 엄격하게 분리된다는 것, 따라서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는 맑스의 그것이 아닌 뒤링의 창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147).

 물론 엥겔스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 맑스의 『자본론』을 직접 인용한다. 맑스는 “이 연합체[엥겔스의 용어로는 ‘사회주의적으로 조직된 연합체’]의 총생산물은 사회적 생산물이다. 이 생산물의 한 부분은 다시 생산수단으로 쓰인다. 이 부분은 계속 사회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 부분은 연합체의 성원들이 생활수단으로서 소비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그들 사이에 분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6) 자구에 주목할 때 분명 우리는 엥겔스의 해석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엥겔스가 자구에 매몰되어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관한 맑스의 핵심 사상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만 한다.

 확인하였듯이 엥겔스는 자본주의 사회 이후의 사회, 즉 코뮤니즘 사회에서도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가 여전히 명확히 구분된다는 것으로 뒤링의 비판에 답한다. 물론 사실 코뮤니즘 사회에서도 사회적 소유와 구분되는 개인적 소유가 있을지 모른다. 아니 아마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령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모든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가 살아 있는 인간 개개인들의 존재이며 그리하여 인간 개개인들의 신체적 조직(및 그들이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7) 코뮤니즘 사회 역시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인 한에서 당연히 자신의 신체적 조직을 재생산하기 위하여 먹고, 입고, 마실 것을 개개인들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코뮤니즘 사회에서 사회적 생산물의 사회적 소유 부분과 개인적 소유 부분 사이의 구분의 문제, 즉 분배의 문제는, 필자가 보기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관한 맑스 사유의 핵심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코뮤니즘 사회에 관한 맑스 사유의 핵심은 분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코뮤니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된 생산력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지만, 코뮤니즘 사회의 생산관계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을 간과하고 분배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모든 작업은 필연적인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엥겔스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가 변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자가 보기에는 다음의 사실이 분명한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해체가 코뮤니즘 사회의 핵심이라면, 사실 코뮤니즘 사회에서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이를 통해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라는 비판을 재비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답변일 뿐이라는 것.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해체는 당연히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폐지를 함축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와 (굳이 표현한다면)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적’이지만,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가 ‘개인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 그러하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를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개인적’ 소유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령 단지 먹고, 입고, 마시는 물질적 재화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의 물질적 재생산에 필수불가결하게 된 지식, 정보 등의 비물질적 재화들을 생각해보라. 이러한 비물질적 재화들이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역으로 단순히 소유의 측면에서도 이와 같은 비물질적 재화들이 (나아가 물질적 재화들 역시)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유되지 않는 사회, 즉 지적재산권, 디지털 인클로저가 폐지된 사회가 아마도 코뮤니즘 사회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의 분배 문제를 적어도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의 명확한 구분을 통해서 사유하는 것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런데 엥겔스는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소유’에 대한 뒤링의 맑스 비판에 대해서 왜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으로 응답했을까? 사실 엥겔스가 말하는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개인적 소유는 사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형식을 전제한 채 그것을 단순히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로 명확히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얼핏 생각해봐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의 변혁을 고려할 때,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형식을 전제한 채 그것을 단순히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로) 명확히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 코뮤니즘적 사회적 소유와 코뮤니즘적 개인적 소유가 명확한 구분된다는 주장은 분명히 문제적으로 보인다.

 필자가 보기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사회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를 구분하는 것으로 뒤링을 재비판하는 엥겔스는 사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해 물음을 던져야 하는 곳에서 물음을 그치고 있다. 엥겔스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에 기초하여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몰수자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몰수된다는 점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물음을 비로소 던져야 되는 지점에서 엥겔스는 왜 물음을 그친 것일까? 이것은 사실 그의 변증법적 역사 발전 도식 자체에서 연원하는 문제이지는 않은가?


3. 

우리가 앞서 확인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엥겔스의 언급, 즉 “몰수자에 대한 몰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상태”는, 「반-뒤링」에서 엥겔스 본인이 인용하듯이 『자본론』에서 맑스가 직접 했던 말이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149; 『맑스․엥겔스 저작집』제23권, 791쪽 재인용). 물론 수탈자가 수탈당한다는 맑스의 표현은 한 인격에 의한 다른 인격의 수탈,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의 수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인용된 어구 바로 앞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은, 이 자본과 함께 그리고 이 자본 밑에서 개화해 온 생산 방식의 족쇄로 된다. 생산 수단의 집적과 노동의 사회화는, 그것들의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종식은 자본가의 개인적 재산의 몰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자체가 변형되는 것의 필연적 귀결을 의미할 뿐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설령 우리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자체가 어떻게 변형될 것인지, 코뮤니즘적 생산 방식 자체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더라도) 다시금 코뮤니즘이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분명히 확인하게 된다. 코뮤니즘의 탄생은 자본주의가 이룩한 역사적 성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다면 코뮤니즘은 자본주의의 부정, 또 자본주의가 중세 봉건제의 부정이기에, 결국 부정의 부정으로 도래하는 것인가. 그래서 코뮤니즘은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 도식에 따라서, 즉 부정의 부정의 도식에 따라서 도래하는 것인가.

 엥겔스는 그렇다고 말한다. 나아가 주지하다시피 엥겔스는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유 역시 마찬가지로 변증법적인 도식에 따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엥겔스는 보리 낟알에서도, 곤충에서도, 지질학에서도, 수학에서도, 철학사에서도, 루쏘의 평등 이론에서도 부정의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 도식을 확인한다(151-6). 그런데 그렇다면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발전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를 엥겔스가 변증법적 발전의 사례로 제시한 보리 낟알의 성장을 통해서 검토해보자.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리 낟알 하나가 자신에게 필요한 정상적 조건을 얻게 되면, 즉 적합한 땅에 떨어지게 되면, 열과 습기의 영향을 받아서 그 보리 낟알에는 특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바, 요컨대 싹이 튼다. 낟알 자체는 사라지고 부정되며, 그 대신에 낟알에서 자라난 식물, 즉 낟알의 부정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식물의 정상적인 생애는 어떠한가? 그것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마지막에 가서 다시 보리 낟알들을 생산해 내고, 이 보리 낟알들이 여물자마자 줄기는 사멸하는바, 즉 자기 차례를 맞아 부정된다. 이러한 부정의 부정의 결과로서 우리는 다시 원래의 보리 낟알을 얻게 된다. 그것도 그저 한 알이 아니라 열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보리 낟알을 얻게 된다(151-2).


보리 낟알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엥겔스가 규정한 변증법적 발전 도식으로서의 부정의 부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상을 갖게 된다. 보리 낟알이 정상적 조건에서 싹이 틈으로써 보리 낟알은 부정된다. 보리 낟알은 부정되지만 낟알에서 자라난 식물, 즉 낟알의 부정이 나타난다. 이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라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다시 보리 낟알을 생산해낸 다음 사멸한다. 즉 이 식물이 다시 부정되고 보리 낟알이 생긴다. 물론 그저 한 알이 아니라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낟알이 생긴다.

 이 사례를 보면 마치 보리 낟알의 변증법적 발전은 단지 양적 차이만을 가져오는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엥겔스가 보기에, 맑스가 『자본론』에서 전개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사상 경로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서술에서도 맑스가 사용한 것과 동일한 일련의 변증법적 표현들을 확인할 수 있는, 루쏘의 평등 이론을 살펴보자(155-7). 루쏘의 평등 이론은, 거두절미하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하였지만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불평등하게 되었고, 문명 상태에 들어선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사회 계약을 통해서 군주에게 자신을 위탁하게 된다는 것, 그리하여 군주 앞에서 만인의 평등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평등과 문명 상태에서 사회 계약을 맺은 인간의 평등이 질적으로 구분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8)

 (물론 엥겔스는 부정의 부정을 통한 변증법적 발전의 도식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개별적 과정의 특수성이 아니라 자연, 역사, 사유의 모든 발전 과정의 하나의 운동 법칙 아래로의 총괄이라고 말하지만9) 그럼에도) 엥겔스는 개별적 과정의 특수성에 대해서도 말하는데, 엥겔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개별적 과정의 특수성은 (물론 개별 사물들에서도 변증법적 발전 도식은 어김없이 적용되지만) 각 사물의 종류마다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케 하는 독특한 부정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보리 낟알을 빻을 경우 보리 낟알은 물론 부정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위에서 확인했던 방식처럼, 지양되지는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보리 낟알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지양을 가능하게 하는 특수한 부정이 있는 것이다10).

 따라서 엥겔스에 따르면,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낟알의 부정과 (루쏘의 경우에)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평등의 부정 그리고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자본주의의 부정은, (설사 낟알, 평등, 자본주의의 지양을 가능하게 만드는 각각의 특수한 부정이 서로 상이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양’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정이라는 점, 즉 ‘극복되는 동시에 보존되[는]’(155)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정이라는 점, 다름 아닌 보존하는 부정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런데 한 알의 낟알에 대한 부정의 부정이, 설사 그것이 열 배, 스무 배, 서른 배의 낟알일지언정 여전히 낟알이고, 자연 상태에서의 평등에 대한 부정의 부정이, 설사 그것이 질적으로 구분되는 평등일지언정, 여전히 평등이 아닌 그 무엇 ―가령 평등이 아닌 자율― 이 아니라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부정이, 설사 자본주의 사회의 몰수자가 몰수된다한들,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그 무엇일 수 있겠는가?


4. 

필자가 보기에는, 엥겔스가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생산과 분배 자체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 않는 것,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 이후 사회의 생산과 분배를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분배에 기초하여 투사하는 것은, 그의 변증법적 발전 도식에 따른 역사 이해의 필연적 귀결인 것 같다.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은 현재를 필연적으로 죽은 미래에 붙들어 매기 때문이다.

 보리 낟알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자연에서 확인되는 변증법적 발전의 사례로서 제시된 보리 낟알의 사례, 즉, 보리 낟알이 부정되어 싹이 트고, 싹이 튼 다음 다시 열매를 맺고서 더 많은 낟알들을 남기면서 다시 부정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낟알의 부정과 그 부정의 부정은 단지 낟알이 이미 갖고 있던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일 뿐이다. 물론 그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낟알이 빻이면 분명 그것이 지양되는 가능성은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맥락에서 낟알의 지양의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중요한 사항은 미래를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투사하는 것은 그것을 이미 죽은 미래의 가능성에 기초하여 투사하는 것, 그래서 단지 그 가능성을 재현하는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 가능성은 그것이 다만 지금 여기에서 실재하지 않다는 점에서만 실재적인 것과 구분되는 가능적인 것이다. 낟알의 부정의 부정은 낟알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이지만, 그것의 가능성 안에는 미래에 대한 표상이 이미 존재한다. 아니 그것 이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부정의 부정의 가능성을 통해서는 그 어떠한 창조도 생성도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코뮤니즘이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태어난다고 했을 때에도 마치 낟알처럼 코뮤니즘 또한 그 어떤 창조와 생성도 가능하지 않은 부정의 부정의 가능성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로부터의 코뮤니즘의 탄생은 낟알의 부정의 부정과 같은 가능적인 것의 실현이 결코 아니다. 코뮤니즘의 탄생은 가능적인 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재성으로서의 코뮤니즘과 가능성으로의 낟알의 차이는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 맑스는 낟알이 그것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과 코뮤니즘이 현실화되는 데에는 발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필자가 보기에는 우리가, 엥겔스와 마찬가지로, 후자를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전자를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코뮤니즘은 그것에 대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표상을 단지 재현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울러 자본주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코뮤니즘은 또한 자본주의를 단순히 지양함으로써, 즉 보존하는 부정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코뮤니즘은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우리는 잠재성과 잠재성의 현실화에 대한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생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베르그손을 해석하면서) 들뢰즈는 가능성-실재성의 쌍과 잠재성-현실성의 쌍을 구분한다. 가능적인 것은 분명 실재적이지 않다. 가령 낟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것이 실제로 열매를 맺지 않는 한 실재적이지 않다. 낟알은 그것이 실제로 열매를 맺을 때 그것의 가능성을 실현한다. 반대로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실재적이다. 물론 가능적인 것이 실현되는 것과 달리 잠재적인 것은 현실화된다. 하지만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가능적인 것이 실현되는 것과는 발본적으로 구분된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실재를 가능적인 것의 표상을 통해서 그 표상과 동일한 것 혹은 유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실재적인 것]은 단지 ... 실재성을 ... 갖고 있는데, 이는 ... 개념의 관점에서 가능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 ... 으로 번역될 수 있다”.11)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가능성-실재성의 쌍에 일종의 선형성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능성-실재성의 쌍에서 실재는 가능적인 것 속에 이미 주어져 있는 것, 즉 가능적인 것의 ‘사이비-현실성’ 속에 앞서 주어져 있는 것이다(들뢰즈, 136).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금 (가능성-실재성의 쌍에는) 실재가 사이비-현실성 속에 앞서 주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적인 것의 실현에서는 그 어떤 창조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가능적인 것의 실현의 과정은 생성이 아니며 창조가 아니다.

 하지만 잠재성-현실성의 쌍은 다르다. 우선 가능적인 것이 실재하지 않는 것과 달리,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은 모두 실재한다. 잠재적인 것은 실재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아니며, (그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려면 현실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잠재적인 것도 현실적인 것도 실재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현실적 항들을, 즉 새로운 현실성을 비로소 창조해야만 한다. 왜 그러한가? “이유는 간단하다. 실재적인 것은 그것이 실현하는 가능적인 것의 상 안에 그리고 가능적인 것의 유사성 안에 존재하는 반면, 현실적인 것은 그것이 구체화하는 잠재적인 것과 유사하지 않[기 때문이다]”(들뢰즈, 136; 번역 일부 수정. 원문은 Deleuze, 97). 이로부터 우리는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와 가능적인 것의 실현의 발본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 과정은 그 자체 새로운 현실성을 창조하는 것, 생성하는 것이다.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에는 가능적인 것의 실현과 달리 어떤 앞서 주어져 있는 사이비-현실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이 모두 실재적인 것이라면, (잠재성-현실성의 쌍에서)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 과정을 통해서 창조되고 생성되는 새로운 현실성은, 곧 (가능성-실재성의 쌍에서와는 달리) 새로운 실재의 구성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가 그 자체 창조이자 생성이며 그리하여 새로운 실재의 구성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만큼이나 실재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하여 “잠재적인 것이 지닌 실재성은 성취해야 할 어떤 과제의 실재성이고, 이는 마치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의 실재성과 같다”는 점이다.12) 그렇다면 이로부터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시된 사실은 다음이 아닌가? 코뮤니즘이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난다는 명제는 가능적인 것의 실현을 모델로 삼는 부정의 부정의 변증법적 발전 도식을 통해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실재성을 갖는 잠재적 코뮤니즘이 자본주의 사회 안에 그 자체 실재하지만, 자본주의가 현실적인 것처럼 현실적이지는 않으며, 그리하여 우리에게 자본주의 사회 안에 실재하는 코뮤니즘의 잠재성을 성취해야 되는 과제, 코뮤니즘의 잠재성을 현실화해야 하는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또 이로부터 우리는 다시금 루쏘의 평등 이론에 대한 사고 실험과 맑스의 역사적 경향으로서의 코뮤니즘에 대한 사유의 차이에 대해서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앞서 확인하였듯이 루쏘의 사고 실험은 ‘평등’이라는 개념의 주어진 표상, 즉 동등함이라는 표상에 따라 진행된다. 문명 상태에서 (군주 앞에서) 인간이 평등을 회복하기 이전에, 자연 상태의 인간의 (발전할 수 있는 능력에 기인한) 불평등이 선행해야만 한다.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의 평등이 불평등에 의해 부정된 다음, 다시금 불평등이 부정되고 평등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평등한 자연 상태를 가정하는 루쏘 평등 이론의 구도 속에는 이미 문명 상태에서의 평등의 회복(?)이 선형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태내에서 태어나는 코뮤니즘에 대한 맑스의 사유가, 우리가 그 코뮤니즘을 현실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실재하는 잠재성의 코뮤니즘으로 이해할 경우, 어떤 선형성되어 있는 사이비 현실성을 통해서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의 몰수자를 몰수하는 것, 또는 예컨대 단순히 이제 소수자가 수탈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자가 수탈한다는 것과 같은 표상을 통해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평등 이론에 대한 루쏘의 사유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맑스의 사유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양자는 결코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발전 도식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심지어 동일하다고!) 이해될 수 없으며,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우리가 변증법적인 역사 이해를 넘어서야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비변증법적인 역사 이해, 비변증법적이면서도 유물론적인 역사이해, 비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은 무엇인가? 또 과연 그것은 가능한 것인가?


5. 

먼저 논점을 확인하도록 하자. 엥겔스가 보기에 유물론의 과제는 역사를 인류의 발전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엥겔스의 과제 역시 이 발전 과정의 운동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된다(27). 물론 이 발전 과정의 운동 법칙은 당연히 변증법이다. (역사뿐만이 아니라 자연까지도 포함하는) “현대 유물론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다]”(28). 그렇다면 결국 논점은 다음과 같다. 엥겔스는 역사유물론이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라고 보지만, 역사유물론이 반드시 변증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아니 사실 역사유물론은 변증법적이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 그렇다면 비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을 확인하기 이전에 먼저 통상적으로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문헌을 검토하도록 하자. 그 문헌은 물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 혹은 이 생산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들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 사회적 생산력들과 생산관계들 사이의 현존하는 충돌들 ... 한 사회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 부르주아 사회의 태내에서 발전하는 생산력들은 동시에 이러한 적대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들을 창출한다. 이 사회구성체와 더불어 인간 사회의 전사는 끝을 맺는다.13) 


여기서 맑스는 생산력이 특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생산력과 (생산력이 그 안에서 운동해 온) 생산관계가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기존의 생산관계는 발전된 생산력의 족쇄가 된다. 생산관계와 생산력이 충돌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사회구성체는 그것의 생산력이 모두 발전하기 전에는 몰락하지 않으며 새로운 생산관계는 그것의 물질적 조건들이 기존 사회구성체 태내에서 발생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생산관계를 대체하지 못한다.

 물론 맑스는 생산력의 발달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기존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그리고 나아가 새로운 생산관계로의 대체를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라고 명명하지 않았다. 물론 맑스가 이를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라고 명명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이것은 변증법적 과정이 아니라고 부정한 것도 아니기는 하다. 여하튼 엥겔스는 이것을 변증법적 발전의 과정이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엥겔스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증명한 것이 다름 아닌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역사가 실제로 발전했고 또 앞으로도 그와 같이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한다.14) 요컨대 엥겔스가 보기에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은 하나의 사실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변증법적인 역사 발전 도식, 즉 부정의 부정에 대해서 맑스 본인은 과연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과 전유 방식,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적인 소유, 즉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의 첫 번째 부정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정은 자연적 과정의 필연성을 갖고서 그 자신에 의해 생산된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150; 『맑스․엥겔스 저작집』제23권, 791쪽 재인용). 맑스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가 자기 노동에 기초한 사적 노동의 부정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정이 자연적 과정의 필연성을 갖고서 다름 아닌 자본주의적 생산 자신에 의해 생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자본론』에서 맑스가 말하는 부정의 부정이다. 문면만 보았을 때 우리는 분명 맑스 역시 역사가 부정의 부정이라는 변증법적 도식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15)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부정이 자본주의적 생산 자신에 의해서 자연적이고 필연적으로 생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부정되는 과정은 결코 자연적이거나 필연적인 과정일 수 없다. 심지어 우리는 심지어 이렇게도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 즉 노예제적 생산이나 봉건제적 생산이 자연적․필연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대체된 것인가? 왜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안에서 운동해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과 모순에 빠지는가? 왜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것들이 지금까지 그 안에서 운동해왔던 기존의 생산관계들과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발전하는 것인가?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이 진정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인가?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이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과정일 때에만 우리는,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를 부정했던 자본주의적 생산이, 다시금 자연적 과정의 필연성을 갖고서 그 자신에 의해 부정된다고, 그래서 역사가 실제로 변증법적으로 진보한다고, 부정의 부정으로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필자가 보기에는 생산력의 발전은 결코 자연적인 과정도, 필연적인 과정도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생산력의 발전을 추동하는 것은 계급투쟁, 즉 적대이다. 만약 생산력의 발전이 사회적 적대로부터 비롯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추동되는 것이라면, 생산력의 발전은 결코 주체를 제외한 어떤 자연 발생적 과정, 필연적 과정, 객체적 과정일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및 이 모순의 해소를 통한 발전으로 이해되어 온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 보다 존재론적으로!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는) 사회적 적대, 사회적 적대의 주체성이 선행한다. 그렇다면 이 적대적 주체성의 우선성으로부터 우리는 역사유물론 자체를 어떻게 혁신할 수 있는가. 비변증법적인 새로운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은 무엇인가.


6.

비변증법적인 유물론의 입지점을 검토하기에 앞서 먼저 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실제로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가 타당했던, 자본주의 전사의 어떤 국면이 존재했던 것은 아닌가?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가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 기존 생산관계와 발전된 생산력이 모순에 빠지며, 이로부터 새로운 생산관계가 기존의 생산관계를 대체함으로써, 이 새로운 생산관계가 발전된 생산력에 발맞추게 되는 것이라면, 혹시 우리는 이러한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원리가 관철된 국면을 자본이 생산과정을 실질적으로 매개하던 시기로 볼 수 있지는 않은가? 자본이 생산과정을 실질적으로 매개하던 시기에는, 가령 슘페터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19세기 자본주의 발전 모델에 둘러싸여 작업하면서 “창조의 기쁨으로 추동된 새로움, 혁신을 소개하는 자”인 기업가의 ‘기업가 정신’을 찬양했을 때에는,16) (설사 노예제 사회로부터 봉건제 사회로의 이행 과정이나 봉건제 사회로부터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과정과 같은 거대한 생산관계의 변형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자본이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 혁신의 중심이었던 것은 아닌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이 생산 혁신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껏해야 자본이 생산을 구조화하면 자본과 적대하는 주체성, 즉 프롤레타리아가 파업과 태업 등으로 그것을 탈구조화하고 이로부터 자본이 다시금 생산을 재구조화한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는 그저 소산적 주체성으로 사유되며, 오히려 자본이 (이렇게 불러도 좋다면) 어떤 능산적 주체성(?)으로 사유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전사의 그 어느 시기에도 자본이 능산적 주체성이었던 적은 없지 않을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만 하지 않을까? 자본은 왜 생산을 혁신하는가? 당연히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자본이 위기에 봉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 자체의 동학에 의해서? 가령 과잉생산과 과소소비에서 비롯되는 주기적인 산업공황과 같은?

 우리가 우선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자본이 생산을 혁신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본이 생산을 혁신한다면 그것은 그러한 혁신이 강제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 다음에 가령 과잉생산과 과소소비로부터 비롯되는 주기적인 산업공황은, 필자가 보기에는, 개별 자본들의 몰락과 재편을 낳을 뿐이지 총자본의 생산 혁신을 강제하는 요인이 될 수 없다. 총자본의 생산 혁신을 강제하는 요인은 물론 앞에서 간단히 확인했듯이 자본과 적대하는 주체성에 의한 계급투쟁이다. 우리는 이를 다름 아닌 자본주의 전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트가 네그리의 사상의 진화를 검토하면서 확인하였듯이, 자본주의 생산의 거대한 변화, 즉 전문화된 산업생산에서 대량산업생산으로, 대량산업생산에서 사회적 생산으로의 변화를 낳은 시기는 각각 1917년과 1968년이었다. 문: 왜 1917년을 기점으로 전문화된 산업생산이 대량산업생산으로 변화했는가? 답: 러시아혁명 때문에. 문: 왜 1968년을 기점으로 대량산업생산이 사회적 생산으로 변화했는가? 답: 68혁명 때문에. 물론 사실 이와 같은 생산의 거대한 변화는 대단히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일어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 복잡한 과정을 분석하는 대신 단지 하트 논의의 결론만을, 즉 생산의 변화는 사회혁명으로부터 비롯된 위기에 자본이 대처하는 방식이었다는 점만을 취하기로 하자.17)

 그렇다면 생산 변화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결코 자본일 수 없다. 생산 변화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자본과 적대하는 사회혁명의 주체성이며, 이 주체성이야말로 능산적 주체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금 이렇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생산력 발전의 추동력은 사실 그 생산력이 그 안에서 운동하는 생산관계를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주체성이며, 이 주체성의 힘이 강력할수록 생산력 발전에의 강제 또한 커진다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주체를 소거함으로써 흡사 자연 발생적이고, 필연적이며, 객체적인 것인 양 생산력 발전을 묘사하고 이로부터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신비화하는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에 맞서 비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을 다름 아닌 (사실 푸코가 다른 맥락에서 제시한) 저항의 우선성 테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푸코가 말하는 저항의 우선성과 우리가 말하는 저항의 우선성은 다르다. 푸코는 권력이 오직 자유로운 주체에게만 행사된다고 보면서 만약 노예가 실제로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면 그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네그리와 하트는 푸코의 위와 같은 논의를 모든 주체가 저항하는 능력을 정초하는 자유의 한계에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노예는 주인의 채찍에서 벗어날 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오직 그들에게 행사되는 권력에 저항할 때에만 자유롭다는 것으로 해석한다(Hardt/Negri, 75). 우리가 말하는 비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입지점으로서의 저항의 우선성 테제는 오늘날의 물질적 세계를 이와 같이 만든 힘이 자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자본에 저항하는 주체성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저항하는 주체성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저항하는 주체성의 힘을 보지 못함으로써 (혹은 보고도 못 본 척 함으로써) 역사 발전을, 부정의 부정으로 진행하는 어떤 자연 발생적이고, 필연적이며, 객체적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적 운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마디로 그것은 저항하는 주체성의 힘을 긍정하지 못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자마자 맑스가 『자본론』1권의 마지막 부분인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수행한 작업이 새롭게 조명된다. 네그리와 하트가 말하듯이 <이른바 시초축적>에서 맑스가 하는 작업은 “생산 양식의 발전 단계에 관한 결정론을 깨드리[는]” 것이며], “이미 산업화 이전 시기에도 어떻게 노동력의 유동성과 자유가 저항적이고 적대적인 힘을 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Hardt/Negri, 76).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맑스를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의 파생물인 경제결정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맑스가 역사를 결코 어떤 미리 주어져 있는 변증법적 발전 도식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7. 

그런데 설사 저항의 우선성 테제가 자연 발생적, 필연적, 객체적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주문을 풀어내고 역사를 능산적 주체가 활동하는 장으로 만드는 것이 맞더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반론에 당장 부딪히게 된다. 아니 저항하는 주체가 역사를 만드는 원천이라는 게 뭐 대수인가? 저항하는 주체가 기껏해야 생산력 발전의 추동력이며 다시금 발전된 생산력에 필적하는 생산관계 안에로 포섭되는 것이라면, 그리고 또 역사적으로도 포섭되어 왔다면, 사실 저항의 우선성 테제는 그저 변증법적 역사유물론에서 사라졌던 주체를 역사유물론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뿐이지 않은가? 역사유물론 안에 주체를 넣어 준 것은 고맙지만 저항하는 주체는 생산력 발전의 자극제 정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항하는 주체가 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주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저항하는 주체는 단지 어떤 촉발자와 같은 것일 뿐이지 않은가?

 물론 이러한 반론은 당연히 주체성과 생산력에 대한 어떤 특정한 시각에 근거하는데, 그 시각은 생산력과 주체성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생산력을 주체 바깥에서 주체에 대해/맞서 존재하는 객체이자 그 객체에 체현된 힘으로 생각한다. 가령 증기기관을 생각해보자. 증기기관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객체이자 분명 어떤 힘을 담지하고 있는 객체이지 않은가?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 너무나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가령 인류가 아직 그 어떠한 도구도 생산에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미개했을 때 인류의 생산력은 무엇이었겠는가? 물론 두뇌와 손이다. 그렇다면 이 가상적 시기에 생산력은 주체의 바깥에서 주체에 맞선 객체이자 그 객체에 체현된 힘으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질적 그리고 비물질적 재화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인 생산력에는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된다. 그래서 만약 인류가 자기의 손으로만 생산을 하던 가상의 시기를 지나서 가령 농기구를 사용하여 생산을 한다면, 이제 인류의 생산력은 농기구와 그의 두뇌가 될 것인데, 그 까닭은 한편으로는 언제 파종하고 언제 수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그의 신체 속에 있는 두뇌를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또한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구현물인 객체로서의 농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력에 대한 통상적 표상에서 생산력은 마치 주체 바깥에서 주체에 대해/맞서 존재하는 객체이자 그 객체에 체현된 힘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생산력이 담지하는 힘은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표현에 다름 아니라고. 

 물론 생산력에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인간 지성의 대상화는 (분명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소외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령 러다이트 운동을 생각해보자.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실업의 원인을 기계 때문이라고 보고 기계를 파괴하려고 했던 운동 말이다. 사실 기계는 산업혁명기의 인류가 도달한 지성의 구현물이었지만, 분명 당대에 특정한 산업예비군을 형성하는 주요소로 작용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기계의 궁극적 원천인 인간 주체를 왜소하게 만들고,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지성이 구현물인 기계를 파괴하고자 하는 운동을 낳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실은 인간 지성의 구현물로부터, 즉 인간 지성이 대상화된 객체로부터 인간 자신이 소외될 수 있을 정도로 그 구현물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며, 따라서 그 객체를 중심으로 생산이 조직될 수 있었던 것도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근대 이후에 ‘고정자본’으로 표현될 수 있을 그 객체, 그 구현물의 발전이 (단순히 그 안에 당대의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되어 있다는 것 정도를 뛰어넘어)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직접적인 생산력으로 된 정도 그리고 나아가 사회적 삶의 과정 자체의 조건들이 일반지성의 통제 아래 놓여서 이 일반지성에 따라 변형되는 정도”18)를 가리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제 “생산물은 개별적인 직접적 노동의 생산물이기를 그치고 사회적 활동의 조합이 생산자로서 나타나[며]”(Marx, 709), “개인적 노동이 그 직접적 현존에 있어서 확장된 개인의 노동으로, 사회적 노동으로 드러나[고]”(Marx, 709), “생산과 부의 거대한 초석으로 등장하는 사회적 개인의 발전”(Marx, 705)이 있게 된다.19)

 정리하면, 근대 이전에도 생산력에 당대 인류가 도달한 지성이 구현되어 있던 것은 맞지만 근대 이후와 근대 이전의 생산력은 근본적으로 구분된다. 근대 이후의 생산력, 즉 일차적으로는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체현된 고정자본으로 표현될 수 있을 근대 이후의 생산력은 비로소 그것을 중심으로 생산이 조직되도록 만들고 사회적 삶을 그것의 통제 아래에 두며, 이로부터 개인적 노동의 고립된 분산성을 타파함으로써, 사회적 개인을 생산의 핵심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근대 이후의 생산력을 단지 일반적인 사회적 지식이 체현된 고정자본으로서 생각하는 것, 가령 대량산업생산 시기의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것으로 표상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날의 생산과정에 적실한 추상일 수 없다. 오늘날 생산과정의 주된 경향은 일반지성이 고정자본으로 체화되는 것 못지않게, 아니 사실은 그 이상으로, 일반지성이 사회적 개인의 산노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20) 일반지성과 생산의 연관은 죽은노동으로서의 고정자본, 즉 기계들의 체계 안에서 소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보다 핵심적인 것은 오히려 일반지성이 사회적 개인들의 연계망 속에서 그 자체 생산력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 지식 등이 생산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오늘날, 이제 생산력은 정보, 지식 등의 언어적 소통 과정 자체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언어적 소통 과정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주체성이 바로 생산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생산력은 주체 바깥에서 주체에 대해/맞서 존재하는 객체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다. 오늘날 생산력은 주체 바깥에 존재하지 않고 주체 안에, 주체의 활동 안에,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주체들의 소통적 네트워크 안에 존재한다. 오늘날 생산력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은 주체성 그 자체이다. 오늘날 생산력은 네트워크적으로 협력하는 주체성의 활동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정자본으로 체화된 일반지성 또한 이 생산적 주체성의 협력 없이는 더 이상 생산력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렇다면 결국 오늘날 도래한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근거한 변증법적인 역사유물론의 암묵적 전제,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이분법 자체가 타당성을 상실해 버렸다는 점이지 않은가? 그렇다. 이제는 (생산력 발전을 통해서 기존 생산관계와 발전된 생산력이 모순에 빠지며, 이로부터 새로운 생산관계가 기존 생산관계를 대체함으로써 새로운 생산관계가 발전된 생산력에 조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들의 협력적 관계 안에 존재하는 생산력이 그 자체 생산관계를 규정하며, (생산력이 생산관계와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구성하는 주체들의 네트워크적 협력 과정이 그 자체 생산관계를 새롭게 짜는 과정이고, 여기에는 (어떤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계의 혁신만이 존재하며, 또 역으로 생산관계를 새롭게 짜는 주체성의 네트워크적 협력 과정이 아닌 어떤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신비화된 생산력  발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저항의 우선성 테제는 자본주의 전사와는 다른 힘을 부여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제 그것은 생산력 발전의 어떤 우회적인 자극제, 촉발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손으로 이 세계 자체의 생산을 새롭게 짤 수 있는 입지점이 되는 것은 아닌가?



  



1) “맑스와 나[엥겔스]는 아마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의식의 변증법을 유물론적 자연 파악과 역사 파악에 옮겨다 놓은 거의 유일한 인물들일 것이다”(프리드리히 엥겔스, 「반-뒤링」,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5권, 최인호 옮김, 박종철 출판사, 1994, 12쪽, 이하에서 「반-뒤링」의 인용은 쪽수만을 표기한다).


2) “이 법칙[변증법적 운동 법칙]은 헤겔에 의해 처음으로 포괄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신비화된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이 신비적 형태를 벗겨 내고 그것을 아주 단순한 것으로, 보편 타당한 것으로 분명하게 의식하는 것이 우리[맑스와 엥겔스]가 추구한 목표의 하나였다”(12).


3) “근대 독일 철학의 가장 커다란 공적은 변증법을 사유의 최고 형식으로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22; 강조는 필자).


4) 헤겔이 우리 사유의 최고 형식을 부정의 부정이라고 이해한 이유에 대해서는 (헤겔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을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헤겔을 해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신의 본질은 개념이다. 헤겔은 개념을 사유된 것의 형식으로서의 유라는 직관된 일반자로 이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사유하는 사유 자체의 형식die Form des sich denkenkden Denkens selbst으로 이해한다. 즉 자신을 비-자아의 파악으로서 개념파악하는 것이다. 비-자아의 파악이 일종의 구별을 나타내는 한, 이러한 구별의 파악으로서의 순수 개념에는 구별을 구별함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정신의 본질을 형식적․서술적으로 부정의 부정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절대적 부정성’은 데카르트의 cogito me cogitare rem(나는 내가 사물을 사유한다는 것을 사유한다) -데카르트는 의식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를 논리적으로 형식화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1998, 562쪽; 번역 일부 수정. 원문은 Heidegger, M., Sein und Zeit, Tübingen: Max Niemeyer Verlag, 1953, p.433).


5) “... 역사에서 사건들의 외관상의 우연성을 지배하는 바로 그 변증법적 운동 법칙이 자연에서도 무수한 변화의 뒤얽힘 속에서 자기를 관철한다는 사실 ... ”(12).


6) 147; 『맑스․엥겔스 저작집』제23권, 92-3쪽 재인용, 강조는 엥겔스.


7) “모든 인간 역사의 첫 번째 전제는 물론 살아 있는 인간 개개인들의 존재이다. 따라서 첫 째로 설정되어져야 할 것은 이들 개개인들의 신체적 조직 및 그로 인해 주어지는 여타 자연과 그들의 관계이다”(칼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박재희 옮김, 청년사, 2004, 42쪽).


8) 루쏘의 평등 이론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살펴볼 것이다.


9)“내가 이 모든 과정들에 대해서 부정의 부정이라고 말할 때, 나는 모든 과정들을 이 하나의 운동 법칙 아래로 총괄하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개별적인 특수한 과정의 특수성은 ...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이다. ... 변증법이란 자연, 인간 사회, 사유 등의 일반적인 운동 법칙과 발전 법칙에 관한 과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157-8).


10) “변증법에서 부정한다는 것은 그저 아니라고 말한다거나 어떤 사물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거나 그 사물을 임의의 방식으로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Omnis determination est negatio. 모든 제한이나 규정은 동시에 부정이다. 더욱이 여기서 부정의 방법은 첫째는 과정의 일반적 성질에 의해, 둘째는 그 특수한 성질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나는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그 부정을 다시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두 번째 부정이 여전히 가능하도록 혹은 가능해지도록 첫 번째 부정을 처리해야 한다. 어떻게? 각각의 개별 경우의 특수한 성질에 맞게. 만약 내가 보리 낟알을 빻거나 곤충을 짓밟는다면, 나는 첫 번째 행위는 수행했지만 두 번째 행위는 불가능하도록 만든 셈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종류마다 발전이 이루어지도록 부정되는 독특한 방법이 있는 것이며, 또 표상들과 개념들의 종류마다 그러하다”(158).


11) 질 들뢰즈, 『베르그송주의』, 김재인 옮김, 문학과 지성사, 1996, 135쪽; 번역 일부 수정. 원문은 Deleuze, G., Bergsonism, trans. Tomlinson, H., New York: Zone Books, 1991, p.97.


12)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 456-7쪽.


13) 칼 맑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2권, 최인호 옮김, 박종철 출판사, 1992, 478쪽).


14) “... 맑스는, 일찍이 소경영이 그 자체의 발전에 의하여 그 자신을 파괴할 조건들, 즉 소소유자들에게서 몰수할 조건들을 필연적으로 산출해 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도 역시 그 자신의 몰락을 불가피하게 하는 물질적 조건들을 그 스스로 산출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그것을 여기서 간략히 총괄하고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은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며, 이 과정이 동시에 변증법적 과정인 것이[다]”(149-150). “그[맑스]는 이 과정이 일부는 이미 실제로 일어났고 일부는 이제 틀림없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다음, 여기에 덧붙여 이 과정을 일정한 변증법적 법칙에 따라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이 전부이다”(150).


15) 그래서 엥겔스는 지금까지의 토지 소유의 역사를 다음과 같은 변증법적 발전 도식, 즉 공동 소유 -> 사적 토유 -> 공동 보유에 따라서 정리한 것이다. “일정한 본원적 단계를 넘어선 모든 민족에 있어서 토지에 대한 이러한 공동 소유는 농경이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생산에 대한 족쇄로 변한다. 그것은 지양되고 부정되며, 짧거나 긴 중간 단계를 거친 후에 사적 소유로 전화한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 자체에 의해 농경이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반대로 사적 소유가 생산에 대한 족쇄로 된다 ― 오늘날, 소토지 보유나 대토지 보유를 막론하고 모두 이러한 사정에 있다. 이것 또한 부정하라는, 그것을 다시 공동 재산으로 전화하라는 요구가 필연적으로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요구는 옛날의 본원적 공동 소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고차적이고 발전된 공동 보유의 형태의 확립을 의미[한다] ...”(154).


16) Hardt, M., Negri, A., Commonwealth, Cambridge: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2009, p.297.


17) 마이클 하트, 『네그리 사상의 진화』, 정남영․박서현 옮김, 갈무리, 2008.


18) Marx, K.,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rans, Nicolaus, M., Baltimore: Penguin Books, 1973, p.706.


19) 그래서 필자가 보기에는, 엥겔스가 그것이 인간을 동물계로부터 결정적으로 분리시켰다는 점을 통해서 마찰에 의한 불이 인류의 발전에 있어 증기기관보다 우월하다고 보았던 점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인간을 고립된 개인이 아닌 (우리가 인용한 맑스적 맥락의) ‘사회적 개인’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이 사회적 개인의 사회성이 (최소한 현재의 맥락에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태초부터 주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고 이해할 경우, 증기기관은 인류의 ‘해방’에 있어서 마찰에 의한 불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역할을 했다. 마찰에 의한 불이, 굳이 해방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인간을 동물계로부터 해방시켰다면, 증기기관은 인간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0) “맑스는 일반지성(혹은, 주요한 생산력으로서의 지식)을 고정자본과 완전히 동일시했고 이 때문에 동일한 일반지성이 반대로 산 노동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심급을 무시했다. 이것은 정확히 오늘날의 결정적 측면이다”(빠올로 비르노, 「“일반지성”에 관하여」, 조정환 옮김,『비물질노동과 다중』, 갈무리, 1994, 217쪽).

Posted by Kaomo